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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공단 중대재해 트라우마 상담 기록… 고위험군은 ‘재해자와 친밀도 높은 사람’
등록 2019-04-17 10:48 수정 2020-05-03 04:29
4월3일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고 현장. 한겨레 박종식 기자

4월3일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사고 현장. 한겨레 박종식 기자

친밀감과 고통은 비례한다. 일터에서 사고로 동료가 죽는 모습을 목격한 모든 사람이 동일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재해자와 평소 가까이 지냈던 사람일수록 더 큰 트라우마(정신적 충격)를 겪는다고 말한다. 안전보건공단이 2018년 발행한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 운영결과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보면, 고위험군 비율이 가장 높은 집단은 ‘재해자의 입사동기, 교대자 등 친밀도가 높은 사람’들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2018년 5월8일부터 11월30일까지 사업장에서 일어난 중대재해 26건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419명을 상담하고 그 결과를 기록했다. 중대재해는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 등 정도가 심한 재해를 말한다.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상담센터가 노동자들을 상담하며 설문조사의 일종인 ‘사건충격척도’ 검사를 한 결과 트라우마 고위험군 비율은 유형별로 달랐다.

트라우마 피해자 상당수가 목격자

고위험군 비율이 높은 집단부터 순서대로 보면 입사 동기·교대자 등 친밀도가 높은 사람(62.1%), 재해자 본인(60%), 사고 처리자와 담당자(55.6%), 직접 목격자(54.9%), 구조 참여자와 응급 처치자(54.9%), 간접 목격자와 단순 팀원(47.8%) 순이었다. 괄호 안 숫자는 해당 집단에서 고위험군 비율이다. 엄밀히 말해 이 조사는 ‘중대재해 목격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전체 트라우마 피해자 중 목격자가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재해자와의 친밀감이 트라우마 위험도에 큰 영향을 미치다보니, 보고서에는 얼핏 봐서 이해하기 힘든 조사 결과도 담겼다.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트라우마 피해가 컸고, 큰 기업(100명 이상 기업)의 노동자들이 작은 기업(100명 미만 기업)의 노동자보다 피해가 컸다. 비정규직의 산업재해 피해가 정규직보다 크고 소규모 기업일수록 열악하다는 일반론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 이유는 정규직 또는 큰 회사에서 동료들과 친밀감을 쌓을 기회가 컸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장기 근속자가 많은 사업체, 직장 내 동호회 등 사내 모임 회원, 계모임 등 사적 모임 회원, 교대자, 룸메이트 등의 경우 충격 정도가 높다”고 밝혔다.

중대재해가 일어난 사업장에서 누가 트라우마를 심하게 겪을지 예측할 수 있다면 대처도 가능하다. 보고서는 “직접 목격자, 구조응급 처치자, 높은 친밀자 유형에 속하는 노동자들은 트라우마 필수관리 대상자로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상담 빠를수록 위험도 줄어들어

보고서에는 사고 유형별로 목격자 트라우마의 정도가 다른 점도 나와 있다. 더욱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사고일수록 목격자 트라우마도 컸다. 고위험군 비율이 높은 순서대로 보면 화재·폭발·파열(64%), 끼임(51.8%), 떨어짐(42.6%), 교통사고(35%), 깔림·뒤집힘(7.7%)이었다.

사고 뒤 상담이 빠를수록 트라우마 위험도는 빠르게 줄었다. 사고 30일 이내에 첫 상담을 시작한 경우가 30일 이후 첫 상담을 시작한 경우보다 위험도가 낮아지는 경향성이 훨씬 컸다. 보고서는 “사업장과의 조율이 늦어져 상담이 늦게 개입된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상담 장면에서 늦은 개입에 대한 불만을 크게 표현했고, 상담사들은 그 불만부터 다룬 후 본격적인 상담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상담을 하는 것뿐 아니라 적절한 개입 시기 또한 충격 호전에 중요함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말들


“얼마나 화가 나시겠어요”


안전보건공단, 2018년 11월 ‘건설 중대재해 사례와 대책’

안전보건공단, 2018년 11월 ‘건설 중대재해 사례와 대책’

내 가족이나 동료가 산업재해를 목격하고 트라우마를 겪는다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안전보건공단은 트라우마를 지닌 노동자들이 겪는 주요 증상과 유형별 상담사의 대응 방안을 정리해 2018년 12월 ‘산업재해 트라우마 관리 프로그램 운영 매뉴얼’을 발표했다. 상담사들을 위해 만든 자료지만, 피해자의 가족이나 회사 동료 등 주변 사람들도 참고하면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행동 수칙이다.

1. 분노
주요 증상 화내기, 소리 지르기, 욕하기, 짜증내기, 노려보기, 싸움 등
대응 방식 분노와 짜증 등은 2차 감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운함, 무력감, 억울함 등 그 이면의 감정을 알면 어떤 욕구가 좌절됐는지 스스로 알게 된다. 현재 피해자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에 대해 질문하며 정리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도움이 되는 반응
“뭔가 모르게 화가 심하게 나는군요. 어떤 계기로 무엇에 화나는 것 같나요?”
“이번 사고가 안전조치만 잘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충분히 화가 날 수 있어요. 나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현장에 와서 직접 보고 조치를 해달라고 여러 번 요구했는데도 이런 사고가 났으니 얼마나 화가 나시겠어요.”
피해야 할 반응
“동료분이 사망했는데 화낼 때가 아닌 거 같아요.”
“화내기보다 앞으로의 안전을 생각하셔야죠.”
“너무 화만 내지 마시고 잘 생각해보시기 바라요. 이게 회사의 잘못만은 아닌 것 같아요.”
※상대방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미뤄 짐작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반응.

2. 불안
주요 증상 불 켜고 자기, 감시받는 느낌, 두근거림, 식은땀, 현장을 지나가지 못함, 공포, 환시, 환청 등
대응 방식 큰 사고를 목격하면 무기력감, 긴장, 불안 등을 느끼게 된다. 불편함을 낳는 신체 반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공감하는 반응으로 현재 경험하는 것을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도록 한다.
도움이 되는 반응
“악몽 때문에 잠을 푹 못 주무시겠어요. 잠을 못 자면 일할 때 컨디션도 안 좋고, 그러니 더욱 일할 때 힘들고 집중도 안 되겠어요.”
“일반적인 사람들은 간접적일지라도 큰 사고를 목격하고 나면 당신이 지금 느끼는 것처럼 불안해지거나 분노를 느끼게 돼요.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지기는 하지만 계속 지속되면 상담을 통해 도움받을 수 있습니다.”
피해야 할 반응
“당신의 상태가 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집중을 왜 못하세요? 이런 때일수록 더 집중해서 일해야 안전하죠.”
※비정상으로 치부하거나 호소하는 어려움을 무시하는 반응.

3. 슬픔
주요 증상 계속되는 울음, 무기력함,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등
대응 방식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데 걱정과 두려움이 있는지 살펴본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안전한 관계에서 꺼내놓고 명료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도움이 되는 반응
“슬픔으로 힘들거나 화날 때,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된답니다. 특히 이번 사고를 함께 겪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더 큰 도움이 되지요.”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걱정되거나 불안한가요? 동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것인가요?”
피해야 할 반응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무조건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반응.

4. 기타
“힘내라” “곧 괜찮아진다” “불을 조금씩 끄고 잘 수 있도록 해보자” 등의 말보다 “그렇구나” “당연하다” “그럴 수 있다” “약해서 그런 게 아니다” 등의 말 사용하기.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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