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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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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앞, 한 명은 패한다

한물간 진행자와 전직 대통령의 인터뷰 게임,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
등록 2009-02-26 17:54 수정 2020-05-03 04:25

“우리 중 한 명은 패해.”
영화 에 나오는 대사다. 어떤 인터뷰는 이렇게 승패가 나뉜다. 대중이 듣고 싶은 얘기를 끌어내야 하는 인터뷰어와 자신의 명예에 금이 갈 얘기를 피해가고 싶은 인터뷰 대상자 사이에서 인터뷰는 가끔 치열한 생존경쟁이 된다.

<프로스트 vs 닉슨>

<프로스트 vs 닉슨>

워터게이트 사건, 진실이 나올까

더구나 인터뷰에 임하는 이들의 처지가 절박하다. 인터뷰어 프로스트(마이클 신)는 한물간 토크쇼 진행자. 영국 출신인 그는 뉴욕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을 잃고 런던과 시드니를 전전하며 연예인 인터뷰를 하는 처지다. 프로스트와 인터뷰하는 닉슨(프랭크 란젤라)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임기 중에 물러난 전직 대통령. 여전히 그는 정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프로스트에겐 닉슨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확천금 같은 유명세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야망이 있다. 영화는 실제 벌어졌던 프로스트와 닉슨의 치열한 인터뷰를 다룬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사임한 지 3년이 지난 1977년 4월, 프로스트는 닉슨과 인터뷰를 성사시킨다. 둘에게 인터뷰는 모든 것이 걸린 게임이다. 미국의 주요 방송사가 인터뷰 방송을 거절하고 투자자마저 나타나지 않아 프로스트는 자신의 돈을 쏟아부으며 인터뷰를 진행한다. 코미디언 출신인 프로스트의 인터뷰 실력을 얕잡아본 닉슨은 인터뷰를 정계 복귀의 발판으로 삼고자 승낙했다. 이제 프로스트는 인터뷰를 통해 미국인이 궁금해하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닉슨의 진심 어린 사죄의 말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노회한 닉슨은 한마디 질문을 하면 백마디 무의미한 답변을 하는 노련한 화법으로 핵심을 비켜간다. 예정된 4번의 인터뷰 가운데 3번의 인터뷰가 끝나지만 프로스트는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의 인터뷰가 남았다. 마지막 인터뷰의 주제는 워터게이트 사건. 프로스트에겐 막판 역전의 기회다. 인터뷰 전날에 걸려온 닉슨의 전화는 프로스트의 승부욕을 자극한다. 인터뷰에 실패하고도 언제나 싱글거리던 프로스트는 강한 집중력을 보이며 닉슨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토록 집요하게 자신을 변호하던 닉슨의 얼굴엔 짙은 회한이 묻어나고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그의 상처를 잡아낸다. 프랭크 란젤라는 그런 닉슨의 복잡한 심리를 한순간의 얼굴에 담아낸다. 그는 닉슨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닉슨 자체가 되었다. 2003년 연극인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원작 연극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란젤라는 얼굴 실룩거림으로, 목소리의 떨림으로 닉슨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여기에 프로스트 역의 마이클 신의 능숙한 연기가 어울려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이들의 연기는 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랭크 란젤라, 마이클 신의 표정

전설적인 인터뷰는 으로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받은 피터 모건에 의해 2006년 먼저 연극으로 재현됐다. 연극에서 주연을 맡았던 두 배우가 영화에서도 그대로 캐스팅됐고, 프랭크 란젤라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를 만든 론 하워드 감독이 메카폰을 잡은 은 작품상 등 2009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국내에선 3월5일 개봉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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