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라덴 선생님 전상서.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알카에다 짱이라 부르기도 뭣하고, 테러리스트 킹카라고 하기도 그렇고, 위대한 수령 동지라 부르기도 거시기하고…. 날씨도 추운데 어떻게 얼어죽지는 않으셨나요?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 보일까봐 꼭꼭 숨어 계신 곳의 날씨가 어떤지 모르겠네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어딘가에 계신다는 소문이 많던데. 어째 동영상으로 몇 마디 말씀해주시는 것도 뜸해진 것 같습니다. 어디 아파서 드러누우셨나요?
기운 내세요. 설문조사에서 ‘21세기 첫 10년의 가장 중요한 사건’에 9·11 테러가 1위로 뽑혔단 말입니다. 선생님이 9·11 테러를 ‘배후 조종’하신 것 맞지요? 다들 그러던데, 그래서 도망다니시는 것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한 번도 “내가 비행기 납치해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뭐 이렇게 딱 부러지게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처음엔 아니라고 하다가 2004·2006년에 공개된 동영상에서 알쏭달쏭 몇 마디 하신 뒤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만.
암튼 선생님께서 리모컨 조종하셨다면 참 대단하십니다요. 미국 자본주의 심장부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패권의 상징 펜타곤을 공포의 수렁으로 몰아넣으셨잖아요. 그 뒤로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요. 비행기 안 타신 지 오래돼서 모르시죠? 해외 나가려고 비행기 한번 타보세요. 진짜 장난 아닙니다. 허리띠 풀고 신발 벗고 지문 찍는 정도는 불평거리도 아닙니다. 아시잖아요? 요새는 홀딱 팬티 안까지 꿰뚫어보는 뭐냐, ‘전신투시기’라는 것까지 공항에 설치됐잖아요. 뭐라더라, ‘테러와의 전쟁의 일상화’라고 하던가. 매일매일 두려움에 벌벌 떤다, 불안과 공포를 밥 먹듯 느낀다 이거죠. 2004년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역에서, 2005년에는 영국 지하철에서 테러가 펑펑 터지고, 얼마 전에는 살기 좋다는 스웨덴에서까지…. 아이고 무서워~.
사실, 선생님 때문에 ‘세계경찰’이니 ‘팍스아메리카나’니 하며 폼 잡던 초강대국 미국은 얼마나 망가졌습니까? 열받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 ‘테러와의 전쟁’을 내걸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잇따라 침공하면서 제멋대로 날뛰더니, ‘양키 물러나라’는 반미감정은 더 커졌죠. 아프가니스탄 전쟁 보세요. 미군만 1천 명 넘게 죽고, 미국 최장의 전쟁이 됐잖아요. 숨진 민간인이야 정확한 통계조차 없죠. 뭐냐, 미국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에 선생님이 확 불을 질러버렸다 이 말씀이죠. 미국도 그때부터 완전히 꼬여버리고. 어째, 이놈의 ‘테러와의 전쟁’은 하면 할수록 세상이 더 불안하다니까요.
9·11 테러, 이거 세계경제도 따라갔잖습니까? 이번 조사에서도 9·11 테러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꼽혔거든요. 미국으로 대표되던 금융자본주의, 이게 쇠락했다, 잘나가던 엉클샘이 주저앉았다 이거죠. 전세계가 미국발 유탄을 맞아 덜덜 떤 것도 9·11 테러와 똑같죠. ‘경제적 9·11 테러’라고나 할까요? 미국이 요새는 중국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잖아요. 중국은 ‘G2’로 완전히 떴고요. 지난 10년을 요약하면서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가 그러던데요. “미국의 시대(미국적 가치)가 9·11 테러와 세계 경제위기를 전환점으로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음”이라고요. 홍정욱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9·11 테러, 경제위기 등으로 흔들리는 패권과 세계질서를 중국이 재편”했다고 하더라고요. 부시가 이끌던 공화당 대신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것도 선생님 덕분 아닙니까? 미국 대선 킹메이커셨죠. 이라크·아프간 전쟁과 경제계의 9·11 테러인 금융위기에 미국인들이 완전히 질려버렸잖아요.
9·11 테러의 위력이 이 정도다 보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6·15 남북 정상회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한반도의 쟁쟁한 사건들이 지난 10년간 가장 중요한 사건 3~5위로 밀렸어요. 어떠세요? 어깨에 힘 좀 들어가십니까? 이런 평가는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 아니면 빌 게이츠 수준? 암튼 선생님은 역사책 한 페이지를 빵빵하게 채우셨습니다. 제가 아는 게 없어 어려운 말들을 갖다붙이지 못했지만, 21세기 들어 9·11 테러만큼 세상을 바꾼 사건도 없으니 배후 세력이라는 선생님도 그 반열이십니다. 이제 히틀러랑 친구 먹으세요.
빈라덴 선생님, 날이 찹니다. 눈도 내리고. 비싼 오리털 파카도 없으실 텐데…. 자, 이제 그만 하산하시죠. 다리 좀 쭉 뻗고 자게요. 하산하실 때는 저한테만 살짝 알려주시고 몰래 살금살금 내려오세요. 9·11 테러 이후 ‘이슬람포비아’(이슬람 공포·혐오증)가 장난 아니거든요. 선생님의 모자와 기다란 수염, 그리고 두루마기처럼 생긴 무슬림 전통의상, 그렇게 차려입은 분들은 언제 어디서 테러리스트로 몰려 붙잡혀갈지 모르거든요. 히잡도 부르카도 금지되고, 무슬림이라면 다들 벌벌 떨면서 ‘니네 고향으로 돌아가라’ 난리 치거든요. 사실 제가 여쭤볼 것도 많아요. “진짜 배후 조종하셨어요?” “미국은 못 잡았나요, 안 잡았나요?” “희생자 가족에게 용서를 빌 생각은 없나요?” 등등. 무엇보다, 이슬람의 이름으로 테러를 자행했는지 몰라도 사실 이슬람 세계에 가장 큰 재앙을 내린 장본인이 선생님이란 거,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제 휴대전화 번호는 018-315-7×××입니다. 그 잘난 얼굴도 한 번 찍게, 좋아하시는 동영상팀도 같이 갈게요.
모처럼의 편지니, 끝 인사는 멋지게 드리겠습니다.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이 수나라 총사령관 우중문에게 보낸 편지 모르시죠?
신비로운 계책은 하늘의 흐름을 알아서 하고(神策究天文)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다 알아서 하는 게지(妙算窮地理)
싸움에서 이긴 공 높을 수밖에 없겠네(戰勝功旣高)
그만하면 족하니 이제 그치는 게 어떠한지(知足願云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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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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