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 한겨레 초보 아빠들이 다시 만났다.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겨우 두 계절을 건너왔을 뿐인데, 우리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이를 욕조 속에 두고 쩔쩔매지 않는다. 퇴근 뒤 아빠들은 자기 발을 담그듯 자연스럽게 아이를 욕조로 데려간다. 잠자리도 교육을 넘어 습관이 된 집이 많았다. “아빠가 옆에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오른 팔뚝을 아이에게 주면 끝”이라거나 분유 한번 물리면 아이는 꿈나라라거나…. 너나 할 것 없이 멘붕이었던 몇 달 전에 비하면 저마다의 의문에 각자의 답을 내놓고 있었다.
그렇다고 수다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자식 얘기 대신 자기 얘기가 들어섰다. 아이가 커가면서 힘쓸 일이 늘어나고 있다. 할 일은 많아졌는데 나이를 먹고 있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은 늘어난다. 청년은 아니다. 체력은 달린다.
털어놓는 고민은 은밀한 길목까지 들어섰다. 가정사에 사소한 고민이란 없다. 예를 들면 ‘외-’라는 말을 소외시킨 집안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외’ 대신 지역명을 넣는 곳은 그나마 타협점을 찾은 편이다. 종로할머니, 서초할아버지, 이런 식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말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분위기가 좋지 않다. 아이를 낳고 나서 새삼 알게 된 처가와 아내의 관계, 서열 재정비에 나서면서 달라진 친가의 태도,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남편들.
첫 모임 같았으면 ‘올바름’을 앞세워서 훈수를 두거나 “그 정도는 뭐”라며 더 강도 높은 상황극을 펼치거나, “그것도 한때”라고 했을 법한데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 모든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기자로 10년 살면서 갈등 속으로 들어가고, 때로는 드러내며, 드물게는 해법도 제시했던 경험이 있는 아빠들일 텐데, 주인공이 자신이다보니 누구도 쉽게 묻어가지 못했다.
하어영
나누는 고민은 어려웠지만 대부분 결국 판단을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돌 즈음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문제는 토론장을 방불했다. “빨리 보내면 적응도 빠르다”와 “잔병치레가 많아 감당하기 힘들다” 등 역시 답은 없다. 아내의 경력 단절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는 ‘우리가 잘하면 된다’ 식의 성급(?)한 결론도 내렸다.
문제풀이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물론 슬쩍 정답지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글쎄). 그래서였다. 돌고 돌던 얘기는 결국 육아휴직으로 수렴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또 고민의 시작이다. 육아휴직은 각자의 처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쓸모’. 나의 육아휴직이 육아가 아니라 휴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쓸모가 있다고 해서 일이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요즘 세상에 괜찮다”는 말에도 “그래도…”라며 정색하는 집안이 여전히 많다. “그렇다면 내가 맡아서 키운다”는 윗세대의 전향적 결정에 솔깃해지기도 한다. 그것까지 넘어서도 끝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정치부, 민중총궐기 사회부, 경제위기설 경제부, 테러 국제부, 어느 부서 하나 바쁘지 않은 부서가 없다. 육아빠들이 있는 부서는 하필 제일 바쁜 ‘그’ 부서이고, 나 아니면 안 되는 일들을 어김없이 맡고 있다(고 스스로들 생각한다).
다시 얘기는 돌고 돈다. 육아휴직부터 집안 사정에 유용한 생활팁까지 중구난방으로 서로 물어댔다. 답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다 불꽃은 육아의 사회적 책임으로 튄다. 복지국가에 이르자 한숨부터 내쉰다. 안주가 식어가고 술이 두어 순배쯤 돌자, “다음번에는 아이를 데리고 만나자”거나 “정기적으로 보자”는 얘기로 마무리된다. 각자의 얘기에 ‘오프더레코드’를 약속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다 써버렸다. 다들 미안.
추신: 고용노동부는 최근 ‘아빠 육아가 대세’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자료를 보니 육아휴직 남성은 전국에 879명이다. 대세라는 말과 0.0001%라는 결론의 괴리, 그게 우리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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