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 지혜와 자비의 몸’ 전에서 중국 불교조각 1800년사 속을 걷다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바랜 고목 같은 옛 불상들의 대열 속으로 걸어갔다. 침묵 속 불상들이 시선으로 말을 건다. 진열창 유리 속에, 받침대 위에 맨몸으로 서거나 앉은 불상들의 갖가지 표정과 자세가 “나요! 나!”를 외치는 듯하다. 자비스런 웃음, 인자한 눈매, 깨달음의 표정, 귀여운 사색, 번뇌에 찬 몸부림, 엄숙한 침묵, 이글거리는 분노 등등이 상으로 나타나 깜빡거린다. 부처상과 보살상, 제자상, 나한상, 불법을 지킨다는 천왕상 등등은 표정은 물론 때깔과 재료, 만든 지역이 다 다르다. 흘낏 지나치기도 하고, 눈매에 붙잡았다가 아쉽게 눈을 떼기도 한다. 두툼한 옷자락 속에 몸을 감추고, 꿈틀거리는 알몸 근육을 드러내고, 앉고 서고…. 다양한 자태로 아롱거리는 불상들을 쳐다보는 사이 1300년 넘는 중국 불교조각의 역사 한 자락이 훌렁 넘어간다. 길이 100m도 안 되는 전시장에서 4세기부터 17세기 초까지 중국 불상의 역사를 한달음에 달리는 체험. 그 뒤끝에 말로 하기 어려운 느낌이 남는다.
대만서 60여 점을 전시회째 옮겨와
지금 서울 신림동 서울대 박물관(02-880-5333)에 가면 중국 불교조각사의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 지난 10월 중순 개막해 12월22일까지 여는 ‘불상, 지혜와 자비의 몸’ 전은 4세기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중국 불상조각의 1800여 년 역사를 국내에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만 국립역사박물관에서 올 초까지 전시한 개인, 사립 박물관 컬렉션 60여 점을 전시회째 옮겨왔다. 컬렉션의 질 또한 비교적 수준급이란 평이어서 눈에 와닿는 조형미를 느끼면서 마음으로 불교미술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는 호기가 된다.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전해진 중국 불상은 우리 불상의 뿌리이기도 하다. 4세기 불교의 국교화를 선언하면서 불상조각을 본격화한 북위부터 남북조시대의 성숙기를 거쳐 북주, 수, 당으로 이어지는 중국 불상들은 경주의 석굴암, 서산 마애불 등으로 대표되는 한반도 불상조각에 결정적 영감을 주었다.
중국 불상은 원조 격인 인도 간다라, 마투라 불상의 영향을 중국 특유의 사실적인 묘사 관습과 중원 각지의 풍습, 미의식과 뒤섞어 융화시키면서 끊임없이 변했다. 출품작들 또한 초창기 엄숙한 이상미에서 점차 세상 속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어온 중국 불교조각 1800년사의 흐름을 알뜰하게 보여준다. 엄정 강건한 북위 등 남북조 불상부터 역동적 기운이 차오르는 수·당대 불상, 우아함과 세련미, 거친 미학이 공존하는 송·요·금대 불상, 좀더 원숙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명·청 불상까지 종교적 이상화에서 세속화의 양상으로 흘러간 시대적·지역적 양상들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먼저 강건하면서도 영적인 미소를 지닌 들머리의 5~6세기 북위, 북주 불상들을 만난다. 우리 고대 불상과 모양이 닮은 것들이 몇몇 있어 비슷함을 견주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관을 쓴 북제의 석회암제 반가사유상은 삼성미술관 리움에 있는 평양 평천리 출토 반가사유상,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의 온화한 미소, 자태와 잇닿는다. 6세기 북주의 관음보살 입상은 4, 5등신의 아기 몸 같은 신체 비례에 투박한 외형, 큰 눈망울의 천진한 표정 등이 돋보인다. 투박한 누이 같은 경주 배리의 석조 삼존불 입상의 왼쪽 보살과 자매처럼 비슷하다. 신라와 북중국의 불교조각사가 서로 만나 어우러지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당나라 불상 가운데는 그리스 조각상 같은 고전미를 풍기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의 머리, 페르시아풍의 구슬 장식으로 치장한 목 없는 보살 좌상이 서역 향기를 풍긴다.
송 관음보살 ‘풍성’, 원 나한상 ‘절제’
부처의 젊은 애제자였던 아난과 지혜가 가장 많았던 노제자 가섭의 쌍을 이룬 입상도 감상거리다. 전시에는 이들 쌍입상이 시대를 달리해 세 점씩 나왔는데, 각기 캐릭터의 이미지가 다르다. 돌판 위에 새겨진 북위시대 아난 부조상은 마치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을 보듯 얼굴상이 측면으로 왜곡된 인상을 담아낸다. 당나라 때의 아난 얼굴상은 엄숙하면서도 팽팽한 뺨에 수행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사실주의적 작품이다. 요대의 아난 가섭상은 가장 멋진 명품 가운데 하나로, 역동적인 몸의 근육 표현과 마치 애니메이션 영상처럼 기발한 얼굴 표정이 압권이다. 먼 하늘을 보며 노회한 표정으로 깨달음을 고민하는 가섭의 상은 관객에게 잊지 못할 잔상으로 남을 듯하다.
송나라 때 목조보살 좌상은 전시의 최고 인기 조각이라고 한다. 섬세한 세부 장식과 얼굴 묘사에, 다소 관능적인 느낌마저 보이는 세련된 앉음상은 그 모티브가 고려 때 수월관음도의 도상과도 연결된다. 북방 이민족이 세운 요나라의 목조보살 입상, 금나라의 대형 목조불들은 한결같이 풍성한 몸체에 머리카락까지 구체적인 형상으로 새김하는 꼼꼼함을 보여준다. 부처의 몸을 더욱 실제처럼 느끼며 신앙하고 싶다는 유목민족 특유의 현실적 미감이 작용한 듯하다.
전시 후반부의 백미는 원나라 때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목조 나한의 좌상이다. 마음의 고통을 딛고 정신의 극한에 도달하려는 수도자는 침묵 속에 ‘시선의 몸부림’을 보여준다. 움직임을 최대한 절제하고 복잡한 식물 문양이 그려진 가사를 입고 앉아 눈빛을 빛내며 정면을 지그시 본다. 짐짓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환속하고 싶을 정도로 가중되는 수행의 고통에 짓눌렸을까. 나한은 무섭도록 의연한 표정으로 닥친 수행의 무게감을 솔직한 눈빛을 내쏘며 털어놓는다. 무릎을 힘껏 짚은 두 손과 뚫어지게 정면을 응시한 유리알 박은 두 눈의 모습이 퀭한 감동을 안긴다. 배우 저우룬파(주윤발)의 표정을 닮거나, 막 옷자락 휘날리며 설렌 표정으로 바위에 앉은 다른 나한상들도 보는 재미를 덤으로 안긴다.
원래 부처상은 32상이라 하여 인간의 얼굴과 다른 이상적 특징이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생사의 희로애락이 장인의 손길로 불상의 표정 속에 투영되어 흐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전시된 불상들은 각 지역 생활양식, 불자들의 인간적인 감정들을 고스란히 표정과 자태에 드러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불교적 이상과 부처를 직접 만지면서 느끼고 싶다는 인간적 욕망이 작용해 빚어낸 모순의 실체가 곧 불상이다. 인도미술사가인 서울대 이주형 교수는 전시도록에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들은 불상에 이룩된 조각의 성취를 보면서 받은 자신의 심미적 감흥을 종교적 감화로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불상을 보고 느끼는 건 어차피 이런 착각이 본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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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불교미술의 향기를 동국대 박물관의 불화 특별전 ‘석가팔상도’(12월18일까지, 02-2260-3722)에서 누릴 수 있다. 팔상도는 출가, 열반 등 부처의 일생을 극적인 여덟 장면으로 압축해 그린 그림이다. 불화 전문가 정우택 관장의 노력으로 19세기 말 대원군 일가의 원찰(가문 일가의 복을 비는 절)로 유명한 경기도 남양주 흥국사를 비롯해 경국사, 해인사 등지의 조선 후기 석가팔상도 소장품들을 모았다. 대원군 일가의 발원 문구가 적힌 흥국사 팔상도(사진)는 녹청색 등의 색채 대비가 뚜렷하며 화면을 가르는 구성 방식도 오밀조밀하다. 절 깊숙한 곳에 말아서 감추거나, 전각의 어두운 구석에 걸어놓기 일쑤인 팔상도들을 밝은 조명 아래 낱낱이 구경할 수 있다. 팔상도의 텍스트 격이자, 한글 활자로 찍은 최초의 불교서적 등도 팔상판화 등과 같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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