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마다 찾아오는 공포물, 올해는 뭐가 다를까? 한국형 호러물에 대한 불신은 사라졌을까?
지난해 개봉한 한국공포영화는 까지 모두 세 편뿐이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공포물의 성적이 지지부진하면서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결과였다. 그나마 외에는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 정교한 설정 없이 기존의 공포물을 답습하면서, 공포물 장르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마저 나왔다.
그러나 다행히 올해는 다양한 공포물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6월에 개봉한 를 시작으로 등이 개봉했거나 개봉 준비 중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공간이 뿜어내는 오싹함을 제각각 풀어낸 영화들이다. 살점이 뜯기고 붉은 피가 낭자한 하드고어적인 공포 대신 인간의 탐욕을 소재로 한 심리호러극이 주류를 이룬다. 2009년 한국 공포영화는 다시 도약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 공포물 과 심리호러인 은 소녀와 종교를 내세운 닮은꼴 영화다. 아파트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가장 가까운 내 가족과 이웃을 공포의 대상으로 그린 점도 비슷하다.
은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영화 제목과는 반대로, 맹신해서 지옥에 빠진 인물들이 주는 공포를 매개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겹게 대학에 다니는 희진(남상미)은 엄마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는 동생 소진(심은경)이 사라졌다는 것. 지방의 낡은 아파트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던 동생의 실종 소식에 희진은 급히 집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엄마는 기도하면 소진이 돌아올 거라며 교회만 들락거리고, 실종신고로 사건을 맡은 담당 형사 태환(류승룡)은 단순가출이라며 형식적인 수사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정미(오지은)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소진아, 미안해”라고 쓴 정미의 유서가 발견되고, 소진이 신들린 아이라고 증언했던 아파트 이웃 주민이 연달아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소진의 행방은 점점 미궁에 빠지고 희진은 이상한 꿈과 함께 헛것을 보기 시작한다.
사람이 벽 뚫고 나오는 귀신보다 더 무섭다은 빠르게 움직이는 카메라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효과음으로 비명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정미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장면이나 무녀가 작두를 타고 접신하는 장면 등이 섬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용주 감독의 말대로 “이야기 속의 호러를 드러내기 위해 기존 영화처럼 비주얼에서 주는 공포가 아닌 낯선 공포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촘촘하게 짜인 이야기가 돋보이는 영화는 익숙한 일상에 숨겨진 은밀한 공포를 드러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엄마와 무속신앙으로 세상을 보는 무녀는 아파트라는 한 공간에서 만나 충돌한다. 하지만 둘 다 절대적인 존재를 향해 맹목적인 믿음을 보여주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삶의 태도는 동일하다. 보이지 않는 존재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을 공통으로 가진 이들은 스스로 지옥에 갇히고 공포의 대상이 된다.
8월20일 개봉하는 역시 맹목적인 신앙심이 가져온 비극을 그린다. 부모의 유산을 처분하고 서울의 한 아파트로 이사온 형국(임형국)과 영애(양은용)는 딸 미애(류현빈)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곧 태어날 둘째와 새로운 사업까지 모든 일이 순조롭기만 하다. 이웃집 장로 부부와 친해지면서 함께 교회를 다니게 된 부부는 장로의 노모가 유독 미애를 아끼는 모습이 왠지 불편하다. 어느 날 장로의 노모가 세상을 뜨고 미애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불길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더니 단란했던 가족의 일상에도 균열이 생긴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만들어진 은 인간의 죄의식을 파고드는 영화다. 형국은 자신의 죄를 구원받기 위해 종교에 매달리지만 불편한 진실은 기어코 고개를 내밀며 그를 괴롭힌다. 형국을 나무라기엔 그가 저지른 잘못에서 누군들 자유로울까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영화는 피가 낭자하는 잔인한 장면을 덜고, 불안에서 시작해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 공포의 강도를 높인다. 탐욕이 부른 화는 우리 마음속의 금기와 죄의식까지 건드리며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광기가 더해지면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다. 벽을 뚫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귀신보다 사이코패스류의 사람이 더 무섭다. 그렇게 과 은, 안식처라고 믿는 집에서 시작된 공포와 불안이 절대자를 향한 맹신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열적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여성에게 때로 공포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이다. 은 아름다움을 향한 끝없는 욕망과 집착에 빠진 여성들의 파국을 그린다. 홈쇼핑 쇼호스트인 효정(유진)은 젊고 매력적인 후배에게 밀려 자리를 뺏길 위기에 처한다. 자신감을 잃어가던 그 앞에 학창시절 멸시의 대상이었던 선화(이영진)가 완벽한 미녀가 되어 나타난다. 선화에게서 비밀스러운 심화 훈련을 하는 요가학원 이야기를 들은 효정은 홀린 듯 그곳을 찾아간다. 거기서 예전의 인기를 되찾고 싶어하는 아이돌 스타인 연주(박한별), 다이어트 요요 현상을 두려워하는 인순(조은지), 이혼과 성형 부작용에 괴로워하는 유경(김혜나), 완벽한 미모를 갖겠다는 열망을 선한 얼굴에 숨긴 보라(황승언)와 함께 일주일간 심화 훈련을 받는다. 전화를 쓸 수도 없고, 운동 뒤 한 시간 내에 샤워를 해서도 안 되는 등 5가지의 금기사항을 모두 지켜야 ‘쿤달리니’라는 몸 안의 에너지를 얻어 완전한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
아름다움을 향한 가차 없는 정진영화 속 요가학원을 찾은 여성들은 모두 각기 다른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다시 살이 찔까 두렵고, 나이들수록 젊고 매력적인 여자에게 밀려날까봐 쩔쩔 맨다.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가졌지만 이들은 영원한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영화는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예뻐지고 싶다는 비뚤어진 욕망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얄팍하게 그린 나머지 어느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뭘 욕망하는지도 모른 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좇다가 정작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여성의 비극을 보여주려 했다”는 윤재연 감독의 바람과 달리 그들이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게 이 영화의 비극이다. 여성의 몸을 소재로 무서운 척만 한 무섭지 않은 공포영화다. 8월20일에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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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물의 브랜드가 된 한국방송 은 올해 10편의 단막극을 준비했다. 전통적인 귀신의 복수극인 ‘씨받이’와 ‘구미호’ 외에도 미스터리 연쇄살인극인 ‘죽도의 한’, 뱀파이어물을 섞은 ‘혈귀’ 등에서 장르혼합을 시도한 점이 눈길을 끈다. 세월이 흐를수록 공포의 강도가 섬뜩해져서인지 소복 입은 귀신의 복수극은 더 대담해졌다.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면 △△리에서 전해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끝맺으며 ‘권선징악’이란 변함없는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점이다. 이는 이 지켜온 오랜 매력이다.
하지만 클래식은 종종 지루하다. 귀신의 등장이 무섭지 않고, 컴퓨터그래픽 장면이 어설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고전의 귀환’ 외에 어떤 가치를 찾아야 할지 모를 만큼 을 보고 자란 어른들에겐 만듦새가 매력적이지 못하다.
반면 문화방송에서 19년 만에 부활한 납량특집 드라마 은 여귀, 원한, 빙의, 범죄 프로파일링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섞어 현대적인 공포물을 만든다. 억울하게 죽은 혼이 빙의된 여고생의 힘을 이용해 절대악을 응징하던 범죄 프로파일러가 결국 스스로 악마가 되어가는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펼쳐진다. 혼령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복수극에 사이코패스라는 현대적인 범죄가 섞여들면서 무엇이 더 두려운 것인지도 묻는다.
쌍둥이인 하나(임주은)는 억울하게 죽은 동생 두나의 영혼이 빙의돼 복수를 펼친다. 하나를 돕는 범죄심리학자인 류(이서진)도 어릴 때 눈앞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은 상처를 갖고 있다. 그에겐 “정의는 법을 이길 수 없다”며 돈이 되는 사건이면 양심과 상관없이 뛰어드는 변호사 백도식(김갑수)이 넘을 수 없는 절대악이다. 류는 하나를 이용해 법이 처단하지 못하는 공공의 적에 맞선다. 감정을 이어가기 어려운 미니시리즈라는 한계 속에서도 복잡한 사회상을 은유하며 담아내는 공포가 보단 한 수 위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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