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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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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의 고민은 수학으로 풀릴지니

‘수포자’의 시대에 수학을 피난처 삼고, 예술처럼 감상하고, 삶의 지침으로 여기는 사람들
등록 2021-02-24 13:44 수정 2021-02-24 22:40
이승목씨가 유튜브에서 어른을 위한 수학 강의를 하고 있다. ‘이승목의 수력발전소’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승목씨가 유튜브에서 어른을 위한 수학 강의를 하고 있다. ‘이승목의 수력발전소’ 유튜브 화면 갈무리

수학이 아름답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좀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일찌감치 수학과는 거리를 둔 사람들이 보기엔 더 그렇다. 하지만 가까이, 오래 보면 예뻐 보이는 법. 코로나19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이때,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아닌 수애자(수학을 사랑하는 자)가 돼보는 건 어떨까. _편집자

“고1, 2학년 때부터 수포자는 인생이 망했다는데 정말인가요?”

“제 견해는 문과의 90% 이상은 수포자입니다.”

한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이다. ‘수포자’란 신조어는 매년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나 교과과정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다. 국포자(국어 포기), 영포자(영어 포기), 과포자(과학 포기)란 단어는 없는데 수포자는 있는 현실에서 수학 공부는 입시의 전유물처럼 취급됐다. 마치 수능이 끝나면 “배워서 써먹을 데 없는 것처럼” 상당수 학생은 입시를 위해 수학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푼다. 입시가 아니면 수학 공부할 일이 있을까. 그럴 확률은 ‘0’에 수렴할 것 같은데, 되레 성인이 돼서 수학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질문1. 사탕이 12개 있다. 설명이 옳은 사람의 이름을 쓰라.

연수: 사탕을 2개씩 묶으면 6묶음이 된다.

준기: 사탕의 수는 3개씩 4묶음이다.

도영: 사탕의 수는 4+4+4+4로 나타낼 수 있다.

담금질 지옥 아니고 개미지옥

2020년 12월 어느 날 새벽, 최혜랑(59)씨 집의 난방관이 터졌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이었다. 유전이 터진 것처럼 기름때가 가득한 검은 물이 화장실에 가득 찼다. 한겨울 난민이 될까 불안했다. “영화를 봐도, 음악을 들어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상황. 혜랑씨의 피난처는 수학이었다. 불안과 공포가 수학에 집중되면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이 정도의 스트레스는 수학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혜랑씨는 몇 년 전부터 ‘수학지옥’이라는 수학 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개미지옥처럼 한번 빠지면 수학의 매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뜻이지만, 남들은 지옥에서 수학을 담금질하듯 “하드 트레이닝 하는 줄” 안다. 매달 첫째주 일요일 이 모임엔 10여 명이 함께한다. 40~50대가 대부분이고 간혹 70대도 있다. 과학 공부 모임의 서브모임으로 시작한 ‘수학지옥’은 멤버들이 함께 수학책을 읽고 해석하고, 문제를 푼다. 강사는 미국 뉴욕주립대학 스토니브룩 캠퍼스에서 복소기하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승목씨다. 이씨는 “한 문장 한 문장 강독하듯이 해석한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한 권을 다 소화하려면 짧게는 3~4개월 걸린다. 레너드 서스킨드의 고전역학책은 다 읽는 데 1년 정도 걸렸다. 현재는 서스킨드의 양자역학책을 읽고 있다. 지금까지 약 7권을 읽었다.

혜랑씨가 수학에 다시 관심 갖게 된 것은 아들의 중·고등학교 수학 교과서를 보고 나서다. 학창 시절 이과였던 혜랑씨가 보기에 아들의 수학책은 꽤 어려웠다. “재수포자가 될 것 같아서” 혜랑씨는 다시 수학책을 펴들었다. 6년 전 과학 공부 모임을 시작하면서 수학에 갈증을 느끼기도 했다. 물리학을 공부하려면 수학이 필수인데 수 없이 말만으로 과학을 접하니 답답했던 것이다. 혜랑씨는 “다시 수학을 공부해보니 학창 시절 개념을 이해했다기보다 외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김진선(41)씨는 코로나19가 확산한 뒤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2020년 10월부터 진선씨는 중학교 과정 문제집을 매일 한 쪽씩 풀고 있다. 시작은 창대했다. 고등학교 입학 대비용으로 234개 챕터(장)로 정리한 문제집을 2개월 안에 풀 작정이었다. “한 챕터 푸는 데 2시간 넘게 걸렸다. 중학교 과정이라고 만만하게 봤던 것 같다.”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생각에, 퇴근 뒤 매일 한 쪽씩 푼다. 욕심을 버리니 시간과 부담이 줄었다. 진선씨는 매일 자신이 푼 문제를 사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

질문2. ㄱ씨에게는 딸 셋이 있다. ㄱ씨가 친구에게 퀴즈를 냈다. ㄱ씨 딸들의 나이는 각각 몇 살일까?

ㄱ씨: 딸들의 나이를 곱하면 36이고, 더하면 13이야.

친구: 그 정보로는 부족한데?

ㄱ씨: 큰딸은 바이올린을 켤 줄 알아.

아름다운 논리의 흐름이 주는 쾌감

학창 시절 ‘수포자’였던 오영진(37·가명)씨는 수학을 떠올리면 “수학 선생님한테 맞으면서” 외운 ‘근의 공식’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근의 공식이 무엇인지, 어떨 때 사용하는지는 잊어버렸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인수분해 같은 것도 이름만 기억난다.

하지만 수학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에게 수학과 공식은 부등호 관계다. 수학 공부를 하는 데 중요한 것은 공식이 아니다. 이들도 공식은 “돌아서면 잊어버”(진선씨)린다. 수학이라는 집합에 공식은 아주 작은 부분집합일 뿐이다. 진선씨에게 수학은 “중학생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풀고 진도를 나가는 데 급급하던 학창 시절과 달리 진선씨는 왜 곱하기를 하는지, 무엇이 자연수인지 함께 생각한다. ‘3, 5, 7…’ 같은 소수(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떨어지는 1보다 큰 양의 정수)를 다룬 챕터를 보면서 소수를 발견한 수학자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진선씨는 “아이들한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부모가 오히려 더 동화책에 빠진다고 하지 않나. 어릴 때 몰랐던 행간을 읽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혜랑씨와 함께 ‘수학지옥’에서 1년6개월 동안 공부한 손은정(43)씨에게 수학은 “랭귀지”(언어)다. 인류 보편적인 논리를 같은 언어(수학)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정씨는 직접 수학 문제를 풀기보다 사람들이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자신을 ‘수학 감상자’로 소개했다. 은정씨는 “수학은 직접 풀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들이 문제를 푸는 걸 보고만 있어도 논리의 흐름에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공식으로 풀어도 다른 과정을 내는 수학이, 마치 같은 곡을 연주자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음악처럼 아름답다는 것이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혜다 펴냄)를 쓴 김정희 작가는 예술작품에서 수학을 발견하는 일을 좋아한다. 그림이나 영화를 볼 때 아주 작은 것이라도 수학을 발견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 김 작가는 “그림은 근본적으로 수학적인 바탕 위에서 그려진다. 인간이 황금비율에서 미를 느끼듯,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은 수학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질문3. 빨간 버스는 180㎞를 가는 데 2시간이 걸렸고, 파란 버스는 240㎞를 가는 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더 빠른 버스는 어떤 것일까요?

김진선씨는 수학 개념에 대한 책을 읽으며 수학을 더 사랑하게 됐다. 김진선 제공

김진선씨는 수학 개념에 대한 책을 읽으며 수학을 더 사랑하게 됐다. 김진선 제공

미분적인 삶과 사리 분별

수학을 사랑하는 이들은 삶마저도 수학적이다. 아들이 셋인 김 작가는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자녀가 하나일 때 가족 내에서 맺어지는 일대일 관계의 경우의 수가 3이지만, 자녀가 셋일 때는 10이다. 김 작가는 “학교에서 배우는 건 다 쓸모없다, 돈 계산만 잘하면 된다며 수학의 쓸모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학교를 떠나서도 중요한 것이 수학”이라고 말했다.

은정씨는 미분에서 삶의 철학을 끌어낸다. “삶을 살수록 미분과 적분이 진실에 가까운 답을 준다고 생각한다. 곡선을 무한으로 쪼개면 더 이상 곡선이 아닌 국면으로 들어간다. 한 시간 단위에선 내가 어떤 일을 했지만, 분 단위로 쪼개면 어떤 시간엔 아무것도 안 했을 수도 있다.”

이승목씨는 좀더 근본적으로 수학을 ‘앎’과 비교했다. 한자 ‘수’(數)라는 말은 한국어로 셈이고, 셈하는 것은 ‘헤아리다’는 뜻이다. ‘수학’이란 뜻의 영어 매스매틱스(Mathematics)의 어원 또한 그리스어 마테마(mathema), 즉 앎이다. 이씨는 “우리가 어릴 때 사리 분별 한다고 배우는데, 사리 분별은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이는 수학에서 같은 것(등호, =)과 다른 것(부등호, ≠)을 구분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르다는 건 뺄셈, 차이를 아는 것이다. 다르면 얼마나 다른가, 이것은 뺄셈의 크기다”라고 설명했다.

수학과 가까운 삶을 통해 수학적 사고를 기르면 어떤 주장에 대해 근거는 있는지 묻는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게 수학을 공부하는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배운 명제가 대표적인 수학적 사고다. ‘가정이 거짓이면 명제는 항상 참’이기 때문에 가정이 거짓이면 명제의 참·거짓을 따질 필요가 없다.

질문4. ?에 들어갈 숫자는 무엇인가?

2+3=10

8+4=96

7+2=63

6+5=66

9+5=?

삼각형부터 그려볼까

수학을 다시 공부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학창 시절엔 외우는 수학을 했기에 수학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바탕엔 현실의 교육이 있다. 교육과정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가르치면 학생 대다수가 이해할 수준으로 짜여 있지만, 사교육이나 선행학습 등으로 정답으로 바로 가기 때문에 수학의 즐거움을 빼앗았다. “앎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포자는 없어져야 할 비극적인 단어다. 앎과 생각을 포기하면 편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세상에 속지 않게 된다.”(이승목씨)

다시 수학을 시작해보려는 사람들에게 하는 이들의 조언은 거창하지 않다. “삼각형 하나를 시간 날때마다 그려보기”(김정희 작가), “초등학교 산수부터 해보기”(이승목씨), “다른 사람이 수학 문제 푸는 거 보기”(손은정씨). 자, 지금 바로 노트를 펴고 삼각형을 그려보는 건 어떨까.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다 맞히셨나요?
질문1. 연수, 준기
질문2. 2살, 2살, 9살. 곱해서 36 더해서 13이 되는 자연수 조합은 1, 6, 6과 2, 2, 9 조합이다. 큰 딸이 한 명이므로 2, 2, 9가 된다.
질문3. 빨간 버스. 빨간 버스는 시속 90㎞, 파란 버스는 80㎞.
질문4. 126, 두 수를 더한 뒤 앞의 수를 곱함, 논리 문제

*기획 - 수학을 사랑한 어른들 모아보기
어른이의 고민은 수학으로 풀릴지니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990.html
최단 거리를 구하라, 이게 문제가 돼?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9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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