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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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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해버린 문장] 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엔 내밀한 관계가 있다

등록 2005-07-07 00:00 수정 2020-05-03 04:24

<느림>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민음사 펴냄)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이 소설은 현대사회의 속도에 대한 꽤 인상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그가 든 예를 보자. 한 남자가 있다. 그가 거리를 빠르게 걸어가다 무언가를 회상하고자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그는 속도를 줄이거나 멈출 것이다. 반면에 어떤 끔찍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면,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어서 멀어지고 싶다는 듯 걸음을 재촉한다. 쾌락은 조금씩 연장되고 기억되며 비밀, 신중함, 익명성의 베일에 가려져 있을 때 달콤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진술의 발명 이래로 모든 이들이 화려한 조명 속에서 춤추고 있는 시대다. 어느 곳에도 그늘이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드러나는 이 밝은 무대에서 미친 듯이 춤추며, 더 빠르게 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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