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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의 원투펀치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영화…
정치색 분명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 8>
등록 2016-01-09 14:08 수정 2020-05-03 04:28
누리픽쳐스 제공

누리픽쳐스 제공

미국 영화평론가 짐 호버먼은 1996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1975)와 (1977)를 연이어 내놓은 이래, (1992)과 (1994)만큼 강력한 원투펀치를 날린 미국 감독은 없었다”고 평했다.

비디오대여점에서 영화광으로 성장한 쿠엔틴 타란티노(53) 감독은 8년간 구상한 범죄영화 로 세계 영화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그는 열기가 식기 전에 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데뷔작 에 이어 그리고 (1997), (2003), (2004), (2007) 등에서 B급영화, 고급영화, 대중소설, 대중문화를 폭넓게 가로지르며 발칙하고 천재적인 큐레이터의 면모를 발휘했다.

그는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다. 그에게 영화는 취향이었고, 놀이였다. 프랑스 예술영화에서 홍콩 무협영화에 이르기까지 잡식성의 영화 취향을 종횡무진 오가며 만들어내는 그의 작품은 ‘타란티노적인’(Tarantinoesque)이라는 형용사까지 등장시켰다. 혹자는 폭력, 마약, 살인, 섹스 등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그의 ‘무도덕성’에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그러나 1963년생으로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얼룩진 1960~70년대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영화광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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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적 영화 지식을 뿜어내던 그는 (2009)부터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호모 루덴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로 진화했다.

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집단인 나치의 수뇌부를 극장 안에 가둬놓고 화형식을 치르는 영화다. 영화를 유희로 즐기는 그의 취향은 여전했지만, 복수의 대상을 히틀러로 못박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분명히 했다.

이 나치를 응징하는 영화라면, (2012)는 백인 우월주의자를 단죄하는 영화다. 미국 남북전쟁 발발 2년 전을 배경으로, 장고(제이미 폭스)가 현상금 사냥꾼 닥터 킹 슐츠(크리스토프 왈츠)의 도움을 받아 악랄한 대부호 캘빈 캔디(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게서 아내 브룸힐다(케리 워싱턴)를 되찾는 과정을 담았다. 그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와 흑인을 탄압한 백인을 스크린에 불러내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조롱하고, 비판한다. 극중 KKK단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하는 대목은 그의 정치적 지향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노예제도의 비인간성을 혐오하는 킹 슐츠 역에 미국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인 크리스토프 왈츠를 캐스팅했다. 미국인을 내세우면 미국이 반성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외국 배우를 섭외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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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에 대한 그의 날선 비판은 8번째 작품 (1월7일 개봉 예정)에서도 계속된다.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폭설이 쏟아지는 와이오밍의 설원에서 8명이 밀폐된 공간인 잡화점에 갇힌다. 교수형 집행인 존 루스(커트 러셀), 현상금 사냥꾼 마커스 워런(새뮤얼 잭슨), 죄수 데이지 도머그(제니퍼 제이슨 리), 보안관 크리스 매닉스(월턴 고긴스), 연합군 장교 샌포드 스미더스(브루스 던), 리틀맨 오스왈도 모브레이(팀 로스), 이방인 밥(데미안 비치어), 카우보이 조 게이지(마이클 매드슨)는 각자 사연을 갖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흑인에게 악행을 저질렀던 한 남자의 과거를 소환해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제도가 폐지된 뒤에도 미국의 원죄인 인종차별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 원죄는 오늘날까지 미국 사회를 괴롭히는 아킬레스건이다.

그는 카메라 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거리에 나선다. 지난해 10월24일 뉴욕 경찰이 시민에게 총을 발사한 것에 항의하는 ‘일어나라 10월’ 집회에 참가했다. 미국 경찰이 보이콧을 선언하자, “나는 협박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시사회 당일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진실을 말했고, 실천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10편의 작품을 만들면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2편의 영화가 남았다. 그는 더욱 강력한 원투펀치를 날릴 것이다.

곽명동 객원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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