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영화의 뉴웨이브는 1990년대 대만에서 시작해 한국을 거쳐서 필리핀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아시아 영화의 물결은 말레이시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아미르 무하마드 감독(사진)은 말레이시아에서 2000년 최초로 디지털 장편영화 (Lips To Lips)를 만들었고, 2006년 논쟁적 다큐멘터리 (The Last Communist)로 최초의 상영 금지를 당했다. 그의 영화 이후로 제임스 리 같은 감독들이 디지털 독립영화를 만들면서 말레이시아 뉴웨이브가 시작됐다. 이렇게 말레이시아 뉴웨이브의 기수인 무하마드의 영화가 지난 11월21~22일 서울 홍익대 앞 KT&G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열린 ‘아시아 다문화주의: 비서구 소수성의 정치와 연대를 위하여’에서 상영됐다.
말레이시아 뉴웨이브 영화의 기수무하마드의 는 말레이시아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큐다. 말레이시아 공산당이 근대 독립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투쟁한 역사를 다루는 다큐지만, 주인공은 말레이시아계가 아니라 중국계다. 다큐는 말레이시아 공산당을 주도했던 첸핑(Chen Ping)이 태어난 말레이시아 마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와 인접한 타이에서 끝난다. 이렇게 카메라는 첸핑의 일생을 좇지만 사라진 과거의 흔적을 찾기보다 오늘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은 그냥 자신의 가족이나 사업에 대한 얘기를 하거나 때로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큐는 첸핑이나 공산당과 관련 없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쌓일수록 이들이 말하는 현실과 역사가 전혀 관련이 없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소수민족·동성애 등 ‘가려진 소수자’에 천착다큐엔 또 사람들 얘기 사이에 뮤지컬 형식의 노래가 삽입된다. 직업 가수가 아닌 평범한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때로 공산주의 역사를 비튼 가사를 담기도 하고, 말레이시아에 만연한 풍토병 말라야에 대한 풍자를 담기도 한다. 이렇게 다큐에 나오는 언어만 6개. 는 첸핑의 소재를 빌리지만 말레이시아의 복잡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영화다. 다큐와 증언이 교차되는 영화는 유쾌하지만 서글픈 잔상을 남긴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독립투쟁의 가려진 역사인 이들의 투쟁을 통해 과연 말레이시아 역사는 누구의 역사인가, 질문을 던진다.
11월21일 영화가 상영된 다음에 무하마드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말레이시아 영화의 현실을 전했다. 가 말레이시아에서 상영 금지를 당한 이유에 대해 그는 “공산주의자가 영화에 나오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내 다큐가 말레시이시아에서 73년 만에 상영 금지된 첫 작품”이라며 “그동안 말레이시아 영화가 얼마나 자기검열을 해왔는지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세상에 발언하는 활동가(Activist)지만, 그렇다고 특정한 이념을 지향하진 않는다. 그는 동성애 혐의로 마하티르 정부에서 축출된 정치인 안와르 이브라힘을 지지하는 거리시위를 다룬 다큐를 만들었다. 이 다큐는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인도 남부지방 언어인 타밀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증언만 담았다. 무하마드는 “그들의 언어가 말레이시아에서 비주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가려진 소수자의 이야기가 그의 주된 관심사다.
그는 감독이자 작가이자 출판가다. 10대 시절부터 각종 매체에 칼럼 등을 기고해왔고, 2007년엔 마타하리북스 출판사를 설립해 같은 논픽션 서적을 출간해오고 있다. 그의 출판사에서 발간한 (Body To Body)는 말레이시아 최초의 성소수자 앤솔러지다. 그의 방한에 맞춰 2009년 7월 세상을 떠난 말레이시아의 전설적 여성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담은 (Yasmin Ahmad’s Films>가 번역돼 출간됐다. 거기엔 우리가 몰랐던 진정한 아시아, 말레이시아가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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