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의 우악스런 손에 끌려가는 14살 소녀, 그 어린 딸이 어느 곳으로 가는지 짐작조차 못하고 땅에 주저앉아 우는 엄마와 아빠, 지옥 같은 위안소 생활, 타국의 산골 구덩이에 밀어넣어져 불에 타는 위안부 소녀들….
지난 7월28일 미국 워싱턴 레이번 의원회관에서 6분으로 압축된 한 한국 영화가 상영됐다. 영상에서 스쳐가는 몇몇 장면만 보고도 눈물을 제어하지 못하는 이가 많았다. 미국 연방하원이 2007년 “일본 정부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하라”는 내용이 담긴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기념하는 8주년 행사에서다. 이날 초대된 조정래(42) 감독은 “이 영화를 미국 의회에서 선보인 자체가 꿈과 같은 이야기”라고 했다. 행사를 준비한 마이크 혼다 미국 하원의원은 “굉장한 힘을 가진 영화다. 일본 국민들도 봐야 할 중요한 영화”란 소감을 내놓았다. 그는 미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한 의원이다.
영화 <귀향>의 한 장면. 극중 14살 ‘정민’이가 끌려간 위안소로 일본군이 들어온 장면이다. ‘정민’ 역은 올해 16살이 된 재일동포 4세 학생(강하나)이 맡았다.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조 감독이 ‘꿈과 같은 이야기’라고 표현한 건 영화 이 이 순간까지 오는 데 13년이나 걸려서다. 은 1943년 15살 전후에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의 과거를 비추고, 현재를 사는 16살 무녀가 타지에서 숨진 소녀들의 넋을 불러내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굿판의 형식을 가미했다. 이 영화는 감독이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강일출 할머니가 미술심리치료 때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란 그림을 2002년에 보면서 시작됐다. 강 할머니는 위안부 소녀들이 구덩이로 던져져 불타는 실제 모습과, 당시 가까스로 탈출한 자신의 기억을 도화지에 재현했다. 조 감독은 “그림을 보여주시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아직도 새파랗게 질린 소녀가 숨어 있는” 듯했다고 당시의 충격을 떠올렸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 영화를 차갑게 외면했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소재이며 관객들이 극장에서 보기에 편치 않은 내용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영화를 움직이게 한 건 바로 시민들이었다. 미국·일본의 교민들이 제작비를 보탰고, 이 지난해 12월18일부터 44일간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진행한 ‘뉴스펀딩’을 통해 1만4737명의 시민이 2억5098만원의 제작비를 후원했다. 여기엔 용돈을 꺼낸 초등학생도 있었다. 제작진 계좌로 직접 입금한 시민들의 후원비 등을 모두 더하면 5억여원에 달했다. 후원자가 총 4만2023명이었다. 조 감독은 이런 마음을 “반드시 이 영화를 만들라는 관객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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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제작비가 모자랐지만 촬영을 늦출 수 없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더 돌아가시기 전에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촬영은 4월15일부터 6월22일까지 진행됐다. 영화 등에 참여한 스태프들도 합류했다. 조 감독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눈물로 찍은 영화였다”고 했다.
조 감독은 위안부 소녀가 넋으로라도 고향 집으로 돌아와 엄마·아빠를 만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찍던 날을 떠올렸다. 엄마가 “(우리 딸) 인제… 왔나?”라고 물으며 딸을 안아주는 장면이다.
“감독이 울면 안 되는데, ‘레디’를 외쳤다가 울컥해서 ‘액션!’을 외치지 못하기도 했지요.”
“의미 있는 영화이니 도와주겠다”며 와준 스태프들이 첫날 촬영부터 위안부 소녀 역을 맡은 무명 배우들의 집중력에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소녀 역을 맡은 연기자들이 촬영 직전까지 4개월간 연기 연습을 함께 한 결과다. 연기 실수 때문에 촬영 기간이 길어져 제작비가 늘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우들의 마음도 깔려 있다. 이들은 정신과 의사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며 연기를 준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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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배우와 스태프에게 “여러분이 지금 (촬영장에서) 하는 하나하나가 돌아가신 소녀들의 영령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닦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이 영화가 죽은 소녀들을 기억하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문화적 증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제작비 부족은 여전히 큰 걸림돌이다. 시민 후원금은 영화 세트 제작비, 각종 장비 대여, 식비·인건비 등으로 쓰이며 촬영 초반에 고갈됐다. 이후 이 영화에서 일본군으로도 출연한 임성철 PD가 매일 필요한 촬영 비용을 마련하려고 뛰어다녔다. 촬영을 끝냈지만 편집, 음악, 사운드, 색보정, 컴퓨터그래픽(CG) 등 영화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후반작업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감독은 후반작업비를 줄이더라도 그 비용이 3억~4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영화가 최종 완성된 뒤 극장 스크린을 잡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아직 이 영화엔 극장을 상대로 스크린을 확보하는 배급사가 정해지지 않았다. 대기업이 투자·배급하는 상업영화나 할리우드 영화가 상당수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풍토에서 이 스크린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은 포털 사이트 ‘다음’과 함께 의 후반작업비 마련과 스크린 확보를 위한 ‘2차 뉴스펀딩’을 8월12일부터 진행한다. 펀딩 프로젝트명은 ‘우리 딸, 이제 집에 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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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관객이 직접 이 영화의 ‘전국적 첫 상영’을 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실험을 해보려 한다. 관객이 배급사를 대신해 극장을 직접 확보하는 ‘시민 배급위원’이 되는 것이다. 뉴스펀딩으로 모인 후원금은 후반작업비에 쓰이며, 나머지는 영화가 완성된 이후인 12월께 전국 주요 지역 극장을 대관해 전국 첫 상영을 시도하는 비용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서울 지역 극장 1개관을 빌려 서울에 사는 1~2차 뉴스펀딩의 후원자를 초대해 관람하는 방식이다. 본인이 갈 수 없으면 지인에게 티켓을 선물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전국 17개 시·도의 극장을 빌려 12월 중에 상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후원자 참여가 많으면 극장을 대관해 상영하는 지역이 더 늘어날 수 있다.
그간 관객들이 스크린을 많이 잡지 못한 영화를 보려고 극장 1개관을 빌려 단체 관람한 경우가 있었지만, 시민의 후원금으로 극장을 대관해 전국적으로 첫 상영을 시도한 사례는 없었다. ‘대관 관람’은 수익에 민감한 극장을 상대로 관객들이 특정 영화를 강제로 열게 하는 적극적인 관람 운동이다. 시민에 의한 ‘전국 첫 상영’이 이뤄지고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관객의 평가가 나쁘지 않다면 이후 건실한 배급사가 합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 배급위원’ 첫 실험 성공할까감독은 베를린영화제에 이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11월 말까지 영화를 완성한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그 전에 광복 70주년인 8월15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있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영화 영상을 축약해 공개한다.
전문 PD가 결합하지 못해 배우로 출연하면서 PD까지 맡아 제작비를 구하러 다닌 임성철씨는 최근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병을 발견한 뒤 종양 제거 수술부터 받았다. 그는 오히려 “하늘이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준 것은 위안부 소녀들의 고통을 이해하라고 하늘이 준 축복”이라며 주변을 안심시킨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시간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7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또 세상을 떠났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기사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뉴스펀딩’에도 정기적으로 공개됩니다. 뉴스펀딩을 통해 모인 독자 여러분의 후원금은 영화 을 극장으로 보내는 비용에 사용됩니다. 의 후반작업비와 극장 대관을 통한 전국 상영 비용에 전액 쓰일 예정입니다.☞뉴스펀딩 참여 방법: 뉴스펀딩 꼭지에 실린 기사를 보신 뒤 ‘후원하기’ 클릭.(본인 전자우편 계정 필요) ‘1000원, 1만원, 1만원 이상’ 가운데 후원하시려는 금액 선택. 다음캐시·카카오페이·휴대폰·신용카드 가운데 결제 수단 선택 뒤 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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