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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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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과 비난 사이, 싸이

미국 시장 겨냥한 신곡 <행오버> 뮤직비디오… 힙합 장르로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싸이 캐릭터 간직, “절묘한 절충”-“무언가 하려다 끝난다” 평가는 엇갈려
등록 2014-06-18 14:44 수정 2020-05-03 04:27
YG엔터테인먼트 제공

YG엔터테인먼트 제공

“거시기가 거시기 하니 거시기 하고.”

싸이가 신곡 (Hangover)에서 이렇게 랩을 하듯이 는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자 “거시기가 거시기 하니 거시기 하고” 정도의 반응을 얻고 있다. 여기서 특정되지 않는 ‘거시기’는 “거시기 해서 좋던디”도 되고, “거시기는 왜 거시기 했대”도 되고, “거시기 모르겄어”도 된다. 숙취를 뜻하는 ‘행오버’가 끝없이 반복되고 영어 랩이 계속되는 의 몇 마디 없는 귀한 한국어 랩을 인용하면, “베이비 나를 시험해! 어서 나를 시험해!”. 의 기적 같은 히트로 싸이는 무엇을 해도 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다. 스스로 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노래와 을 비교하는 것은 상당한 압박감으로 다가온다”고 밝혔듯이.

“베이비 나를 시험해! 어서 나를 시험해!”

을 기억하려 해도 자꾸만 의 가사와 리듬만 떠오른다. 분명 을 추억하려 했는데 자꾸만 “갈 데까지 가보자~”의 흥겨움이 머리에 맴도는 것이다. 그렇게 은 의 스타일을 철저하게 계승하는 노래였다. 그것에 견주면 는 “나를 시험해” 정신에 근접한다. 전형적인 댄스뮤직과 반복되는 훅(Hook)에 기대지 않고, 래핑이 흐느적거리는 힙합이다. 이민희 대중음악평론가는 의 전략을 이렇게 요약했다. “의 재생산이 사실상 잘 통하지 않았다. 미적지근한 반응의 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은 것 같다. 세상은 여전히 재미있는 것을 원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래서 는 완전히 방향을 바꿨다. 팝에서 힙합으로 노래 스타일을 바꿨다. 여기에 무려 스눕독(Snoop Dogg)이라는 힙합의 전설을 동반자로 붙여놓고 차별화를 시도했다.”
뮤직비디오에 대해 “스눕독의 뮤직비디오 같다는 느낌”이라고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는 말했다. 마치 싸이가 피처링한 듯하다는 것이다. 음악의 비중은 물론 음악의 경향도 그렇다. 는 묵직한 베이스에 비트를 잘게 쪼개는 ‘트랩’(Trap)을 기본으로 신시사이저가 깔리는 일렉트로닉 댄스가 중간중간 끼어드는 방식으로 흐른다.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함께 꽹과리 같은 국악기 소리도 더해진다. 그러나 기본은 힙합이다. 뮤직비디오는 주점, 노래방 등을 휘저으며 싸이가 스눕독을 한국식으로 접대하는 내용이지만, 노래는 스눕독의 세계로 싸이가 초대된 것처럼 들린다. 물론 싸이는 래퍼다. 그러나 여기엔 반복되는 한국식 훅도, 말춤도 없다. 이런 결과에 대해 누구는 “절묘한 절충”이라 평가하고, 누구는 “무언가 하려다 말고 끝난다”고 폄하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싸이다움

이런 접합에 대해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지금 가장 유행하는 요소를 붙여놓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것은 폄하가 아니다. 어차피 케이팝 자체가 유로 댄스와 미국 힙합을 한국식으로 섞어놓은 결과란 것이다. 케이팝의 이런 공들인 접합은 오리지널을 능가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 싸이의 은 전형적인 케이팝이 아니었다. 뜻밖에 세계시장에서 ‘얻어걸린’ 히트에 가까웠다. 차우진 평론가는 “기획사가 훈련한 한국 아이돌이 유럽 작곡가의 노래를 받아서 아시아 시장에 내다파는 것이 전형적인 케이팝”이라며 “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매끈하게 다듬어진 케이팝이 아닌 은 예기치 않게 세계인이 즐기는 노래가 됐다. 어쨌든 싸이는 케이팝의 상징이 된 것이다. 차우진 평론가는 의 힙합과 댄스의 접합에 대해 “싸이는 팝음악 주류의 한복판에서 몸으로 적응하며 자기도 모르게 이런 공식을 익혀서 내뱉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행오버〉를 발표한 싸이는 스눕독과 함께 미국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에 출연했다(위쪽). 그의 전작인 〈젠틀맨〉이 〈강남스타일〉의 연장선에 있다면 〈행오버〉에서는 음악적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유튜브 갈무리, YG엔터테인먼트 제공

〈행오버〉를 발표한 싸이는 스눕독과 함께 미국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에 출연했다(위쪽). 그의 전작인 〈젠틀맨〉이 〈강남스타일〉의 연장선에 있다면 〈행오버〉에서는 음악적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유튜브 갈무리,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다시, 재미있지만 새롭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싸이는 낯설다. 영리한, 영악한 싸이는 섣불리 ‘오버’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싸이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민희 평론가는 “는 싸이와 그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가 느끼는 복합적인 책임의식의 결과가 아닐까”라며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싸이라는 캐릭터 혹은 브랜드의 가치를 계속 유지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포기하지 못하는 이런 싸이다움은 뮤직비디오에서 도드라진다.

월미도 놀이공원과 랩하는 주성치

뮤직비디오는 스눕독을 초대해 한국의 음주문화를 소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술잔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며 순식간에 수백 잔의 폭탄주가 만들어지거나, 술자리에서 만난 남녀가 함께 노래방에 가거나, 숙취 해소 음료와 컵라면으로 편의점에서 해장을 하거나, 뮤직비디오는 한국식 음주문화의 퍼레이드로 이어진다. 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영화 코드를 차용한 뮤직비디오에 한국적 문화를 더한 것이다. 여기에서 싸이 특유의 몸짓과 표정은 핵심이 된다. 익숙한 싸이의 유머로 힙합은 덜 낯설어진다. 유튜브 시대가 낳은 비디오 스타인 싸이에게 뮤직비디오는 뮤직만큼 중요하다. 이민희 평론가는 “빌보드 차트 성적보다 긴급한 것은 싸이가 유튜브 사용자들을 1분 더 붙잡아두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 뮤직비디오 재생 시간이 3분54초였다면, 의 재생 시간은 5분8초로 1분여 길다는 것이다.
가 이끄는 한국적 공간은 서울의 고궁이 아니라 인천 월미도 놀이공원이다. 이렇게 서구인을 자극하는 21세기의 오리엔탈이 향하는 장소는 한국에서도 변방에 있는 놀이공원이다. 마치 대중음악의 접합으로 새로운 장르인 케이팝이 만들어진 것처럼,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이미지도 이런 한국식 접합의 연속이다. 차우진 평론가는 뮤직비디오에서 발견하는 한국적인 것의 맥락을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한국적이라고 나오는 것들은 사실 한국에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한국에서 뒤섞인 것이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폭탄주를 만들거나, 씨엘(CL)이 한자가 적힌 병풍 앞에서 춤을 추거나, 숙취 해소를 하는 편의점은 일본의 그것과 다를 바 없거나, 한국에서 태어나기보다는 한국에서 뒤섞인 것이 한국적인 것이 된다.” 이렇게 대중문화에서 재현되는 한국적인 것은 더 이상 전통적인 것이 아니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는 아시아 대중문화의 유산도 끌어온다. 노란 트레이닝복을 입고 어설픈 무술을 하는 싸이의 모습이나 술자리가 무술영화의 난투극으로 이어지는 엔딩은 홍콩 영화의 유산을 속으로 끌어온다. 때때로 싸이는 랩하는 저우싱츠(주성치)처럼 보인다. 이렇게 는 한국적인 것과 아시아적인 것의 접합이기도 하다. 월드스타 싸이는 한국인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인으로 미국에서 조명되는 인물인 것이다.

8월엔 신나는 댄스곡 공개

유튜브에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다음 조회 수는 빠르게 늘었다. 뮤직비디오에 댓글을 단 해외 팬의 반응은 엇갈린다. 누구는 “한 달 안에 3억 건 조회 내기할래?”라고 쓰고, 누구는 “이거 정말 싸이 음악 맞아?”라고 비꼰다. ‘안전빵 모험’을 선택한 는 “올여름에 새 싱글 가 공개된다”(New Single Daddy coming this summer)라는 문구로 끝난다. 강명석 편집장은 “선공개곡인 는 메인 타이틀에 앞서 캐릭터를 잡아주는 곡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8월에 나오는 에 대해 싸이의 소속사는 “신나는 댄스곡”이라고 밝혔다. 싸이의 여름은 이제 시작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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