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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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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보장을, 4차 산업처럼 혁신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는 플랫폼노동자의 산재 보상 등을 보장하는

‘AB-5 법률’ 제정, 유럽에서는 노동자 인정 판결 많이 나와
등록 2019-11-20 09:30 수정 2020-05-07 10:02
글로벌 승차공유 플랫폼기업 우버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5월8일, 우버 기사들은 우버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앱을 끄고 파업 시위를 벌였다. REUTERS

글로벌 승차공유 플랫폼기업 우버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5월8일, 우버 기사들은 우버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앱을 끄고 파업 시위를 벌였다. REUTERS

한국의 플랫폼기업들은 자신들이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한다. 이 일자리들은 자신들 서비스의 핵심 분야를 ‘일반인’에게 외주화한 것이지만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자리다. 그러면서 “긱이코노미 시대 꿀 알바”라고 광고하거나 “긱이코노미를 실현하겠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에선 일부 플랫폼기업이 원래 근로기준법의 노동자로 분류했어야 하는 플랫폼노동자를 ‘자영업자’로 분류해, 원래 보장해줬어야 하는 권리를 누락시키기도 한다. 그러면서 플랫폼경제, 긱경제, 공유경제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으로 추앙하는 여론이 한국 경영계와 정부를 중심으로 조성돼 있다.

그러나 이미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국가, 이른바 ‘공유경제 선진국’에서는 공유경제에 대한 반성과 플랫폼노동이 가져온 불평등 심화 등에 근거해, 플랫폼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부과하고 플랫폼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적 조처가 잇따르고 있다. 플랫폼노동자를 노동자 범위로 포섭하거나, 노동자로 포섭하지 않더라도 사회보장을 비롯한 주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독립계약자가 아니면 모두 노동자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플랫폼노동의 상징이자, ‘고용의 우버화’라는 말을 불러온 우버를 비롯한 수많은 ‘혁신기업’이 자리잡은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AB-5 법률’ 제정이다. 우버와 리프트를 비롯한 플랫폼노동자의 권리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법률로 2020년부터 시행된다. 법률이 시행되면, 대부분의 플랫폼노동자들은 최저임금·산재보상·실업보험·유급병가·가족휴가 등을 보장받을 수 있다.

플랫폼노동자의 권리 보장은 ‘혁신적 사고’에서 나왔다. 노동자가 아닌 독립계약자(한국 기준으로는 자영업자)가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사용자를 상대로 “내가 노동자다”라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이 법은 사용자에게 자신이 계약을 맺은 사람이 노동자가 아닌 독립계약자임을 입증하라고 입증 책임을 전환했다. 독립계약자가 아니면 모두 노동자로 추정된다. 독립계약자임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렇다. ①노무 제공자가 노무 수행과 관련해 기업의 통제와 지시로부터 자유롭고 ②노무 제공을 받는 회사의 통상적인 업무 이외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③스스로 독립적인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 만약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할 경우엔 노동자가 된다. 한국에선 플랫폼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특수고용노동자가 노동자가 된다.

이러한 법률이 통과된 것은 미국 내에서 우버·리프트 같은 플랫폼노동자가 급증하면서 중산층이 붕괴되고 불평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법안을 발의한 로레나 곤잘레스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은 주지사가 법안에 서명한 9월18일 “우리는 중산층을 재건하고 우리가 아는 방식대로 노동자의 미래를 재편할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이제 다른 주와 국가가 따라야 할 노동자 보호에 대한 세계적 기준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이미 3년 전부터 플랫폼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관한 입법을 진행했다. 2016년 프랑스는 ‘노동과 사회적 대화의 현대화, 그리고 직업적 경로의 보장에 관한 법안’을 통해 플랫폼노동자를 비임금노동자로 규정(개별적으로 종속관계가 인정되면 임금노동자로 재규정 가능)하는 대신, 플랫폼노동자의 산재보험료와 직업훈련 비용을 플랫폼이 부담하게 했다. 또한 플랫폼노동자에게 노동삼권을 보장해 파업권·단결권·단체교섭권을 인정했다. 이 밖에 유럽을 중심으로 주요 국가에서 자영업자로 인식되던 플랫폼노동자를 ‘노동자’로 판단하는 판결이 주로 나오고 있다.

왜 사회적 책임은 말하지 않나

한국에선 근로기준법의 노동자도 플랫폼노동자로 위장되는데, 국외에선 ‘진짜’ 플랫폼노동자도 노동자로 인정되는 셈이다. 물론 이들 국가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한국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권리와는 차이가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노동자는 해고로부터 보호가 안 된다. 영국에는 노동자(Employee)와 자영업자 사이에 노동자보다 권리 수준이 낮은 ‘노무제공자’(Worker)라는 개념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은 노무 제공 관계에서 플랫폼기업의 책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플랫폼은 모든 비용을 외부로 전가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속성이 있어 규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에서도 이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노동소득 분배율(기업의 이윤 중 자본이 아닌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이 떨어지고, 기업으로 흘러가는 돈은 많아지는데 주주 배당에 대해선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플랫폼이 혁신이라고 말할 뿐 사회적 책임에 대해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플랫폼노동자 보호 방안을 만들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경제사회노동위원회·일자리위원회·고용노동부 등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배달대행 플랫폼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일부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과했다. 국회에서는 플랫폼노동자를 포함한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 내용을 담은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발의됐다. 이 법안에는 보험료를 플랫폼노동자와 플랫폼기업이 절반씩 부담하고, 플랫폼기업에는 보험가입 신고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아, 11월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속한 논의를 촉구하는 권고문을 내기도 했다. 어떤 영역에서도 가시적 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보니,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에 관해 20년 가까이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상황이 지속될지도 모른다.

주요 부처 장관이 “신산업의 싹을 자른다”

플랫폼기업들이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우리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한 것은 분명하다. 서비스의 혁신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해당 서비스를 존재하게 하는 플랫폼노동자를 보호하는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도록 하는 것도 정부와 시민들의 역할이다. 5월8일 우버가 화려하게 미국 증시에 상장하자 우버 기사들은 앱을 끄고 파업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처우는 열악한데 주주들은 상장에 따라 천문학적 이익을 남기게 됐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는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불법파견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타다에 대해, 검찰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을 두고 총리부터 주요 부처 장관까지 “신산업의 싹을 자른다”는 취지의 비판을 내놨다. 그러나 노동법의 대원칙은 이렇다. “이익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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