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열렸다. 지난 7월26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 는 제작비 100억원을 들인 한국형 3D 영화다. 한반도 남단 석유시추선을 습격하는 괴물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이후 5년 만에 나온 괴수영화기도 하다. 를 연출한 김지훈 감독의 작품이고 하지원·안성기·오지호 등이 출연하며 8월4일 개봉한다. 영화평론가 듀나가 를 통해 한국 공상과학(SF) 영화의 현주소를 짚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원래 계획을 따른다면, 나는 를 보고 배우 하지원의 경력을 예찬하거나, 이후 한국 SF 괴수영화가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해 써야 했다. 둘 중 하나도 할 수 없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다. 슬프게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의 단점들을 열거하고 이를 앞으로 나올 한국 SF 영화들을 위한 경고판으로 삼는 것뿐이다.
과학과 괴물의 머나먼 거리
모든 SF 영화가 엄격하게 과학 법칙을 준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과학적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면 거기에 피상적인 관심은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영화를 지탱하는 유일한 아이디어는 영화 속 괴물이 심해의 화학합성 생태계에서 올라온 생명체라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 낯선 세계에서 올라온 전혀 다른 생명 구조를 가진 생명체는 분명 괴물이 될 자격이 있다.
하지만 모든 과학적 아이디어는 여기서 끝나버린다. 이 영화에서 차예련이 연기한 생태연구원 현정의 행동은 화학합성 생태계에 대한 이 영화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한 번에 보여준다. 현정은 동그라미를 두 개 그린다. 그리고 위에 있는 게 광합성 생태계이고 밑에 있는 게 화학합성 생태계라고 말하고는 설명을 끊어버린다. 다시 말해 작가들에게 화학합성 생태계는 광합성 생태계 밑에 있는 동그라미다.
여러분은 물론 거창하게 화학합성 생태계를 끌어들였으니, 괴물도 그에 맞는 어떤 성격을 가졌으리라고 믿을 것이다. 하나 있다. 이른바 Q단계 상태에 있을 때 불을 붙이면 24시간이 넘도록 타더라. 그것도 살아 있는 상태에서. 1985년 처음 이 생명체를 발견한 사람들은 이를 연료로 쓸 생각을 한다. 당연하지. 이건 거의 연구기관의 발명과 맞먹는 황당한 발견이니까. 그런데 이 과학자라는 인간들은 그 생물체에서 어떤 화학물질이 나오는지는 생각도 안 하고 살아 있는 생명체에 불을 붙일 생각만 한다. 그리고 그건 ‘인간의 탐욕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된다. 이건 좀 심하지 않았나.
그래, Q단계를 거쳐 사람 죽이는 괴수가 된 H와 P단계부터는 어떤가. 그냥 다리로 걸어다니며 사람들을 죽이는 거대한 괴물이다. 심해의 화학합성 생태계에서 온 동물이 어쩌자고 그렇게 거대해지고 복잡해졌는지(도대체 그 밑에 있는 생태계는 얼마나 큰 건가?), 어떻게 공기로 숨을 쉬고 어떻게 지상의 중력에 적응하는지 따위는 나 몰라라다. 이 영화의 괴물은 오로지 게임 논리로만 존재한다. 게임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다음 레벨로 올라간다. 그뿐이다.
만약 캐릭터들이 제대로 잡혔다면 이런 단점들은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캐릭터와 묘사는 JK 필름이 제작한 영화의 최악만을 모아놓은 것 같다. 아니, 정정한다. 아마 최악은 도덕관념 제로인 사이코패스 폭주족을 영웅처럼 그리며 환호하는 에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클립스호의 환경은 만만치 않게 나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노골적인 스토커이며 잠재적인 성폭행범인 통신 담당관 장치순과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이다. 후배에게 원산폭격을 시켜대며 군대놀이하는 용접공 고종윤은 언급하는 것도 귀찮고. 왜, 한국 남자들은 원래 저런 무리들이니까 우리가 참고 인내해줘야 하나?
나머지 캐릭터들도 문제가 많은 건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단역이기 때문에 일단 코믹해야 하는 존재다(여기에 한국 영화, 특히 JK 필름이 제작한 영화의 계급 차별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 계획도 의미도 없이 엉터리 농담을 사방에 던지면서 혼자 낄낄거리며 웃는 걸 보면 저게 과연 사람인지, 아니면 이들 모두가 Q단계 괴물에게 뇌를 먹혔는지 의심하게 된다.
어차피 이들은 먼저 잡아먹힐 소모품이니 그렇다고 쳐도, 주인공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특히 하지원이 연기하는 해준은 우리가 몰입하고 경탄해야 할 인물이 아니던가? 해준이 가지고 있는 건 도대체 뭔가? 터프한 한국 남자 흉내내기가 거의 전부이다. (아, 중간에 비키니 입고 청량음료 광고하는 장면이 하나 있었군. 그 장면은 팬서비스인가?) 전문가의 자존심, 능력, 호기심 따위는 처음부터 제로다. 오토바이 몰고 총질하면 앤절리나 졸리가 되나? 게다가 그 눈빛 연기는 뭐냔 말이다. 만약 배우가 스크린 위에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이 뭔가 심하게 잘못돼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이건 위험한 상황이다.
진심 잃은 팝콘 영화의 미래는?
남은 지면이 없으니 딱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를 만든 사람들은 자신이 팝콘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걸 지나칠 정도로 의식하고 거기에 자기를 맞춘다. 그러다 보니 프로페셔널한 작업이어야 할 것이 몽땅 광대놀이가 되어버린다. 아마 그들은 이것을 ‘한국화’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런 것들에 ‘한국화’라는 이름을 달았다고 우리가 그걸 고수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나.
듀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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