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가요계를 돌아보고 결산하는 시상식 시즌이 돌아왔다. 이번 세밑 새해에 치르는 주요 가요시상식만 6개다. ‘가요시상식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미국의 그래미어워드나 영국의 브릿어워드 같은 압도적 권위의 시상식은 여전히 부재한 게 현실이다.
지난 11월 2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MAMA)를 봐도 성과와 한계가 뚜렷하게 갈린다. MAMA 축하공연은 시상식뿐 아니라 음악쇼 중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다양한 형식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는 MAMA의 상징처럼 됐다. 올해는 YB, 다이나믹 듀오, 쌈디 등이 뭉쳐 록과 힙합을 뒤섞고,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 비스트, 현아 등이 클래식과 케이팝(K-pop)을 접목하는 이색무대를 선보였다. 세계적인 힙합 그룹 블랙아이드피스의 윌아이앰과 애플딥은 투애니원의 씨엘과 ‘깜짝’ 협연을 펼쳐 음악 팬들을 놀라게 했다.
아이돌이 절대적으로 유리
1999년 출범한 MAMA는 지난해 아시아 음악시장의 부흥을 목표로 삼으며 개최지를 마카오로 옮겨 아시아 13개국에 생중계 방송했다. 올해 시상식 또한 아시아 13개국에 생중계됐고, 미국·프랑스 등 7개국에선 녹화방송된다. 유튜브 등 13개 디지털 플랫폼으로도 생중계됐다. 최근 전세계에 불어닥치고 있는 K-pop 열풍에 힘입어 전세계 19억 명이 이번 시상식을 본 것으로 주최 쪽은 추산한다. 세계적 힙합음악인 닥터 드레와 스눕 독이 아시아에서 처음 협연을 선보이는 자리로 MAMA를 택한 것은 이런 막대한 전파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상식 자체에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올해의 앨범’(슈퍼주니어 ), ‘올해의 가수’(소녀시대), ‘올해의 노래’(투애니원 ) 등 대상 세 부문이 모두 인기 아이돌에 집중됐다. 다른 부문도 백지영과 리쌍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이돌이 독식했다. 심지어 ‘베스트 밴드 퍼포먼스’도 아이돌 밴드인 씨엔블루가 차지했다. 수상자 선정은 시청자 투표, 전문심사위원 심사, 선호도 조사, 음반·음원 판매량, 선정위원회 심사 등을 합산해 이뤄진다. 음악성 위주로 선정되는 전문가 심사보다 인기도를 반영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음악 완성도와는 별개로 충성도 높은 팬이 많은 아이돌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측면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는 시상식도 있다. 2012년 1월 열리는 서울가요대상은 1990년 시작돼 2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이에 걸맞은 권위는 부족하다는 평이 많다. 선정 과정에 20%를 반영하는 모바일·ARS 투표의 경우 하루 10번까지 중복투표가 가능한데다, 모바일 투표는 건당 500원, ARS 투표는 30초당 300원을 내야 한다. 열혈팬이 두 달 가까운 기간에 하루 10번씩 꾸준히 투표한다 치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청구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선정된 가수가 온전한 영예를 누릴 수 있을까?
거대 기획사 눈치보기 논란
특정 기획사 편향 등 공정성 시비 또한 여러 시상식의 고질적 병폐다. 지난해 MAMA에는 SM 가수들이 먼저 불참을 선언했고, MAMA는 그들에게 주요 상을 주지 않았다. 주요 상은 YG와 JYP 가수들에게 돌아갔다. 거꾸로 지난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는 YG 가수들이 불참한 가운데 SM 가수들이 주요 상을 휩쓸었다. 특히 골든디스크 쪽은 홈페이지에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가수는 수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명시해 조건부 수상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동방신기 일부 멤버가 결성한 JYJ가 선정 과정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음원·음반 판매량에서 큰 성과를 올렸음에도 대부분의 시상식에서 후보조차 못 든 것 또한 거대 기획사(SM)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있다.
이와 같은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려는 시상식도 있다. 디지털 음원 판매량 등을 중심으로 한 ‘멜론뮤직어워드’(MMA)와 2012년 2월 처음으로 열리는 ‘가온차트어워드’가 그것이다. MMA는 음원 사이트 멜론이 주최하고, 가온차트어워드는 여러 음원 사이트 결과를 취합해 발표하는 가온 차트가 주최한다. 철저히 판매량 위주로 선정하는 미국 빌보드뮤직어워드와 비슷한 형태다. 공정성 시비가 일 여지가 없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조건 많이 팔린 음악에 상을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론도 적지 않다. 영화시상식만 봐도 작품성을 고려하지 않고 관객이 많이 든 영화에 상을 주는 경우는 없다. 그래미어워드의 경우, 미국 레코드예술과학아카데미(NARAS)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판매량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한국판 그래미어워드를 지향하는 시상식도 있다. 판매량, 인기도 등을 제외하고 오로지 음악성만 기준을 삼아 전문가들의 투표로 선정하는 한국대중음악상(KMA)이다. 대중음악 또한 예술의 한 분야임을 일깨우는 등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도이지만, 상당수 수상이 대중에게는 생소한 인디음악인에게 집중되다 보니 ‘그들만의 리그’라는 얘기도 듣는다. 이는 기형적으로 아이돌에만 쏠린 주류 가요계와 미디어의 생리 탓도 있다. 어찌 됐든 한국대중음악상으로선 대중 기호와의 괴리를 좁혀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노력하면 로망도 현실이 된다
하나의 시상식이 절대적 권위와 인기도, 대중성을 모두 갖추기는 쉽지 않다. 한쪽을 강화하면 다른 한쪽은 약화되기 마련이다. 6개 가요시상식이 제 각각의 특징과 지향점을 가진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모두 두루 갖추려는 노력을 각 시상식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 결과에 100% 동의하진 않더라도 충분히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요시상식은 음악산업 관계자와 대중 모두의 ‘로망’이다. 그 모두가 노력하면 로망은 현실이 된다.
서정민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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