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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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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출장 메이요~

이거, 어디갔어
박복하기 이를 데 없는 내 출장 인생
등록 2013-03-16 16:03 수정 2020-05-03 04:27

나의 첫 해외출장지는 중국이었다. 2005년 7월. 덥고 텁텁하기 이를데 없는 중국 산시성 황토지대를 달리고 있었다. 대절한 차는 에어컨이 당연히 되지 않았고, 창문이 당연히 닫히지 않았고, 차 바닥에 당연히 뚫린 구멍으로 아우슈비츠 독가스처럼 비포장도로의 황토먼지가 올라왔다. 중국이라는 땅덩어리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다. 황허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를 찾아 조금 올라가야 했다. 지도에서는 그저 손가락 마디 하나였다. 알고 보니 그 손가락 한 마디가 800km였다. 탄광지대를 지날 때는 황토먼지가 탄가루로 변했다. 그렇게 찾아갔더니 여기에 온 한국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란다. 그러게. 누가 거길 가나. 다시 800km를 달려 숙소로 돌아왔다. 머리에서 나온 까만 흙으로 개수구가 막히더라. 그다음 출장지도 중국이었다. 그다음 출장지는 비행기가 떨어진 캄보디아였다. 그리고 다시, 8년 전 그 황토 먼지 날리던 중국 산시성.

산시성 시안에서 ‘홍색성지’ 옌안으로 이동해야 했다. 중국 공산당이 개고생했다는 대장정을 따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시안~옌안 고속철이 뚫렸다는데 내가 왜? 한국에서 알아보니 시안 도착 비행기 시간과 시안에서 옌안으로 떠나는 고속철 시간이 빠듯하게 맞물렸다. 인천공항. 오전 10시10분에 이륙해야 할 비행기가 뜨지 않았다. 마음이 급했다. 스튜어디스를 불러 다그쳤다. 자기들끼리 ‘진상승객’이라고 했겠지. 40분 뒤에야 비행기는 이륙했다. 기내에서 서빙하는 와인 2잔을 마시고 자다 깼더니 될 대로 돼라다. 시안공항에서 고속철역으로 내달렸지만 결국 놓쳤다. 시 외곽에 지은 어이없이 큰 고속철도역에는 택시가 어이없이 없었다.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갈아 타고 사람들이 어이없이 바글거리는 버스터미널로 갔다. 옌안 가는 버스는 한참 떨어진 다른 터미널로 옮겨갔단다. 택시는 승차 거부에 새치기까지 장난 아니다. 동남아 관광지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탔던 툭툭(삼륜오토바이)을 어이없는 요금으로 탔다. 문도 없는데 바짝 따라오는 버스들이 어이없이 빵빵거린다.

옌안행 ‘고급버스’에 탔는데 자리가 없다. 앞차를 갑자기 취소하더니 앞차 승객까지 한 버스에 몰아넣었다. 어이없다. 운전사가 합판으로 만든 사물함 비슷한 곳 뒤에 나를 앉혔다(사진). 다리가 안 펴진다. 5시간 동안 그러고 가란다. 나름 원칙은 있는지 나보고 안전벨트를 하란다. 바닥에 늘어진 벨트를 잡으니 끈적한 액체가 손에 묻어난다.

차라리 침이면 좋겠다. 운전사 옆 바닥에 한 남자가 앉아서 간다. 나보다 더 편하다. 내 다리는 마비됐다. 통로 쪽에 앉은 중국 남자(사진 속 청바지)는 꿀보직을 맡은 듯 느긋하다. 그래, 줄을 잘못 섰다. 군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이건 ‘푸른 거탑’ 인민해방군편이야. 휴게소에서 음료수 하나 샀더니 여점원이 잔돈 대신 사탕을 가져가란다. 지금, 운전사는 버스 안에서 맛있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 벌써 6개비째다. 이 정도는 돼야 ‘대륙의 버스’다. 밤 10시22분, 4시간 47분을 달려 옌안에 도착했다. 내 다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참 곱게 갈린 황토먼지가 사방에 떠다닌다. 고난의 행군이다. 꿀출장 어디 갔어, 꿀출장 메이요~.

옌안(중국)=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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