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동네에 담요거지가 살았다. 동네 뒷산인 바위산에서 저녁 어스름에 내려와 “밥 좀 주세요”라고 말하며 바가지를 내밀었다. 새카맣게 때가 묻은 군용 담요, 언제 깎았는지 모르는 수염, 퀭한 눈, 몸에서 풍기는 악취. 처음에 형과 나는 무서워서 방으로 뛰어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무섭지도 않은지 주걱으로 따뜻한 밥을 퍼주고 김치를 얹어주곤 했다. 우리 집엔 가끔씩 찾아왔다. 다른 집에서도 매몰차게 내치지 않고 밥을 줬던 기억이 난다.
영화 에서 미치루(다베 미카코)는 고향을 떠나 힘든 도시생활을 이어간다. 어느 날 너무 배가 고파 심야식당에서 허기를 채운 뒤 밥값을 계산하지 않고 도망간다. 마스터(고바야시 가오루)는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미치루는 밥값을 하겠다며 식당 보조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마스터는 혼자 일한다는 원칙을 깨고 미치루를 받아준다.
음식의 특징 중 하나는 나눔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밥 한 끼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이와 같은 음식의 사회성을 잘 드러낸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이다. 이 영화는 유독 먹는 장면이 많다. 영화 자체가 ‘먹는 것’에 대한 거대한 은유다. 한강은 미군이 버린 포름알데히드를 먹는다(버렸으니 먹을 수밖에). 한강 독극물로 탄생한 괴물은 사람을 삼킨다. 반면 박강두(송강호)는 딸 현서(고아성)를 괴물에게 잃은 뒤, 온 가족이 모여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다. 강두 가족의 목표는 현서를 구출해 같이 밥을 먹는 것이다. 미군-포름알데히드-한강-괴물, 그리고 부패한 공무원과 부실한 국가 시스템으로 이뤄진 ‘악순환의 고리’가 한 가족의 평화로운 식탁의 기쁨을 빼앗는다. 강두 가족은 그 기쁨을 되찾기 위해 독자적인 행동에 나선다. 괴생명체가 출현해 딸이 끌려갔다며 국가에 읍소해보지만, 국가는 되레 강두를 존재하지도 않는 바이러스 감염자로 몰아붙인다(국가는 가족을, 개인을 돌보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2006년 제작보고회에서 “강두 가족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데, 우리가 언제 이런 약한 사람들을 도와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게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일까.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고 구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괴물에게 딸을 잃은 강두는 현서를 통해 이루지 못한 것을 부랑소년 세주(이동호)에게 밥을 차려주면서 이룬다. 봉 감독은 늦은 저녁에 강두와 세주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장면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가 돌보지 않는 부랑소년을 개인이 거둬들여 밥을 먹이는 ‘선순환의 고리’를 완성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도 음식이 지닌 사회성을 잘 담아낸 작품이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은 선수촌을 급습해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살해한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비밀요원 애브너(에릭 바나)를 리더로 암살팀을 구성해 피의 복수전을 벌인다. 애브너는 적을 살해할 때마다 아군이 똑같이 보복당하자 복수전을 끝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해가 질 무렵, 상관 에프레임(제프리 러시)을 만나 이제 그만 복수를 끝내고 나와 함께 따뜻한 음식을 먹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에프레임은 애브너의 청을 거절하고, 또 다른 복수의 길로 나선다. 총을 내려놓고 포크와 스푼을 들어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자는 것, 그러니까 이제 화해의 길로 나서자고 제안하는 영화가 이다. 스필버그 감독은 애브너가 팀원들을 위해 요리하고, 팀원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곳곳에 넣어 ‘음식에 깃든 평화’를 표현했다.
배고픈 담요거지에게 밥 한 끼를 건네던 할머니, 어머니부터 의 애브너까지 모두 나눔을 통한 저녁 식사의 풍만함과 평화로움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찰스 다윈의 말이 생각난다.
“행복한 날들도 있었습니다. 맛있게 먹은 저녁을 떠올려보세요.”
곽명동 객원기자·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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