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일본 도쿄의 비트코인 거래소인 마운트곡스 앞에서 투자자들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철학자 랭던 위너는 현대인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상황을 ‘기술적 몽유병’이라 했다. 잠자면서 걷는 것처럼, 우리 존재 조건을 바꿀 수도 있는 변화를 ‘멍 때리며’ 인정한다는 말이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뇌가 없다’라고나 할까. 정말 그렇다. 나는 컴퓨터를 왜 써야 하는지, 인터넷을 왜 받아들여야 하는지, 스마트폰을 왜 사야 하는지 진지하게 토론해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신기술을 받아들이고나면 어떻게 적응할지를 두고 왈가왈부했을 뿐이다. 다윈의 진화론처럼, 변화는 결정된 것이고 빨리 적응하는 사람이 살아남는 법이니까. 어디까지나 ‘받아들여졌다’라는 조건이 먼저 갖춰진 다음에 이뤄지는 일이지만.
랭던 위너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쟁을 본다면 무척 기뻐할 것 같다. 뜬구름 잡는 기분이었던 인공지능 이슈를 제외하면, 오랜만에 우리 사회가 정보기술(IT) 채택에 깊게 고민하는 모습이다. 암호화폐가 무엇인지, 왜 가치를 지니는지, 앞으로 어떻게 쓰일지. 이게 다 많은 돈이 걸려 있기 때문이지만, 이거라도 어딘가.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문제는 암호화폐 거래다. 투기적 거래, 불법에 이용되는 거래다. 워낙 낯선 기술이다보니 기술 자체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같은 단어를 쓰는데도 서로 다투는 부분이 자꾸 어긋난다. 논쟁에서 밀리면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 거다”로 끝내려는 사람도 가끔 보인다.
암호화폐 논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먼저 기술 이야기와 사건 이야기를 분리하자. 대부분 현재 비트코인 시장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래소 폐쇄까지 선택사항으로 올려놓고 최소한 돈세탁, 부정 거래, 투기 수요를 막을 방법은 세워야 한다. 비트코인을 제도적으로 받아들인 일본도 2014년 처음 마운트곡스 거래소 사태가 터졌을 때 규제부터 시작했다.
여기까지 동의할 수 있다면 다음 질문을 던질 차례다. 비트코인은 정말 가치가 있는가? 블록체인은 중요한 미래 기술인가? 지금 대답할 수 있는 것만 답하자면, 비트코인은 거래 참가자들 사이에선 불안하지만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블록체인이 없더라도 세상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있으면 더 좋아질 가능성은 있다. 신뢰할 수 있는 P2P 네트워크를 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히 있으니까.
기존 규칙을 깨기 위해선 다른 규칙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이 블록체인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슬프지만 기대가 미래를 만들어주진 않는다. 진짜 문제는 누구에게 이 기술이 필요한가이다.
정보기술 성장은 세계경제 구조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1978년 영국 금융 빅뱅부터 시작된 자본시장의 전 지구적 확산은 복잡한 거래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 같은 기술 인프라의 발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반대로 규제 완화로 생긴 새로운 요구가 없었다면 기술이 빠르게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인공지능에 기반한 산업 변화가 시작된 이 시점에서, 블록체인과 그에 기반한 암호화폐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이 답을 찾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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