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TV가 국방색으로 물들고 있다. 연초에 “제설~ 제설~” 하며 공군에서 자체 제작한 패러디 동영상 ‘레 밀리터리블’이 웃음을 터뜨릴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올해 tvN 에서 독립한 군대 시트콤 은 딴살림을 차린 뒤에도 각종 유행어를 쏟아내며 굳건한 팬층을 거느리게 되었다. 여기에 지상파의 일요일 황금시간대에 등장한 병영 체험 예능 의 기합 소리가 시청자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한다.
‘푸른 거탑‘은 “앗, 저런 것까지?” 하는 깨알 같은 디테일로 시청자의 뒤통수를 때린다. tvN 제공
국방부는 오래전부터 TV의 훌륭한 파트너였다. 의 ‘동작그만’처럼 군대 내무반을 소재로 한 코미디는 항상 존재해왔다. 의 ‘특전사 혹한기 훈련’ 등의 병영 체험은 여차하면 갖다쓰는 방송사 소품 같은 것이었다. 처럼 군인들이 직접 등장하는 쇼가 최고의 인기를 모으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더디기로 유명한 국방부 시계처럼 군대 문화는 거북이처럼 포복했고, 초음속으로 변해가는 민간인의 감각을 따라잡기엔 버거웠다. 군대 관련 프로그램은 한물이 아니라 서너물은 갔다고 여겨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땅굴을 파고 온 듯, 불쑥 눈앞에 솟아나 난리를 치고 있다.
사실 방송에서 군대 이야기만큼 보편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소재를 찾기도 어렵다. 대한민국 남자 대다수가 악몽의 레퍼토리로 반복 체험하고 있는 강렬한 기억이고, 연인이나 가족까지 치면 누구든 군대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둘은 가지고 있다. 사회에서의 직업과 신분과 관계없이 한 내무반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리얼리티쇼의 원형이고 갖가지 개성의 인물들이 부딪치면 그대로 시트콤이다. 여기에 연애 욕구로 충만한 청춘들을 가둬두었으니 비극적 로맨스는 기본, ‘고무신 되돌리기 특급 대작전’ 같은 스펙터클까지 가능하다. 문제는 이런 패턴들이 누차 반복돼왔다는 것이다.
이 시청자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의 보편성에 ‘앗, 저런 것까지?’ 하는 깨알 같은 디테일을 더했기 때문이다. 사단장 방문으로 인한 헛된 삽질, 초코파이 하나에 흔들리는 종교생활, 팬티 한 장에 목숨 거는 보급품 대작전… 이런 소재는 항상 있어왔다. 그런데 대사 하나, 행동 하나가 더 치밀하고 쪼잔하게 펼쳐진다. ‘사이코’ 상병은 후임병을 벌주기 위해 말한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용서해주마.” 그런데 그 상대가 거울이다. 탈출을 기대하게 하지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형벌. 군생활을 압축한 철학적 상징으로까지 여겨진다.
의 디테일은 리얼리티에 있다. 연예인들이 병영생활을 한다. 여기까지는 비슷하다. 그런데 카메라의 수와 일거수일투족을 찍는 집요함이 다르다. 류수영에 따르면 4박5일 촬영 동안 M본부의 메모리카드를 전부 쓰는 듯하단다. 예능이라고 유머를 섞거나 쓸데없는 미션을 주지도 않는다. 가급적 실제적인 상황을 만들고, 빽빽하게 찍은 결과를 고르고 골라 섬세하게 편집한다.
꼼꼼하게 재생되는 군생활의 세부에서 시청자는 이중의 감정을 느낀다. 군필자들은 “맞아, 저랬지” 하며 뽀글이 라면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에 추억을 되새긴다. 미필자들은 “도대체 저런 걸 맛있다고 먹어?” 하며 일종의 이문화 체험을 하며 낄낄댄다. 그런데 여기에서 두 프로그램의 포지션이 다르다. 이 노란 장판의 침상이 펼쳐져 있는 복고풍의 군대라면, 는 깔끔한 생활관의 현대적인 병영생활을 보여준다. 전자레인지에 햄을 돌려 캔 뚜껑으로 잘라먹는 모습을 보며 ‘그때 그랬지’ 하다가, 내무반의 IPTV로 걸그룹 동영상을 되돌려보는 걸 보면 ‘군대 좋아졌네’라고 한다.
이런 공감과 이질감의 시소 속에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은 B급 정서와 패러디 코드를 적절히 활용한다. 특히 최종훈이 걸물이다. 똥파리가 따라다니는 말년 병장은 항상 ‘말년에 진지공사라니’ ‘말년에 군기교육대라니’ 하면서 꼬인 군생활을 한탄하며 웃음을 선사한다. 그리고 바깥에서 볼 때는 터무니없는 일들을 벌이는데도 TV 속 인물들은 항상 진지하다. ‘이것이 어떤 일을 만들어낼지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라는 회고조의 내레이션 역시 재미있다.
는 대놓고 웃기지 않는다. 연예인, 40대, 심지어 외국인이라는 특수 상황을 전혀 봐주지 않는 칼 같은 군기는 살벌하다. 참가자들은 어떻게든 웃음으로 그 막힌 감정을 해소하고 싶다. 그러나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청룡열차를 더 높게 올리거나 섹스의 사정을 연기하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긴장이 클수록 웃음도 크다. 이런 큰 낙차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요소가 고문관 외국인 샘 해밍턴이다.
화면 속에서 쩔쩔매는 말년 병장과 외국인 사병을 보며 배꼽을 잡던 우리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게 남의 일이 아니구나. 개인의 개성은 사라지고 오직 계급장에 따라 상명하복하는 집단. 고된 일과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비상이 걸려 닦지도 못하고 포대로 달려가야 하는 상황. 그나마 즐거운 시간은 ‘내 보직이 제일 힘들다’며 세탁기만 한 돌을 날랐다는 무용담을 쏟아낼 때다. 우리는 TV 속의 군인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래도 내 생활은 좀 낫네. 아닌가, 저게 내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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