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로맨스 드라마의 트렌드는 ‘남사친’(남자사람 친구의 줄임말) 판타지다. 현실에서 ‘남사친’은 애인인 남자친구와 달리 성만 다른 친구 사이임을 강조하기 위해 생겨난 신조어지만 요즘 로맨스에서는 여성들의 새로운 이상형으로 묘사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미니시리즈 최고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KBS 의 라준모(차태현), 현재 방영 중인 SBS 주말극 의 남주인공 최원(이진욱) 등이 대표적이다.
의 최원은 죽마고우 오하나(하지원)의 곁을 17년 동안 지켜오면서 그녀에게 한결같은 배려를 아끼지 않아 ‘남사친 끝판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의 라준모도 25년 지기 탁예진(공효진)과 늘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며 변함없는 응원과 신뢰를 보여주는 ‘남사친의 정석’과도 같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력과 동성 친구의 편안함을 동시에 갖춘 이들은 기존의 ‘나쁜 남자’ 스타일에 피로를 느낀 여성들에게 대안적 이상형으로 떠올랐다.
사실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는 아니다. 한국형 트렌디 드라마의 원조가 된 MBC 드라마 를 시작으로, 신데렐라 로맨스의 재벌 2세만큼이나 꾸준히 인기를 누려온 캐릭터가 ‘사랑과 우정 사이’의 이성 친구다. 그런데 최근의 ‘남사친’ 판타지에는 요즘 현실을 반영한 몇 개의 코드가 더해졌다. 우선 눈에 띄는 건 근래 예능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썸’ 코드다. 공식 연인 이전의 호감 단계를 뜻하는 ‘썸’은 남녀 사이를 흔히 이성애적 관계로만 바라보는 태도를 벗어나 인간관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한 인식이 늘어났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상적 ‘남사친’의 요건에는 이러한 ‘썸’처럼 이성애적 감정보다 앞선 인간적 호감이 전제돼 있다. ‘남자’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예컨대 라준모가 탁예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던 장면 못지않게 빛났던 순간은 프로그램 폐지 뒤에도 스태프들에게 의리를 지키는 모습이나 위기에 빠진 신디(아이유)를 끝까지 믿고 힘을 실어주는 ‘인간미’ 넘치는 장면들이었다. 최원 역시 예의 바르고 젠틀한 면이 장점인 캐릭터다.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등이 주를 이루던 안하무인 남주인공 캐릭터와 비교해보면 왜 이들이 인기를 끄는지 답이 나온다.
‘남사친’ 판타지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동등한 관계다. ‘남사친’ 로맨스는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여성을 수동적으로 그리는 드라마보다 훨씬 양성평등에 근접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남사친’들이 진보적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즘 측면에서 보면 오하나를 아줌마라고 놀리는 최원이나, 탁예진에게 “보통 여자들” 운운하는 라준모 둘 다 문제가 많은 캐릭터다. ‘센 척’하지만 남주인공 앞에서는 자주 약해지는 여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각자의 한계로 인해 동등해진다. 예컨대 최원과 라준모가 하나와 예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은 꽤 중요하다. 에필로그에서 연애 시작 이후로는 “이젠 무슨 일을 해도 쌈닭처럼 들이받지 않고 물 흐르듯이 받아들인다”며 달라진 점을 강조하던 예진이 말을 마치자마자 ’쌈닭’으로 돌변하는 장면처럼, ‘남사친’ 로맨스는 서로를 교정하려 들지 않고 결핍과 단점을 그 자체로 이해함으로써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그려내기에 의미가 있다. 로맨스의 진화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차츰 성장하다보면 우리도 언젠가는 의 ‘몬들러’(모니카와 챈들러) 커플처럼 이상적인 ‘남사친’ ‘여사친’ 로맨스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김선영 TV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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