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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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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음악 소풍, 발랄·상큼·달달한 걸

모던록과 어쿠스틱 뮤직의 향연으로 여성 관객 몰이에 성공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가다
등록 2010-11-03 17:48 수정 2020-05-03 04:26
GMF를 찾은 관객은 ‘도심 속 피크닉’을 온 것처럼 편하게 공연을 즐긴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제공

GMF를 찾은 관객은 ‘도심 속 피크닉’을 온 것처럼 편하게 공연을 즐긴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제공

관건은 ‘여심’ 잡기다. 음악뿐 아니라 영화, 스포츠 시장 모두 마찬가지다. 프로야구가 최근 다시 흥하게 된 데는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여성 팬이 대거 유입된 이유가 컸다. 경기는 안 보고 선수 얼굴만 보고 좋아한다는 이유로 ‘얼빠’니 뭐니 하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얼빠들이 프로야구 중흥에 큰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여성은 대부분 어딜 가든 혼자 가지 않는다. 연인이나 친구 혹은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고 공연장을 찾는다(화장실도 함께 가는 마당에). 그렇게 두 배, 세 배 관중 수를 늘릴 수 있는 게 여성 팬들이다. 술을 마시거나 당구를 칠 때를 제외하곤 함께 다니지 않는 남성과 비교해 시장성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래비 선’ 관객의 80%가 여성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하 GMF)은 일찌감치 그런 여성 팬들의 마음을 겨냥해온 음악축제다. ‘도심 속의 피크닉’을 표방하고, 아기자기한 수변무대를 꾸미고, 여성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을 만들며 전체 관객의 80%를 여성으로 채웠다. 축제무대에 오르는 출연진 또한 여성 팬의 취향에 맞춰 상큼하고 발랄하고 달달한 모던록과 어쿠스틱 중심의 음악인들로 맞춰왔다. 이런 공략 덕분에 지난해부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하니 주최 쪽의 전략과 콘셉트는 확실히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일요일 오후, 제공행사장이 있는 서울 지하철 올림픽공원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간식 꾸러미와 돗자리를 손에 든 여성 팬들의 행진을 목격할 수 있었다. 행사장에 도착해서도 남녀 짝부터 여여, 여여여, 최대 여여여여여 조합까지 쉽게 눈에 띄었지만, 남남 혹은 남남남 같은 조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내가 어느 조합에 속해 있었는지는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슬퍼지려 하기 전에.

행사장에서 맨 처음 맞닥뜨린 건 체조경기장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정말 긴 줄이었다. (어머니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나래비를 서 있’었다. 다름 아닌 ‘언니네 이발관’ 공연을 보기 위한 행렬. 언니네 이발관이 인기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 수준을 뛰어넘는 긴 줄이었다. 결국 언니네 이발관의 공연을 포기하고 옆에서 벌어지는 버스킹(거리공연) 무대로 향했다. 버스킹 듀오로 이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일단은 준석이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GMF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홍익대 주변을 비롯한 거리 곳곳에서 벌어지는 버스킹 문화를 GMF는 축제의 한 축으로 포함시켰다. ‘일단은 준석이들’은 쉽고 익숙한 노래들과 유머로 무대를 이끌었고, 내년에는 메인 무대에 서겠다는 바람과 다짐을 내비쳤다. 또 다른 버스킹 밴드인 ‘좋아서 하는 밴드’가 같은 날 수변무대에 섰으니 ‘일단은 준석이들’의 바람도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가수 이소라는 일요일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에 올랐다.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제공

가수 이소라는 일요일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에 올랐다.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제공

이어서 토마스 쿡과 이승열의 공연을 차례로 봤다. 둘의 공연은 지극히 대비됐다. 토마스 쿡의 공연이 각종 만담을 곁들인 어쿠스틱 공연이었다면, 이승열의 공연은 멘트를 최대한 자제한 채 진행된 연주 위주의 공연이었다. 둘 가운데 어떤 형식의 공연이 더 낫다는 얘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이승열의 공연이 이날 공연들 가운데 가장 좋았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이승열은 이제 대중성은 아예 포기한 것처럼 보였는데, ‘모던록’이라는 딱지를 붙이기가 미안할 정도로 클래식 록과 사이키델릭의 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연주를 들려줬다. 연주자와 청중 모두 함께 몰입한 시간이었고, 이승열은 마지막 곡이라는 멘트마저 잊어버린 채 연주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어진 ‘틴에이지 팬클럽’의 무대. 처음 타임 테이블이 공개되고, 이 스코틀랜드 기타 팝의 영웅들이 헤드라이너가 되지 못한 사실에 잠시 분개했지만 냉정하게 이들은 이제 잊혀져가는 이름이었다. 이들이 뒤에 자리한 ‘김윤아’와 ‘이소라’라는 이름보다 더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결국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이들이 무대에서 들려준 정겨운 음악들이 꿈같기도 하면서 서글픔도 함께 들었다. 한 시대가 이렇게 저물어간다는 생각. ‘돈트 룩 백’(Don’t Look Back)의 달콤한 멜로디와 함께 1990년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야외무대이자 메인무대이기도 한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Mint Breeze Stage)에서 연이어 열린 심성락과 이소라의 공연은 GMF 공연이 왜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지를 보여주었다. 넉넉한 가을밤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듣는 심성락의 아코디언 연주와 이소라의 (프러포즈를 연상시키는) 뮤직토크쇼(?)는 듣는 이의 마음을 낭만으로 감싸며 한없이 충만하게 했다. 밤하늘의 달과 75살의 노객이 들려주는 아코디언 소리는 더없이 잘 어울렸고, 계속 하늘의 별을 찾던 이소라의 예민한 노래는 다소 쌀쌀한 가을바람에 실려 귓가로 흘러들었다.

김윤아와 이승환 사이 송창식을!

올해뿐 아니라 당분간 ‘성공’과 ‘매진’만이 눈앞에 펼쳐질 GMF를 보면서 들었던 아쉬운 점 한 가지는 비슷비슷한 출연진들의 이름에서 전해지는 피로감이었다. 반복해서 출연하는 음악인들에게 ‘4년 연속’이니 하는 꾸밈말을 붙이기도 했지만, 이는 국내 음악 신의 얕은 층을 보여주는 아픈 부분이기도 하다. GMF처럼 ‘모던’이란 말로 통용되는 콘셉트를 갖고 축제를 여는 처지에서는 더욱 고민이 될 부분이다. GMF가 열린 같은 날 홍익대 주변 클럽에서는 GMF의 콘셉트를 다소 비튼 ‘위 아 낫 모던’(We Are Not Modern)이라는 공연이 열리기도 했지만, 이런 이유로 GMF가 비난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너무 청중의 기호에만 맞추지 말고 가끔씩은 주최 쪽에서 흐름을 주도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제언 정도는 하고 싶다. GMF를 보러 가는 동안 지하철 안에서 들은 송창식의 음악. 사실 송창식만큼 ‘모던’과 ‘전통’의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허물면서 일가를 이룬 음악인이 또 어디 있는가. 꼭 송창식이 아니어도 좋다. 과거 모던한 음악을 했던 명인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김윤아와 언니네 이발관과 이승환이라는 이름 사이로 옛 거장들의 음악이 젊은 친구들에게 다시 들릴 때, 한국의 음악 신은 물론 GMF 역시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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