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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뭐야구] 과거란 통계를 위해서 존재할 뿐

창단 9년 만에 정규리그 최정상에 오른 이동욱 다이노스 감독의 리더십
등록 2020-11-07 12:28 수정 2020-11-09 09:22
연합뉴스

연합뉴스

이동욱.

아주 익숙한 이름이다. 그가 연기자라면 말이다.

지금 언급하는 ‘이동욱’은 프로야구 엔씨(NC) 다이노스 감독(사진)이다. 야구팬이 아닌 이에게는 아주 생소한 이름, 맞다. 사실 나 또한 몇 달 전까지 ‘잠깐, 엔씨 감독 이름이 뭐였지?’ 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스타 플레이어를 누르고 엔씨 감독으로

아마 야구팬들도 비슷할 것이다. 그만큼 그는 무명의 선수, 지도자였다. 한 베테랑 야구 기자는 ‘무명의 무명’이란 표현까지 쓸 정도니까. 그의 이력을 한번 훑어보자.

선수 때 성적은 초라했다. 롯데 자이언츠 소속으로 프로 6시즌 동안 143경기에 출전했고, 통산 타율은 0.221에 불과하다. 홈런도 5개밖에 못 쳤다. 발도 느려서 통산 도루도 단 1개뿐이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 주로 수비코치를 맡았다. 투수코치나 타격코치, 주루코치 등과 비교해 빛을 못 보는 보직이다. 2012년 9번째 구단 엔씨 창단 멤버였고 수비 지도 능력은 나름 탁월했던 듯하다. 2013년부터 엔씨는 4년 연속 팀 수비지표(DER) 리그 1위에 올랐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김경문 감독이 중도 사퇴한 뒤 엔씨 차기 감독으로 여러 사람이 입길에 올랐다. 그중에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엔씨의 최종 선택은 ‘이동욱’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마흔네 살. 스물아홉부터 코치를 했으니까 지도자 경력은 풍부했다.

엔씨 구단이 밝힌 이동욱 감독 선임 배경은 이랬다. “팀 내 주전 선수를 비롯해 퓨처스리그 유망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수의 기량과 특성을 고루 파악하고 있다.” 풀이하면 선수단과 소통이 잘된다는 얘기. 또 다른 선임 이유는 이랬다. “선수 육성과 경기에서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선진 야구 트렌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데이터 분석 자료를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엔씨소프트 기업 자체가 게임회사다보니 데이터 활용에 능한데, 야구단 또한 ‘숫자 야구’에 강점이 있었다.

감독 데뷔 첫해(2019년) 성적이 5위. 전년도 꼴찌 팀이 반등했다. 팀 주축 타자인 나성범이 부상으로 일찍 시즌아웃되고 외국인 타자가 제 기량을 발휘 못했는데도 거둔 성적이었다. 엔씨는 이 감독의 공을 인정하며 지난 1월 일찌감치 재계약을 했다. 기존 2년 계약에서 1년을 연장하고 연봉도 2억5천만원으로 올렸다. 계약금도 1억원 추가. 하긴 처음 계약액(연봉 2억원, 계약금 2억원)은 다른 감독들에 견줘 조금 초라한 액수였다.

야구든 뭐든 간에 ‘호기심 천국’

이 감독의 지도 아래 엔씨는 올해 창단 9년 만에 정규리그 최정상에 올랐다. 아직 한국시리즈가 남았지만 정규리그 우승만으로도 값진 성과다. 무명 감독이 우승 사령탑이 된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우승 감독 이름을 나열해보자. 김재박(현대), 김인식(두산), 김응용, 선동열(이상 삼성), 김성근(SK), 조범현(KIA), 류중일(삼성), 김태형(두산), 김기태(KIA) 등이었다. 모두 ‘이름값’ 있는 감독이었다.

어쩌면 ‘프로야구 감독’이란 위치에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많이 발탁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선수 시절 이렇다 할 활약이 없으면 코치직 제의도 잘 받지 못하는 게 야구계 현실이다. 프로 코치란 보직도 크고 작은 활약으로 팀 승리에 많은 기여를 한 선수들에게 제공되는 일종의 은퇴 선물 같은 것이고, 10개 구단 프로 지도자 자리는 아주 한정돼 있다. 돌이켜보면 이동욱 감독이 이른 나이로 현역 은퇴를 할 때 롯데에서 코치 제의를 받은 것도 나름 파격이었다. 개인 성적과 별개로 그의 성실함에 후한 점수를 줬던 것일 테고.

‘감독 이동욱’이 궁금해서 엔씨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무엇이 특별하냐고. 돌아온 답을 요약하면 ‘호기심 천국’이다. 뭔가에 궁금증이 생기면 꼭 풀어야 하는 성격이란다. 세상에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그런 사람. 그게 야구든 사람이든 뭐든 간에.

한 예로 미국 스프링캠프를 가면 꼭 다른 구장도 견학(?)을 가서 훈련 장비를 비교해보고 훈련 시설을 두루 살피고 다짜고짜 외국인 코치를 붙잡고 궁금한 것을 A부터 Z까지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낯선 것에 두려움이 없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고 귀띔했다. “국내 지도자 중 트랙맨(공의 궤적을 추적해 속도, 회전수, 각도 등을 보여주는 장치) 등 데이터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이유도 아마 이 때문인 듯하다. 이 감독은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전혀 없다. 열린 사고라고 하겠다. 과거의 기록과 영광에 갇혀 닫힌 사고를 하는 일부 지도자와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엔씨 구단은 야구 기술 등이 담긴 외국 서적을 여러 권 번역도 했다. 이 또한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이 감독 때문이다. 코치들에게는 유튜브 영상 등으로 타격 자세, 투구 이론 등을 혼자 배울 수 있게 된, 바뀐 환경에서 막연하게 선수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데이터와 숫자로 정확히 객관화된 수치를 내세워서 지도하라고 말한다. 하긴 옛날 방식으로 1990년대생 선수들을 지도하면 괴리감이 쌓이고 불신만 깊어질 것이다. 발사각(지표면 기준으로 타구 각도), 히팅 포인트(배트가 투구를 때리는 지점)를 머릿속에 그리는 선수들에게 볼끝이 어떻고, 방망이가 내려왔느니 올라갔느니 말하면 과연 누가 귀 기울일까. 옛것을 고집하는 감독들이 종종 실패하는 이유라 하겠다.

데이터와 숫자로 지도하라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령탑이 뭐 어때서.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현재 아무런 성과 없이 요란하게 떠들기만 하는 감독보다 훨씬 나은 듯한데. 과거의 성과나 이름값으로 그의 능력치를 미리 계산해 눈높이에 차등을 둘 필요는 없을 것도 같다. 과거가 아닌 현재가 중요하고 현재가 만들어낼 미래 가치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나날이 급변하는 지금 시대에 필요한 건 케케묵은 과거에 갇힌 사고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낼 활짝 열린 사고니까.

포털 사이트에 ‘이동욱’을 치면 한창 tvN 드라마 <구미호뎐>에 출연 중인 연기자 이동욱이 뜬다. 혹시 알겠는가. 엔씨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거대한 위업을 달성하면 이동욱 감독이 맨 앞에 뜰지. 그때도 물론 감독의 승리가 아닌 구단, 선수의 승리라고만 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김양희 <한겨레> 기자·<야구가 뭐라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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