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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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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음’의 정치학

하나로 꿸 수 없는 비연애 인구의 입장들… 칼럼은 끝나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등록 2016-07-29 17:08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터 조승연

일러스트레이터 조승연

갑작스럽지만 이 글은 마지막 연재다. 따라서 비연애 칼럼의 엑기스를 정리하며 코너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코너의 제목인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내가 3년째 발간하는 독립잡지 의 부제이자 저서 (21세기북스·2016)의 이름이기도 하다. 허먼 멜빌의 에서 따온 표현으로, 바틀비는 “나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하지 않음’으로써 체제에 저항하고 ‘마땅히 해야 하는’ 것에 타격을 가한다. 하지 않는 것도 실천의 일부인데, 왜 항상 게으르거나/못하거나/낙오되거나/포기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여졌는지 늘 궁금했다. 하지 않을 자유가 없다면, 할 자유는 또 다른 강요에 불과하다. 장 자크 루소의 말처럼, “인간의 자유란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데 있”으니까.

연애가 나에게는 그랬다. 20대 여성으로 산다는 것, 연애시장의 최전선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나 ‘상장 폐지’ 같은 말에 쫓기는 것, 남자였다면 좋은 평가를 받았을 나의 장점들이 ‘여자친구’라는 표상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비하되는 것, 연애 혹은 결혼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설정된 존재로 산다는 것은 숨막히는 일이었다.

물론 이 문제에 내가 항상 같은 태도를 유지한 것은 아니다. 나는 어떨 때는 연애를 갈망했고, 어떤 때는 무관심했고, 어떤 때는 적극적으로 거부했으니까. 소개팅 같은 자리에 나갈 때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여성적’ 취향으로 꾸미고, 고백받을 때는 우쭐했으며, 나의 비연애 상태를 습관적으로 자조했다. 그러다가도 웅녀보다 끈질긴 인내심으로 칩거하며 100일 넘게 남자는 코빼기도 못 보는 생활도 곧잘 했고, 그 순간에 더 중요한 뭔가를 선택하느라 가뿐히 연애를 버리기도 했다. 어떤 관계나 생활을 지향/지양하는 인간의 태도는 이렇게 유동적이기 마련이다. 한동안 육식을 피한다거나, 아침형 인간으로 살기를 시도한다거나, 인맥을 넓히려고 용쓴다거나.

그러나 나와 비연애 담론들은 높은 확률로 ‘포기’와 ‘거부’로 소개된다. 물론 비연애 담론에는 여러 이유로 연애를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선택이 존재한다. 이것은 비연애의 중요한 한 축이지만, 곧 전부일 수는 없다. 비연애를 포기와 거부로만 이해하는 것은 결국 연애가 필수불가결의, 조건이 갖추어지면 누구나 해야 하는, 할 수만 있다면 안 할 리 없는 것으로 보는 기존의 시선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관점이다. ‘하지 않음’의 실천과, 포기, 거부는 각기 다른 정치적 의미와 맥락을 지니며 어떤 때는 경계 자체가 모호하기도 하다. 많은 비연애 인구들은 이런 입장‘들’ 속에 있으니, 섣불리 하나로 꿰려고 하지 마시라.

한편 연애를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감별하려는, 사실은 “못해요”라고 울면서 말하기를 바라는 시뻘건 눈들이 열심히 비연애 인구를 쫓아다닌다. 아 쫌, 못하든 안 하든, 그게 뭣이 중헌디? 우리의 무수한 선택과 취향, 의지, 욕망은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강요되는 것과 저항하는 것, 주입된 것과 선택하는 것으로 뒤엉켜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원자적 개인은 없으니 투명하고 순수한 ‘자발적 의지’에 대한 환상도 좀 내려놓자. 날 때부터 우리 모두는 자연스럽게 비연애 상태였고, 일정 연령대에 이르기까지 그 상태를 유지했으며, 연애가 우리나라에 수입된 지 겨우 100여 년이 지났다. 연애가 누군가에게는 전부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만 인지해도 많은 것이 보일 것이다.

이 칼럼은 끝나지만, 비연애의 다양한 양상을 조망하고, ‘정상적인 연애’만을 승인하고 권장하는 관습과 규범에 타격을 가하고, 연애로 ‘퉁칠 수 없는’ 생활을 조망하는 작업은 끝나지 않는다. 8월15일에 독립잡지 9호가 나온다. 14일까지 텀블벅에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인쇄비를 모금 중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 모여, 얼어붙은 연애지상주의 세계를 내리찍는 도끼 한 자루 장만하길. 장담하는데, 나는 아직도 할 말이 많다.

짐송 편집장 *‘연애하지 않을 자유’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 보내주신 짐송 편집장과 칼럼을 아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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