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2008년도에 호주에서 만들어져, 2009년 더번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였고, 우리나라에는 2009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던 작품이다. 호주의 유명 재즈드러머 사이먼 바커는 2001년도에 한국인 제자가 건넨 ‘무형문화재 82호’ 김석출의 연주CD를 듣고 낯선 충격에 휩싸인다. 그 후 수년간 한국을 십여차례 방문하여 이미 80세에 가까운 김석출을 뵙고자 탐문하지만, 한국에는 그를 아는 이는 커녕 변변한 자료조차 없다. 96년부터 사이먼과 함께 공연을 했던 재즈가수 엠마 프란츠는 2005년 사이먼의 사연을 듣고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은 열망에, 감독이자 프로듀서이자 카메라 감독으로 사이먼의 한국방문에 동행한다. 마침내 사이먼은 김석출을 알고 있다는 국악인 김동원의 안내로 84세의 김석출을 알현하게 된다. 영화는 2005년 사이먼이 김동원과 함께 김석출을 만나기 전 다른 한국의 명인들을 순례하며 음악적 대화를 나누는 여정과, 마지막으로 집안 굿판에서 장구를 잡은 김석출을 뵙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담는다. 김석출은 그의 방문을 받은 뒤 불과 3일 후 별세하였다. 마치 운명처럼 영화는 만들어졌고, 이제 하나의 ‘사건’으로 우리 앞에 남았다.
그의 방문을 받은 3일 뒤 별세재즈뮤지션이 국악의 리듬에 이끌리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84년도에 미국에서 ‘김덕수 사물놀이’ 첫 앨범이 나온 뒤, 외국 뮤지션들의 관심이 있었다. 89년도에 나온 두 번째 앨범은 독일의 재즈그룹 ‘레드선’과의 협연을 담고 있다. 재즈와 국악은 즉흥성이라는 뚜렷한 공통점을 지닌다. 사실 즉흥성은 클래식 음악에서만 백안시되었지, 어떤 민속음악에서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음악의 본원적인 정수이다. 김석출은 국악 중에서도 무속 음악인으로, 동해안 어촌마을의 풍어와 안전을 비는 별신굿에서 무녀의 춤사위에 강약과 장단을 부여하는 반주를 맡았다. 전통적인 세습무가의 자손으로 8살에 박수가 된 그는 장구, 꽹과리 등에 모두 능통하였고, 특히 격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태평소 시나위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김석출만이 갖고 있는 혼의 울부짖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희에 이르러서도 며칠을 쉬지 않고 각종 무속가락을 연주해냈으며, 그의 음반은 거의 70대에 녹음된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샤마니즘은 ‘상징’의 도움으로 ‘알 수 없는’ 타자의 세계에 ‘이름’과 ‘체계’를 부여하는 특수한 상징조작기술이다. 샤만은 그 상징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믿음에 의해, 주술적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한국 전통무속에서 세습무는 이러한 상징적 의례를 정교하게 익힌 자들로, 강신무들과 달리 접신을 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2003)에도 나오듯이 세습무들은 강신무들이 제멋대로 굿을 한다고 천시한다. 샤만의 주술적 효력이 발휘되는 것은 샤만의 상징을 믿는 공동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 무속공동체가 사라진 오늘날, 세습무는 믿음 없는 의례를 상연하는 예술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반면 강신무는 상징이라는 매개물을 통하지 않고, 직접 실재에 도달하고 싶어 하는 현대적 열망에 부합하여 성장추세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속담처럼 굿은 엔터테인먼트의 속성을 강하게 지니며, 공동체의 믿음을 결집시키는 작업이다. 여기서 무속음악의 역할이 중요한데, 즉흥성과 기교를 바탕으로 무당의 춤사위를 조율하고 굿판의 흥을 쥐락펴락하여, 무당을 무아지경에 도달하게 하는 것은 물론, 참여자들의 집단무의식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는 그 자체로 신비한 작업은 아니다. 일반인들도 클럽에서 비트가 강하고 단순 반복적인 리듬의 테크노 음악에 맞추어 헤드뱅잉을 하다보면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 ‘트랜스’ 상태를 경험하게 되며, 이러한 현상을 염두에 둔 테크노-하우스 장르로 ‘트랜스 뮤직’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타악을 위주로 한 강하고 빠른 비트에 즉흥성을 최대로 살린 원초적 리듬의 무속음악은 음악이 본래 지니는 인간의 무의식에 직접 작용하는 속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겸손한 순례자 사이먼과 함께 길을 나서는 김동원은 ‘김덕수패 사물놀이’의 후신인 ‘사물놀이 한울림’의 임원이자, 요요마가 이끄는 ‘실크로드 앙상블’의 일원으로, 사이먼과 국악인들과 관객을 잇는 가교역할을 한다. 이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폭포 옆에서 7년간 득음수련을 한 배일동 명창과, 8살에 내림굿을 받은 강신무 정순덕(824호, 참조)과, 진도 씻김굿의 장구명인 박병천과, 오고무의 명인 진유림 이다. 사이먼은 이들과 음악을 주고받으며 기(氣), 음양, 호흡, 장단, 졸박미, 이완된 힘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영화는 결코 추상적인 개념을 남발하거나 인물들의 행위를 밋밋하게 이어붙이거나 신비주의적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외국감독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핸드핼드 기법의 다이나믹한 화면과 약동하는 멜로디, 그리고 점차 상승하는 편집의 힘은 관객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 마침내 누이의 씻김굿에서 장구채를 잡은 김석출과 4대 세습무가가 펼치는 구성진 굿판은 울컥한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먼 길을 돌아 고향에 이른 뭉클함이랄까. 깊은 곳에서부터 나를 받치고 있던 굳건한 인연의 끈을 맞닥뜨린 느낌이랄까. 영화가 만들어진 후 2006년부터 사이먼과 배일동, 김동원 등이 주축이 된 한국-호주 크로스오버 프로젝트 그룹 ‘다오름’이 결성되어 수차례 공연을 갖고 있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흔히들 퓨전과 크로스오버를 말하지만, 타자에게 겸허히 배움을 청하고, 그런 타자를 두 팔 벌려 환대하는 태도가 없다면 모두 헛일이다. 국악과 무속에 ‘무형문화재’의 이름을 붙여 ‘전통문화’로 박제화한 채, 현재화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은 우리안의 오리엔탈리즘이다. 벽안의 뮤지션과 감독으로부터 귀중한 배움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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