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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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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땅 속에서!

등록 2007-08-17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형은 북에서, 동생은 남에서 땅을 판 청솔리의 ‘작업’, 영화</font>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font color="#C12D84">*스포일러가 있다면 있습니다</font>

먼저 질문을 멈추고 상황을 인정하자. 휴전선 철조망 아래로 뚫린 땅굴이 간첩의 통로가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길이라면? 삼청교육대를 정말로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로 착각하는 섬마을 청년이 있다면? 은 두 가지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상상에 몰입을 한다면 은 웃음을 약속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러니까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이렇게 통일운동의 고전적 구호를 일찍이 구현한 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서로가 그리워 형은 북에서 파고, 동생은 남에서 파면서 약속이나 한 듯이 ‘만남의 광장’에서 만났다, 은 그렇게 설정한다. 분단은 어찌나 웃기는 현실인지, 분단 상황을 뒤집는 것만으로 코미디의 ‘시추에이션’이 된다.

밤마다 처제와 형부가 찾아간 곳은

1953년 강원도 청솔리. 서양 군인들이 동네 산에 철조망을 치면서 졸지에 청솔리는 분단된다. 그들의 작업을 돕던 형제는 남북으로 나뉘어 철조망을 부여잡고 울부짖지만 때는 늦었다. 그리고 30년 뒤인 80년대 남한. 교사가 꿈인 공영탄(임창정)은 삼청교육대가 ‘교육대’인 줄 알고 슬그머니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는 무리에 끼어든다. 하지만 영탄은 ‘불의의’ 운반 사고로 혼자서 떨어져 청솔리로 들어온다. 선생님을 기다리던 주민들은 영탄을 교육대 출신 교사로 오해한다. 마침 청솔리로 부임하던 교사 장근(류승범)은 인적 없는 산속에서 볼 일을 보다가 지뢰를 밟아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주민들이 영탄에게 의심을 품어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영탄이 의심을 품는다. 영탄은 마을 생활의 ‘가이드’ 이장(임현식)을 의심한다. 이장이 처제인 선미(박진희)의 밤길을 배웅하는 모습을 영탄이 목격한다. 영탄의 인기척에 놀란 이장과 선미는 엉겁결에 땅바닥에 엎드린다. 그들의 배웅에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묘하게 엎어진 그들의 자세는 더욱 영탄의 의심을 산다. 이미 영탄은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연못에서 목욕하는 선미를 보고서 반한 터였다. 그리하여 형부와 처제의 스캔들이 터진다. 주민들은 영탄의 의심을 풀어줄 방법을 알지만 마을의 비밀을 말하지 못한다. 영탄은 자꾸만 선미가 산다는 윗마을에 가려고 하면서 마을의 비밀에 서서히 다가간다. 공주병 증세가 있는 선미의 직업은 대남방송 선전요원. 그러니까 윗마을은 북조선이었던 것이다.

비극이라면 비극인 상황이지만, 은 시종일관 코미디 영화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웃음의 동력은 배우에서 나온다. 부터 까지 코미디 영화의 ‘희극지왕’에 이르는 길을 닦아가고 있는 임창정은 영탄을 임창정스러운 연기로 무난하게 소화한다. 임현식은 황당한 상황에 정겨운 웃음을 불어넣는 힘을 발휘한다. 박진희는 다른 드라마에서 보여준 캐릭터를 반복한다는 느낌이 있지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배역을 자연스레 소화한다. 여기에 마을 주민으로 나오는 이한위, 어머니 역할의 김수미가 가세한다. 은 이렇게 배우들이 가진 자산을 활용할 뿐 별다른 모험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결국엔 배우들에게 기댄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가족이 땅굴을 뚫어서 남북의 왕래가 이뤄진다는 기발한 상황도 희극이든 비극이든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은 코미디 영화의 코드에 따라서 주민들의 캐릭터를 친절하게 소개하지만, 그것이 의 장점인 땅굴의 설정과 섞이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웃다가 슬퍼져야 할 때 슬프지 않으니

무엇보다 코미디에 전력을 다하다 멜로의 흐름을 놓친다. 선미가 영탄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감정의 변화가 충분히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은 주민의 비극에 감정이입하도록 만드는 데 고전한다. 분단이라는 주제의 무게를 지나치게 덜어낸 탓이다. 이 전쟁의 무거움과 상황의 유쾌함을 적당히 버무려냈다면, 은 웃기다가 슬퍼져야 할 순간에 슬퍼지지 않는다. 주민들이 결국에 직면하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너무 간단하게 해소된다. 반드시 비극적 결말이 아니어도 뭔가 좀더 기발한 해법이 있었다면, 영화에 무게를 더하지 않았을까. 영화의 흐름과는 떨어져 있지만, 이따금 삽입되는 장근의 장면은 도저히 웃지 않고 배기지 못할 만큼 재미있다. 장근을 연기하는 류승범은 기발한 설정과 리얼한 표정, 두 가지만 있으면 얼마나 웃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은 의 조연출 출신인 김종진 감독의 데뷔작이다. 8월15일 개봉한다. 남북 정상회담 발표로 뜻밖의 호재를 만났다. 최대의 정상회담 수혜 영화가 되리란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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