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버스. 직행버스와 대비되는 말이다. 종점까지 지름길로 곧장(직행) 가지 않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정류소마다 멈춰서는 게 완행버스다. 각 지역의 마을버스·시내버스·농어촌버스를 가리킨다. 하지만 완행버스가 느릿느릿 가는 건 아니다. 빠르게 갈 줄 다 안다. 돌고 돌아 갈 뿐이다. 지방도로·마을길·논밭길·샛길 구석구석 들어가고, 들어갔다 다시 돌아나오고, 어르신들 안전하게 승하차시키느라 지체하고, 보따리 이고 지고 뛰어오는 할머니·할아버지 기다리느라 시간이 좀더 걸릴 뿐이다. 여행자를 위한 버스가 아니라 주민을 위한 버스다. 구석구석 에둘러가는, 주민을 위한 이동수단. 여기에 완행버스 여행의 매력이 숨어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많지만 </font></font>사실 완행버스 여행은 불편한 점이 많다.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다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좀 낡은 비유를 들자면, 자가용을 이용한 여행이 디지털식이라면, 완행버스 여행은 아날로그식이다. 보고 싶은 것들을 순서를 정해서 둘러보고, 기대보다 실망스럽다면 지나쳐 가고, 더 보고 싶다면 오래 머무르고, 다시 보고 싶다면 즉각 되돌아가서 볼 수 있는 게 자가용 여행이다. 반면 완행버스 여행은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노선을 타야 한다. 일단 내리면 다음 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일정을 바꿔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고 싶거나, 되돌아가고 싶으면 시간을 알아보고 정해진 시각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
농어촌버스를 타고 여행하려면 그래서,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일정도 여유 있게 잡는 게 좋다. 어쩔 수 없이 정류소에서 몇십 분, 길게는 몇 시간 기다리는 동안 맞닥뜨리는, 일정에 없던 것들을 즐기는 일이 바로 시골버스 여행이다. 캔커피 따 마시며 빈둥거리고, 낯설고 또 익숙한 풍경 속에 숨어 있던 소소한 볼거리·이야깃거리를 나도 모르게 들여다보고 발견해가는 게 시골 버스 여행의 맛이다.
최근 강원도 속초~고성 버스여행길에 만난 한 할아버지는, 옛 정자 천학정 주변의 숨은 볼거리들을 꿰고 있었다. 지도에도 없고, 여행기에도 보이지 않고, 군청 누리집에도 없는, 그리고 현장 안내 표지판도 없는 1천 년 묵은 소나무와 거대한 바위글씨 들을 알려주었다. 간성읍으로 가는 버스에서 만난 아저씨는 버스로는 갈 수 없는 고찰 건봉사의 내력과 볼거리를 들려주었다. 충남 태안 이원반도 만대항으로 가는 완행버스 기사는 솔향기길의 아름다움과 꾸지나무골·피꾸지해변의 매력, 그리고 우럭젓국·게국지 백반을 잘하는 식당들을 귀띔해줬다. 굽은 허리에 지팡이 짚고 보따리까지 든 어르신 승객들을 부축해 좌석에 앉혀드리고, 짐도 들어 나르던 태안여객 아주머니 안내원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모두, 그 지역에 밝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완행버스가 아니면 만나기 어려웠을 풍경들이다.
이런 완행버스 여행의 매력을 찾아 떠나기 전에 먼저 점검해두면 좋을 것들이 있다. 완행버스 노선상의 주요 목적지들을 미리 정하고 운행 시간을 확인해 일정을 짠다. 인터넷 지도와 시·군청 누리집 등을 검색해 이동 노선과 도로변 볼거리·먹을거리·숙소들을 점검한다. 출발점 도시까지는 고속버스나 기차를 이용하고, 현지 시내버스터미널(작은 시·군은 대개 시내·외버스와 고속버스 공용터미널이지만, 큰 도시는 고속버스터미널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이나 역에서 지역 관광지도를 챙긴다. 요금은 대개 티머니카드·교통카드·신용카드로 낼 수 있지만, 만약을 위해 1천원짜리도 준비해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만약을 위해 1천원짜리는 구비하시라</font></font>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덥고 짜증스러운 여름철에 웬 느려터지고 답답한 완행버스 타령이냐고 거듭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시골버스 좌석은 언제나 널널하고요, 에어컨도 빵빵하고요, 날 맑으면 좌우 차창 전망이 탁 트이는데, 비 오면 더 운치가 있지요. 게다가 주민(승객)들은 정이 많고요, 시골버스 운전기사는 대개 친절하고 털털하고 시원시원하답니다. 아닌 경우도 물론 있지만.
이병학 ESC팀 선임기자 leebh99@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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