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시선의 한계도 절감했습니다. 김순천 작가는 10여 년 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언론사 간의 경쟁이나 시간의 제약, 취재기자들의 인식상의 한계로 대중매체가 전달하는 정보와 이미지는 서로 동질화되거나 현실의 본모습에 깊게 다가가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과 함께 가속화했습니다. 기자의 직업적 시선을 벗어난, 좀더 가난한, 좀더 사소한 풍경을 포착할 눈을 찾습니다.
무엇보다 은 르포를 쓰고 싶지만 생활 형편이 어려운 이들의 곤경을 덜어주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지원 공모제는 ‘지속가능한’ 석 달간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나아가 출판사와 연계해 책 출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공모제 속에 마련했습니다. 3개월의 지원금은 액수는 적지만 당신이 시작하고 꿈을 꿀 숨통을 틔워주는 계기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완성작은 500장 이상의 원고량을 목표로 합니다. 새로운 가치관과 시선을 담은, 발로 뛰어 숨 막히는 현장을 담은, 더불어 세계에 존재한 모든 르포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기획을 담아 보내주십시오. 르포작가 지원 공모제는 10월에 공모할 픽션 중심 손바닥문학상의 다른 한 축으로, 의 ‘발바닥’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역량 있는 분들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나는 2015년 겨울 (이하 )라는 책을 쓰고 대학에서 나왔다. 누군가는 이것을 고발이나 폭로라고도 했지만, 사실 그런 거창한 내용을 담은 책은 아니었다. 굳이 규정하자면 ‘고백’에 더 가깝다. 그 뒤 나는 연작이라 할 수 있는 (2016)와 (2018)를 썼고, 계속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고백은 그 자체로 르포그런 나를 ‘르포르타주 작가’라고 불러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그만큼 내가 쓴 책 세 권의 소재와 내용이 평범하지는 않았다. 대학강사, 맥도날드 물류 상하차 아르바이트, 대리운전 기사 등 뭐하는 사람인가 싶을 만큼 이런저런 공간과 노동을 소재로 글을 썼다. 누군가는 왜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는지, 관심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는지 묻기도 하지만, 그건 건강보험 등 사회적 보장을 받고 생계를 영위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 뒤의 일이다. 그러나 대리운전은 글을 쓰기 위해 직접 선택한 노동이었으니까, 이것은 기획된 글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요약하면 는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로서 그리고 맥도날드 물류 상하차 노동자로서 대학이라는 노동 공간에 존재했던 젊은 연구자의 서사였고, 는 대학에서 나와 대리운전기사로 타인의 운전석에서 노동하며 겪은 경험의 서사였고, 는 한 개인을 유령이자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내는 한 시대의 언어를 수집하고 분석한 보고서 같은 것이었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의 사회과학 MD는 책 소개에서 “르포작가를 꿈꾸고 있다는 그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내가 정확히 그러한 선언을 한 일은 없지만, 아마도 “계속 거리의 언어를 몸에 새겨나가려고 한다”는 에필로그 문장에서 그 맥락을 읽었을 것이다. 나의 글은 르포르타주 범주에서도 읽히는 모양이고, 나도 그것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민망하지만 그 이유에 대한 나름의 고민과, 그에 더해 그런 글이 가지는 책임과 원칙에 대해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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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나는…” 하고 시작하는 제목의 책이 많다. 모두가 아는 (홍세화)가 있고, 최근 책으로는 (허혁), (김현아), (유성호) 등도 있다. 나는 그러한 책들이 대개는 르포가 된다고 믿는다. 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신과 그 주변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무언가를 취재하고 기록하고 보고하는 형식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고백은 그 자체로 르포가 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맥도날드 알바 중 도로 반사경 앞에서. 대리운전을 하던 어느 날 길거리 풍경. 카카오 대리운전을 시작하고 받은 사원증(?). 대리기사들이 택시를 타는 이른바 ‘택틀’ 중 찍은 사진. 김민섭 제공
그러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고 해서 모든 글이 르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사회적 경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독자에게 ‘이 사람은 참 고생이 많았네…’ 하는 감정만 남겨서는 안 된다. 나의 노동이 당신의 노동이 되고 우리의 노동이 되어야 하고, 나의 물음표가 당신의 물음표가 되고 우리의 물음표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자신을 내보이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르포라기보다 개인적 에세이로 분류해야 하지만, 글을 읽은 저마다 거기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르포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르포는 독자에게 스스로와 주변을 환기하게 하고, 또한 그것을 함께 변화시킬 선명함을 제공한다. 그래서 우리는 르포를 ‘소중한 글’로 분류하고 그 글을 쓰는 작가를 더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준다는 고마움도 들어 있다. 한승태 작가가 사랑받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농장까지, 다양한 노동의 경험을 소재로 이라는 르포를 써낸 그는, 라는 르포로 2018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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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백을 사회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조금 더 노골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실제 는 그 자체로 완성된 르포라고는 할 수 없었다. 고백 이후 서사인 는 그것이 가진 결핍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에서 ‘사회’로, 그러니까 ‘나는 어떠하다’라는 고백에서 ‘이 사회는 어떠하다’라는 선언으로 나아갔다. 대리운전이라는 노동을 통해 나는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간 나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왔고, 내비게이션과 같은 어느 목소리가 나를 정해진 목적지로 이끌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모든 개인은 한 시대 안에서 언어·문화·제도·구조, 그 시스템에 꾸준히 영향받으면서 각자가 속한 조직에 대리화하기를 강요받는다.
나뿐 아니라 대리운전을 하며 만난 모두가 그러한 ‘대리인간’이었다. 내가 대리운전이란 일이 얼마나 고된지, 얼마를 버는지, 새벽에 어떻게 다시 번화가로 돌아오는지, 만났던 진상 손님 1위는 누구인지 하는 내용으로 책을 채웠다면 그 역시 르포가 되기는 했겠지만, 독자에게 가련함의 정을 동하게 하는 이상의 무엇은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물음표를 함께 보냈다. “당신은 지금 ○○○이라는 개인으로 살아가는가, 대리인간으로 살아가는가?”
각 출판사 제공
사실 고백에서 선언으로 가는 길은 별로 어렵지 않다. 이 사회가 어떠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여기에서 하나의 서사를 더 확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제안’이다. 많은 이가 무엇이 어떠하다는 선언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소진되고 만다. 그러나 몇몇은 자신의 경험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내고 결국 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제안의 단계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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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써온 르포에, 정확히는 내 글에 관심 가져준 이들에게 작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세 번째 책 를 썼다. 한 개인의 몸을 유령이나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내는 악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언어’에 있다. 한 시대는 언어로서 개인의 몸을 규정하고 그것으로 통제한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욕망들이다.
나는 학교, 회사, 아파트 그리고 개인을 찾아가 각 공간에 붙어 있는 ‘훈’을 수집했다. 예를 들어 “착한 딸, 어진 어머니”라는 교훈을 둔 여학교를,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라는 사훈을 둔 회사를, “○○캐슬 더카운티 노블레스”라는 이름을 가진 아파트를 찾아다녔다. 주변 언어는 우리의 욕망이기도 하고 정확히는 이 시대가 개인의 것으로 믿게 만든 시대의 욕망이기도 하다.
나는 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당사자에게 모욕감을 주는 천박한 훈을 인식해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쓰던 박사논문 일부를 차용한 서문이 너무 지루하다는 서평과 더불어, 내가 보기에도 전작들과 비교하면 르포라고 딱히 규정하기 어려운 글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앞선 두 책의 연작으로 두고 썼다. ‘고백-선언-제안’으로 이어지는, 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기 때문 이다.
르포를 쓰는 데는, 작지 않은 책임이 따른다. 개인의 고백을 두고 많은 이가 그 글이 가진 것 이상의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거기에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그 작가가 이 사회를 위해 무척 소중한 일을 해냈다는 고마움이 들어 있다. 그리고 작가의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 그가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기를, “나는…”으로 시작한 르포가 이 사회의 모두에게 “우리는…” 하는 변화를 추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르포에는 책임이 따른다나도 이후 과분한 관심을 받으면서 4년째 어떻게든 계속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다음 서사로는 나의 세대를 기록하고 싶다. 나-사회-시대, 그리고 그다음은 ‘세대’라는 키워드로 1980년대에 태어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월드컵, 세월호 등 여러 현대사를 겪고 ‘88만원 세대’라든가 ‘N세대’라는 언어로 규정됐던 우리가 지금 왜 어떻게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규정해보고 싶다. 그에 더해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는, 르포작가들의 이름을 나도 소중히 기억할 것이다. 최근에는 이종철 작가의 책 를 읽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그의 다음 행보도 기대된다. 가볍게 읽고 무겁게 남길 수 있는 책이니, 당신에게도 권한다.
김민섭 작가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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