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는 괴물이 아니라 김씨가 산다. 63빌딩과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무인도, 형용모순의 밤섬에 김씨(정재영)가 갇힌다. 카드빚에 시달리던 김씨는 한강에 투신하려 했으나 죽는 것도 맘대로 되지 않아 밤섬에 조난당한다.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지나가는 유람선의 사람들은 손을 마주 흔들어줄 뿐이고, 119 구조대는 밤섬에 조난됐단 신고에 “한강에? 무인도? 나오세요~”라며 무시한다. 다시 좌절한 김씨는 목을 매려다 똥이 마렵고, 허리춤을 내리고 어쩌다 달콤한 샐비어 꽃맛을 보고 차마 죽지 못한다. 그리고 카드와 전화와 사람이 없는 김씨의 달콤한 무인도 인생이 시작된다.
<김씨 표류기>
청약통장을 부어도 부어도 이루지 못했던 내 집 장만의 꿈을 김씨는 마침내 이룬다. 섬에 버려진 오리배에 강에서 밀려온 쓰레기를 모아서 살림을 차린다. 새는 너무 높고 물고기는 너무 빨라서 처음엔 수렵·채집 생활에 고전하지만, 필요는 생존의 어머니라 이내 살아갈 방법을 익힌다. 이제 먹을 것은 지천이고, 남는 것은 시간뿐인, ‘가난뱅이의 역습’ 같은 삶을 산다. 이렇게 익숙한 것들과 결별은 뜻밖의 행복을 부른다. 풀숲에 누워 배를 두드리며 독백하는 김씨,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완벽한 심심함입니다”. 이렇게 자급자족의 생활로 누리는 안빈낙도, 다만 잊지 못하는 하나는 달콤한 자장면 냄새다. 우연히 습득한 ‘짜파게티’ 분말스프를 이용해 자장면을 만드는 일은 필생의 목표가 된다. 이제 김씨, 유람선이 지나가면 행여나 들킬까봐 숲으로 숨어버린다.
그러나 김씨는 혼자가 아니다. 저 멀리 아파트 숲에서 김씨(정려원)가 김씨를 발견한다. 아파트에서 카메라 망원렌즈로 남자 김씨를 여자 김씨가 보는 것이다. 그는 경력 3년차 은둔형 외톨이, 원어로 ‘히키코모리’. 무릎까지 내려오는 후줄근한 티셔츠 한 장을 걸치고 그는 방 안에서 인터넷 세상을 살아간다. 클릭만 하면 원하는 옷도 구두도, 심지어 얼굴도 내 것이 되는 마법 같은 세상. 얼굴의 상처 때문에 세상에서 왕따당한 그는 정해진 시간에 일(홈피 꾸미기)을 하고, 하루에 만보를 걷는 “너무도 건전한 현실도피”를 한다. 이렇게 김씨들의 표류는 방 안이나 밤섬이나 자발적 유배에 가깝다. 퇴근 후에는 카메라로 달을 찍는 취미를 가진 여자 김씨는 우연히 밤섬의 김씨를 발견하고, 외계 생명체로 여겨 교신을 시도한다. 이쯤에서 나오는 영화의 주제어, “(그들은) 일촌을 맺을 수 있을까?”.
도시인의 소외와 소통을 다루는 영화는 예상된 길을 간다. 그러나 가는 길가에 꽃도 피고, 새똥도 떨어지고, 눈물 자장도 먹어서 심심하지 않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를 공동 감독했던 이해준 감독은 대중성이 부족한 소재를 대중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남자 김씨가 부족한 재료에 단출한 스프를 버무려 왕후의 수라상보다 맛있는 자장면을 만들었듯, 이 감독은 거의 두 개의 공간에 두 명의 배우만 나오는 부족한 자원으로 웃음과 눈물을 적당히 버무려 볼 만한 영화를 만들었다. 도시의 불청객, 노숙인과 미친년처럼 보이는 남녀 김씨가 만드는 결말도 너무 아쉽지도 과하지도 않다. 돌이켜보면, 도 소통을 향하는 영화였다. 5월14일 개봉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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