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단편 네 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영화다. . KT&G 상상마당이 주최한 ‘제4회 대단한 단편영화제’ 출품작 중 엄선작이다. 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들도 대단하다. 이들은 ‘촌철살인’이란 제목 그대로, ‘촌’(寸) 짧고, ‘철’(鐵) 단단하고, ‘살인’(殺人) 죽이게 멋지다.
주제도 형식도 제각각, 공통점은 ‘완성도 높음’
(박형익·윤홍란 감독)은 유일한 애니메이션이다. 도입부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부분에 그림이 그려진 과정, 일종의 ‘메이킹 다큐’가 보여진다. 주차장 앞의 하얀 벽에 그림을 그린다. 늘어뜨린 끈은 글을 쓰는 한 남자와 텔레비전을 보는 여자가 사는 방의 경계가 된다. 검정 페인트로 그림을 그렸다가 하얀 페인트로 지우고 다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아는 것이 특별한 감상법을 만들어낸다. 벽에 드는 빛에 따라 그림자가 지기도 하고, 흰 페인트에 지워지지 않은 이전 검정 선들의 궤적이 보인다.
흰색 페인트를 거듭 칠한 그 벽 참 두껍겠다. (이용승 감독)는 얼굴에 ‘철판’ 깐 남자의 이야기다. 세무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동석은 세무사 사무실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다. 할 일이 ‘서류 정리’라고 듣고 양복을 입고 왔는데, 땡볕의 옥상에서 박스에 있는 서류들을 다시 분류하고 정리하는 ‘막노동’이다. 먼저 와 있는 태인은 ‘LBS’를 나온 유학파다. ‘LBS’는 ‘런던비즈니스스쿨’(London Business School)의 약자다. 그는 ‘리차드’라고 불린다. 친구들과의 저녁 술자리를 파하고 들어오는 길, 동석은 ‘런던유학생 리차드’를 다시 만나게 된다. 리차드가 정말 LBS 출신인지는 모른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학벌만으로 완성되는 ‘신뢰’라는 불명확한 개념이다.
(강진아 감독)은 독특하게 현실을 구성한다. 젊은 아내는 배고프다는 남편의 성화에 급히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가다가 사고를 당한다. 아내는 사후세계로 갔는데 그곳은 빛으로 가득해 있다. 죽은 여자는 카메라를 향해 인터뷰를 하며 밝게 웃는다. 남자가 한꺼번에 나타나 여러 감정을 보여주는 장면, 사고 현장에 그려진 흰 선 위로 죽을 때 모습 그대로의 여자가 나타나는 장면 등을 표현한 ‘특수효과’는 수준급이다. 슬픔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산 자를 죽은 자는 살아 있는 사람처럼 위로한다.
(엄태화 감독)는 ‘발견’이다. 아이디어, 이야기 전개, 연기, 촬영, 세트 등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미끈하다. 한 남자가 바퀴벌레가 나오는 집에 산다. 범상치는 않다. 창문가의 화분에 물을 주고, 남은 스프레이 물통의 물을 원샷으로 마신다. 자장면 그릇에 짬뽕의 면을 꼼꼼하게 옮긴다. 맛있게 먹는다. 지켜보는 강아지가 침을 꼴딱 삼킨다. 강아지에게 남은 것을 양보하고 유유자적 걸어나간다.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샤워를 하고,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머리를 깎는다.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있자 앉아서 음모를 깎는다. 그가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집에는 또 다른 ‘동거인’이 있기 때문이다. 장면마다 의미 없는 장면이 없다. 새로운 카메라 앵글이 많이 보이는데 유려하다. 연기도 수준급이다. ‘동거인’의 애써 숨기려는 경상도 사투리와 허세는 슬그머니 웃음짓게 하고, 남자의 비쩍 마른 몸피와 흐느적거리는 연기는 관찰력 좋은 배우라는 것을 알려준다(2월24일 개봉, KT&G 상상마당).
13년간 기록한 평양의 조카(2006년 개봉)의 양영희 감독은 을 들고 돌아왔다. 은 총련 간부 아버지와 자유주의자 감독의 충돌과 화해를 그린 영화다.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온 아버지는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을 한다. 세 명의 아들을 두고 막내딸 양영희 감독을 낳는다. 남한 출신의 아버지는 북한 사회주의에 매료되고, 모범을 보이고자 아들 셋을 만경봉호에 실어 평양으로 보낸다. 한편으로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머니를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정파다. 그 아버지에 대한 소식이 에 담겼다. 아버지는 2004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몸을 제대로 못 쓰다가 2009년 돌아가셨다.
은 둘째오빠의 딸 선화가 주인공이다. 선화는 첫 여자 조카였다. 선화 덕분에 감독은 1995년 비디오카메라를 들었고, 평양에 갈 때마다 그를 찍었다. 13년간이다. 어린 선화는 새로 맞은 어머니 무릎에 먼저 다가가는 아이였다. 아버지의 결혼식장에서 깔깔거린다. ‘수령님’의 은혜를 선전단의 톤 높은 목소리로 곱게 읊었다. 일본에서 공수된 일제 미키마우스 스타킹을 신고 처음 등교할 때 선화는 “학교 가는 게 즐겁습니다”라고 크게 말했다.
편찮은 아버지와 돌보는 어머니를 두고 방문한 평양에서 선화는 많이 컸다. 할머니가 오면 뽀뽀를 해주고 안마를 해주겠다고 한다. 카메라를 들고 고모처럼 고모에게 질문했다. 고모와 헤어질 때 몇 번씩 돌아보며 손을 흔든 게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이후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불거져 북한과 일본의 왕래는 순조롭지 못하게 되었다. 조카 선화는 평양에 살고 있다. 시종일관 즐거운 영화인데 북받치듯 슬픔이 컥컥거린다.
감독은 “북한 이야기라기보다 도쿄와 평양에 떨어져 산 가족 이야기로 봐달라. 못하는 말이 많은 가운데 만들어졌다. 행간을 읽어달라. 많은 사람들이 이 다큐멘터리가 개봉하면 평양의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 않겠느냐고 걱정한다. 매일 걱정이다. 하지만 가족을 지키는 길이, 가족을 유명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널리 알려달라”고 말했다(3월3일 개봉).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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