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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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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에게 배우다

‘마인크래프트 세대’가 구축한 ‘세계’에 대하여
등록 2018-06-07 13:34 수정 2020-05-03 04:28
‘게임계의 레고’라는 <마인크래프트>는 2009년 스웨덴에서 출시됐다.  minecraft.net 제공

‘게임계의 레고’라는 <마인크래프트>는 2009년 스웨덴에서 출시됐다.  minecraft.net 제공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무언가에 대한 글을 쓰면 자꾸 그 일이 하고 싶어진다. 3차원(3D) 프린터에 대해 쓰면 3D 프린터를, 로봇강아지 이야기를 하면 로봇강아지를 사고 싶다. 글을 쓰다 사게 된 제품은 스마트폰, 컴퓨터, 음성 인식 스피커 등 한둘이 아니다. 게임에 대한 글을 쓸 때가 제일 괴롭다. 글 쓰는 시간보다 게임하는 시간이 10배는 더 많다. 지금 하는 게임도 마찬가지다. 모바일게임 소개글을 쓰다 알게 됐는데 시간 날 때마다 하고 있다. 옛말이긴 하지만 이 정성으로 연애를 했으면 이미 결혼하지 않았을까 싶다.

혼자 하기엔 한계가 있어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 ‘클랜’에 가입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실력이 미천해, 받아주는 모임이 별로 없었다. 초보에게도 친절한 곳을 찾아 겨우 들어갔는데 여기도 사람이 모이는 장소라 여러 일이 생긴다. 가끔 클랜 회원들과 채팅을 하는데 하루는 누군가 욕설 섞인 못된 장난을 하고 있었다. 클랜 대표가 화가 나서 그 사람에게 물었다. “너 몇 살이냐? 나 11살이다.” 잠시 망설이다 돌아온 대답이 “9살요”였다. 이미 내 말문은 막혀버렸다.

그동안 게임 전략을 가르쳐주고, 카드를 나눠주고, 활동을 지시하고, 커뮤니티를 관리해온 그 예의 바른 사람의 정체가 ‘11살’이었다. 정말 놀랐다. 클랜 회원들이 어릴 거란 생각은 했다. 게임 참가 시간을 보면 얼추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이리 어릴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가까운 이들 중에 어린이가 없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게임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은 탓이다. 아이들과 내 취향은 매우 다르다.

외국에선 이 세대를 ‘마인크래프트 세대’라고 한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게임 를 즐기며 자라나서 그렇다. 는 주어진 줄거리 없이 블록 장난감처럼 가상 세계를 조립해 만드는 ‘도구’ 같은 게임이다. 간단한 규칙은 가상 세계를 지탱하는 원칙을 설명하는 길잡이에 가깝다. 여기서 아이들은 스스로 세계를 만들고 규칙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며 논다. 유튜브에서 남이 만든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스스로 서버를 만들어 다른 이를 초대해 함께 즐기고 게임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아이’도 있다. 그 속에서 영화를 찍고, 소설을 쓰고, 게임 안의 게임을 만들기도 한다. 부모님은 게임이나 한다고 그리 반기지 않지만.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은 아니다. 배움은 언제나 모방하고 재현하며 이뤄진다. 예전에도 소꿉장난하거나, 만화나 영화 속 주인공을 흉내 내거나, 스스로 게임을 만들거나 이야기를 지어내며 노는 아이들은 있었다. 다만 정규 교육과정에 들어가는 순간 그런 아이들의 놀이가 다소 억압되는데, 정규 교육과정 이전의 모습을 같은 게임이 계속 연장해준다. 이런 게임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백지 같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결정해 만들고 움직이며 자기 세계를,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책 에서 보여주듯, 사람은 자신이 즐겼던 행동에서 생활 습관이 만들어지곤 한다. 어떤 정보를 찾을 때 부모 세대는 잘 아는 사람에게 묻거나 114(고객센터)로 전화하고, 우리 세대는 인터넷을 검색하며, 지금 세대는 유튜브 동영상을 찾는 것처럼. 몇몇 아이는 게임으로 주도적 성취감을 맛봤다. 서버를 위한 컴퓨터 세팅과 커뮤니티 운영을 한 이도 있고, 이야기꾼 재주를 드러내거나 창작에 소질을 보인 이도 있다.

이들은 훗날 과연 어떤 세상을 만들까?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나는 클랜에서 탈퇴하지 않았다. 온라인 모임방을 만든다기에 잠시 망설이다 가입했다.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따라가 배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원칙은 그대로다. 우리 클랜 대장이 11살이라 해도.

이요훈 IT 칼럼니스트*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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