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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사르코지를 닮지 마세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4월호, 국제금융관세연대 초대 의장 카상 인터뷰
등록 2010-04-15 18:47 수정 2020-05-03 04:26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4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4월호

한국판 4월호는 프랑스 파리 13구 스테팽 피숑가 1번지에서 시작된다. 성일권 발행인과 안영춘 편집장이 본사 건물을 방문해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투기적 자본의 국제거래에 관세를 매기자는 운동) 초대 의장으로 유명한 베르나르 카상을 만났다. 한평생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항거한 카상은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 사르코지 정권과 한국 이명박 정권에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정부+은행 ‘금융 빅브러더’ 탄생

카상은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집권 우파가 완패한 이유에 대해 “사르코지 정권에 현혹된 프랑스 유권자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고 분석했다. 집권을 위해서라면 극우 정책이든 인종차별 정책이든 간에 몰가치적 정책을 마구 추진한 사르코지 때문에 국민의 삶이 피폐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카상은 후보 시절부터 종종 사르코지 대통령과 ‘닮은꼴’이라고 주장해온 이명박 대통령에 의구심을 표한다. “한국의 대통령이 뭘 닮아보겠다고 그러는지 의아하다.” 선진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한국의 국격을 높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카상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G20이 선진 8개국(G8)보다는 대표성 측면에서 낫다고 볼 수 있으나 개발도상국의 참여가 없다는 점에서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정상회의 개최 반대 시위와 폭력 진압이 벌어지면 국가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결과만 초래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질 파바렐가리그 등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원들은 ‘금융 빅브러더’의 출현이라는 흥미로운 현상을 설명한다. 1989년 선진 7개국(G7) 회담에서 정상들은 검은돈의 흐름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다. 이때까지 감시 대상은 마약거래와 관련된 돈에 한정돼 있었으나 1990년대에는 범죄단체, 9·11 테러 이후에는 테러단체까지 확대됐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는 탈세도 포함된다. 공권력과 은행 등 금융기관 사이에 전례 없는 협력관계가 구축돼왔다. 이런 활동이 불법 자금의 흐름을 차단했는가. 필자들은 그 효과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상한 결과를 낳았다고 말한다. 은행이 금융거래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맡으면서 고객의 개인정보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은행은 ‘경제 보안’ 관련 부서를 확장하며 전직 경찰관 등을 고용했는데, 이들은 경찰복을 벗은 뒤에도 정부에 계속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찰과 은행 간의 공조관계가 단단해졌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갖춘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면서 은행들의 고객 블랙리스트 관리가 쉬워졌다. 블랙리스트에는 ‘정치적으로 노출된 인물’이라는 모호한 범주 아래 정치인, 국영기업 대표 등 다양한 인물이 들어가 있다. 이 인물들이 금융거래를 하면 곧바로 은행의 감시 대상이 된다. 프랑스와 유럽에 나타난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해 별다른 우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필자들에게는 더 우려스럽다.

철학자 다니 로베르 뒤푸르는 ‘현대예술의 스노비즘’이라는 기고를 통해 급진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예술을 비판한다. 뒤푸르는 현대미술이 ‘당신은 반동주의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비평을 거부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미술은 온갖 금기를 초월한 도발을 감행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만들지 못하는 반복일 뿐이다. 그것은 상품화를 위한 이노베이션에 지나지 않는다.

전지구적으로 진행되는 도시 재개발

세계의 거대도시화를 다룬 기획도 흥미롭다. 사회학자 장피에르 가르니에는 런던·뉴욕·파리를 거쳐 베이징까지 도시 재개발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도시 공간을 장악하기 위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투쟁은 매우 오래된 역사지만, 그는 특히 서비스산업이 발달한 지금의 도시 재개발에 주목한다. 지금은 도시공간 내부에 재정적·사법적·문화적 기능이 집중돼 있고 지적 노동력이 증가했으며 전통적 산업조직과 노동운동이 붕괴하고 있다. 따라서 ‘거대도시화’는 불도저식 재개발 시대처럼 과거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쇄신’ ‘재활성화’ ‘재생’의 이름으로 진행된다. 반대투쟁을 하던 사회운동가들도 이 주술에 넘어가버렸다. 현재의 도시화는 대립이나 충돌을 거치지 않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분리하고 있다(정기구독 02-710-0501~2, www.ilemonde.com).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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