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명랑한 슬픔인 당신
좋으면 웃고, 너무 좋으면 운다. 감동한 얼굴은 일그러져 있다. 황홀한 순간엔 표정이 구겨진다. 행복은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고, 영국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이리스 머독은 썼다. 이런 생각도 한다. 햇빛을 볼 때 눈을 찡그리게 되는 것처럼, 밝기가 서로 다른 한 곳에서 다른 곳을 바라볼 때처럼, 찡그림은 응시와 집중의 생김새가 아닐까 하는.
허수경 시인은 저 응시와 울음의 표정을 30년 동안 독자에게 새겨왔다. 그를 기다려 꾸준히 읽어온 이들에겐 닮은 안색이 있다. 20대 초반이던 1987년에 등단했다. 사진으로 봤을 뿐인데도, 여기와는 다른, 먼 곳을 넘겨다보는 듯한 눈빛이 흥건한 경남 진주의 여인은 “산가시내 되어 독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폐병쟁이 내 사내’) 같은 시를 쓴 뒤, 서른이 되기 전 고고학을 공부하러 독일로 갔다. 라는 제목의 시집도 낸 그는 “젊어서 이미 늙어버린 시인”(박해현)으로 불렸다.
(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여섯 번째 시집이다. 외국생활 25년째. 제2외국어일 수 있는 모국어에 수저를 갖다댈밖엔 도리 없는 허기로 쓰였을 글은 더욱 속을 파고든다.
뭇사람이 궁금해한 것부터. “뭐 해요?/ 없는 길 보고 있어요// 그럼 눈이 많이 시리겠어요/ 예, 눈이 시려설랑 없는 세계가 보일 지경이에요”(‘목련’) 시인이 시리도록 보는 길은 아무래도, 가겠다고 정한 곳이겠지. 다음은 서시의 첫 연, 그러니까 이 시집의 맨 첫마디다.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농담 한 송이’) 가장 서러운 곳에 핀 농담. 이토록 근사한 문학의 뜻풀이는 오랜만이다.
시인은 전쟁과 난민, 테러와 죽음, 재난과 가난이 오랫동안 서럽다. 선명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채 의식 위를 걷는 감수성을 진하게 풍기던 젊은 날 그대로.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는데 다시 물대포를 쏘아대”고 “피해자를 사회의 해충으로 만들어버리는”( 토요판 2016년 7월30일치 기고) 한국을 영상으로 보면서 시인은 몸을 떨었다. “테러리스트가 내일 지날 길을 오늘 걸어서”(‘운수 좋은 여름’) 따위 이유로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한 동안 “네가 나에게는 울 일이었나 나는 물었다/ 아니, 라고 그대 눈썹은 떨렸다… 사람아,/ 어릿하네, 미안하다”(‘네 잠의 눈썹’) 목소리를 꿇는다.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고, 슬픈 표정을 한 행복같이 명랑한 표정을 한 슬픔을 알아본 시인은 “바람의 혀가… 산다, 산다, 산다, 할 때” 그 음성을 음악 삼아 “춤”을 춘다. “나의 머리칼과 숨이/ 온 담장을 허물면서 세계에 다가”오는 움직임이 ‘나’에겐 춤이다.(‘나는 춤추는 중’)
덧붙여, 단정한 마음이 필요할 땐 허수경 시집이다. 머리칼을 빗질하듯 기분을 쓸어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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