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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지불유예’의 시간들

강상중 교수가 소설과 에세이를 교차해 쓴 ‘이야기 인생론’ <마음의 힘>
등록 2015-07-24 19:33 수정 2020-05-03 04:28

지난해 번역된 에서 처음으로 ‘소설’을 써보았던 재일동포 지식인 강상중 교수가 이번에는 소설과 에세이가 결합된 또 다른 형식 실험을 선보였다. 일본에서 지난해 나온 신간 은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과 독일 작가 토마스 만 소설 의 두 주인공이 소설 속 이야기가 끝난 지 30, 40년 뒤에 만난다는 설정을 지닌 소설 ‘속·마음’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음의 힘’에 관한 에세이를 교차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마음의 힘> 사계절 펴냄. 김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1만2천원.

<마음의 힘> 사계절 펴냄. 김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1만2천원.

‘마음’과 ‘마의 산’ 주인공이 만난다면

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발간됐고, 은 1924년에 초판이 나왔지만 처음 연재를 시작한 것은 1912년이었다. 일본은 연 3만 명, 한국은 1년에 1만5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이 “100년 전의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는 판단이 강상중으로 하여금 100년 전 일본과 독일의 두 소설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강 교수는 흔히 쓰는 ‘자살’ 대신 ‘자사’(自死)라는 표현을 쓰는데, ‘죽일 살’(殺) 자의 능동적·범죄적 뉘앙스를 피하려는 뜻에서다. 의 배경을 이루었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지은이 자신의 개인적 동기 역시 다시 읽을 수 있다.

집필 연도보다 더 큰 두 소설의 공통점은 강 교수가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이라 표현한 소설 주인공들의 처지에 있다. 의 주인공은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도 관료나 학자 같은 번듯한 직업을 가질 생각은 없이 ‘선생’이라는 낙오자 같은 인물 집에나 들락거린다. 주인공 한스도 대학을 졸업한 뒤 조선 설계 기사가 될 예정이었으나 결핵균의 방문을 받아 스위스 다보스의 결핵 요양소에서 7년 세월을 보내게 된다. 발전과 성취를 중시하는 이들의 눈에 답답하고 안쓰러워 보일 수도 있을 이들의 처지가 오히려 ‘마음의 힘’을 키울 좋은 기회라고 강 교수는 파악한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생산성이나 합리성 같은 것과는 인연이 없는 세계에 풍덩 뛰어드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마음의 성장기이며 충전 기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 결핵 요양소가 있던 다보스가 오늘날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장소라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옛날의 다보스를 잃어버린 지금은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무기 없는 전쟁의 전쟁터가 되어버려, 젊은이들이 특별한 목표 없이 자신의 마음을 탐구하거나 흥미가 생기는 대로 지적 관심을 따라가볼 수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사실을 강 교수는 개탄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눅 들거나 지레 포기하지 말고 대안을 궁리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대안을 궁리하는 마음

“대안을 사고하지 못하는 마음은 ‘폭이 좁은 마음’, ‘체력이 없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마음의 풍요로움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복수의 선택지를 상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만을 현실이라고 보지 않고, ‘또 하나의 현실’을 생각해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 마음의 힘을 키울 도움말을 100년 전 소설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지은이는 이 책을 가리켜 ‘이야기 인생론’이라 일렀다.

최재봉 문화부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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