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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열차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를 만나다

김정은 열차 대장정이 보여준 동아시아 철도의 역사와 미래
등록 2019-03-04 04:09 수정 2020-05-03 04:29
2월26일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리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연합뉴스

2월26일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리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연합뉴스

‘철도’를 국어사전에서 검색해보자. “침목 위에 철제의 궤도를 설치하고, 그 위로 차량을 운전하여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는 시설”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철제 궤도 위로 차량이 움직이는 철도라는 시설은 요즘 시대에는 비효율적이며 근대적인 인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철도는 묵직하고 음울하며 쓸쓸한 이미지가 강하다. 굳이 색깔로 표현한다면 잿빛이 어울릴 것 같다. 철도 부설권으로 대변되는 제국주의 침탈, 고려인 강제이주에 동원된 스탈린 시대의 증기기관차, 한국전쟁의 기록 속에 선명한 피란민 열차, 역 근처를 새까맣게 만들던 석탄 화차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에 더하여 군사분계선 근처에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며 녹슬어가는 증기기관차는 우리 민족 분단의 역사를 낙인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분단된 땅에서 통일과 화합, 번영의 이야기와 함께 철도는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파란색 이미지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남·북쪽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제대로 기지개 한번 펴지 못한 한반도의 철도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고의 폐쇄 국가 북한의 지도자가 외국 순방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한반도 철도의 광역성과 효용성을 재인식시키고 있다.

김일성의 비행기, 김정은의 열차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탑승한 전용열차. 맨 왼쪽 창가에 선 이가 김정은 위원장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탑승한 전용열차. 맨 왼쪽 창가에 선 이가 김정은 위원장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월27일부터 28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23일 오후 전용열차로 평양역을 출발했다. 평양~하노이는 전용기로 5시간이면 충분하다. 반면 열차로는 4500㎞, 중국 통과 거리만 4천㎞에 이르는 ‘사흘 대장정’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열차 대장정’은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두 차례 베트남 방문(1958·1964년)에 사실상 중국이 제공한 전용기를 이용한 선례와도 다른 선택이다. ‘5시간 이동’ 대신 굳이 ‘사흘 이동’을 선택한 김 위원장의 판단은 평소 ‘국제적 수준’과 ‘실용’을 강조해온 리더십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다. ‘시대착오적 선택’이라는 외부의 비판이 예상되는데도 ‘열차 대장정’을 선택한 것이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러시아를 방문할 때마다 무려 1만㎞라는 장거리를 철도로 이동했다. 서방의 평론가들은 이런 형태의 이동을 21세기에 떠난 19세기의 기차 여행이라고 비아냥거린 적이 있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은 세간의 궁금증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열차 여행을 하면 그 나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열차 밖 풍경을 보며 관계자와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눈앞을 스치는 장면의 궁금증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육상으로 2개의 국경을 통과해야 하는 철도를 선택했다.

일본 외교관 이노우에 요이치는 매우 흥미로운 책을 집필하였다. 라는 책으로, 철도는 국가권력을 싣고 달린다는 부제가 달려 있다. 동아시아에서 철도는 서구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의 세력 균형과 현상 유지, 현상 파괴를 위한 팽창과 충돌, 전쟁의 복합적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궤간이 무엇이길래 국가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일까? 궤간은 철도 궤도 사이의 너비, 즉 레일과 레일 사이의 거리를 말한다. 철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철도 궤간은 다양한 형태였다. 이러한 철도가 서로 연결되고 중장거리 수송 네트워크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궤간을 통일시켜야 하는 과제에 부닥치게 되었다. 철도의 발상지인 영국에서는 1846년 철도 궤간을 통일시키는 궤간법이 제정되었고, 1435㎜를 영국의 표준궤로 정하였다. 지금도 1435㎜를 기준으로 넓은 것은 광궤, 좁은 것은 협궤라고 명명한다. 광궤에도 규격이 다른 여러 종류가 있고, 협궤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협궤는 1067㎜인 반면, 베트남의 협궤는 1천㎜ 이다.

한국의 궤간이 중국과 같아진 이유, 일본 수탈

동아시아에서 표준궤를 사용하는 나라로 남북한과 중국이 있으며, 러시아와 몽골은 광궤(1520㎜), 일본은 협궤를 쓴다. 지금 지구의 철도 중 표준궤가 전체의 60%, 광궤가 21%, 협궤가 19%를 구성한다.

광궤 철도는 크게 두 형태로 나뉜다. 스페인 계열(1668㎜)과 러시아 계열(1520㎜)이다. 이 두 나라가 국제 기준인 표준궤를 포기하고 연계가 어려운 광폭을 선택한 배경에는 프랑스 나폴레옹1세의 침략 위협 때문이었다. 철도를 통해 대규모 병력이 이동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연결보다는 단절을 선택한 것이다.

궤간이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는 국경역에서 화물은 환적, 승객은 환승 내지 대차교환이라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 대차교환이란 열차를 들어올려 바퀴 부분을 교체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 궤간이 다른 열차들이 상호주행할 수 있도록 두 종류의 궤간을 같이 건설하여 운영하는 방식이 있다. 이러한 형태의 궤도를 혼합궤도, 복합궤도라고 한다. 북한의 나진역과 러시아 하산역 구간,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이 도착한 중국 난닝과 베트남 동당 구간에도 복합궤도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구한말 대한제국의 선각자들은 한반도의 철도를 국제 표준에 맞추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도 부설을 담당하는 철도사(鐵道司)를 설치하여 철도 체계를 통일시키기 위한 국내 철도규칙도 제정·공포하였다.

한반도를 침탈한 일본은 초기에 한반도 철도망을 일본과 같은 협궤(1067㎜) 철도 건설 방침을 정하였다. 그러나 대륙 침략 장기 구상하에서 중국과 연계 가능한 표준궤 철도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단순한 인적·물적 운송수단이 아니라 제국 경영과 침략과 수탈이라는 시각에서 철도를 바라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중 간 압록강 철교를 통과하는 영상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짙은 녹색 기관차와 옅은 초록색의 여객 열차가 연결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중국 내 4천㎞를 종주하고 베트남 국경역인 동당에 도착한 북한 1호 열차는 붉은색 바탕에 노란색을 칠한 다른 기관차였다. 기관차의 색깔이 바뀐 것이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왜 다른 형태의 기관차로 교체해야 하는지, 중국 어디에서 기관차를 교체했는지, 베트남 국경역인 동당역에서 하노이까지는 왜 열차로 이동하지 않았는지… 수많은 의문이 쏟아져나왔다.

단동-난닝, 난닝-동당 기관차 왜 달랐나

중국과 베트남의 철도 연결은 1950년대 중국과 베트남의 지도자였던 마오쩌둥과 호찌민과의 합의로 급진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의 궤간은 1천㎜ 협궤, 중국은 1435㎜ 표준궤였기 때문에 국경역에서 화물 환적과 여객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러한 불편을 해결하기 위하여 중국과 베트남은 베트남 영내 일부 구간에 레일을 하나 더 건설해 표준궤와 협궤 열차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배경에는 베트남전쟁이 있었다. 미국과 전쟁을 하던 당시 북베트남을 중국이 본격적으로 지원하면서 철도를 통한 대량의 물자를 지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레일 3개로 이루어진 이른바 ‘3조 궤선’은 베트남전쟁이 남긴 유산이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중국과 베트남의 끈끈한 밀월 관계는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균열이 시작되어, 1978년 베트남소련 우호조약 체결로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 상황은 1978년에 양국 간 철도 운행 조치로 확대되었고, 중국과 베트남 간 전쟁으로 양국 간 철도 운행은 1996년까지 중단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용한 중국 난닝-베트남 동당 간 국제철도 운행은 2009년 1월 개시되었다. 중국과 베트남은 2008년에 중-베트남 국경철도회담을 열었고, 2009년 1월부터 중국 난닝-하노이(자람) 구간까지 396㎞를 국제철도로 운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양국은 난닝부터 동당까지는 중국 난닝철도국의 동풍(DF) 4D형 혹은 4B형 디젤기관차를 쓰기로 하였으며, 동당부터 자람역까지는 하노이철도국의 D14E형 디젤기관차를 쓰기로 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탑승한 열차는 중국 난닝역에서 기관차를 교체해야 하는 불편한 과정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관차를 교체하는 시간에 역 구내에서 담배를 피우던 장면이 포착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단동부터 난닝까지 타고 왔던 열차를 견인한 기관차는 중국에 6대밖에 없는 DF11Z형 최신 기관차다. 이 기관차는 특수 여객열차 견인용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시 자주 이용된다. 지난번 남북철도조사단을 태우고 서울역을 출발했던 우리나라 최신형 디젤기관차보다 견인력이 3.2배나 되는 엄청난 힘을 자랑한다. 대당 가격은 3200만 위안으로 약 55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정회원 국가로 가입하였다. 국제철도협력기구는 1956년에 당시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국가 28개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으로서 하나의 운송장으로 국가 간 화물과 여객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유라시아 회원국 간에 표준 기술, 신호체계, 운행 방식, 통행료 등에 관한 통일된 규정을 운용하고 있다. 언제라도 대륙으로 사람과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은 놀랄 만한 진전이다.

철마가 달리는 미래의 길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을 제안하였다. 동아시아에서의 정치·경제·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공동 번영과 평화 정착이 철도라는 운송수단으로 가능하다는 비전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다행히 북한 철도의 강점 중 하나는 인접국인 중국, 러시아와 신의주-단동, 남양-도문, 만포-집안, 두만강-하산 간 4개 국제철도 노선이 가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에서 철도는 남북 철도 연계를 계기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경인선 철도 개통식을 소개한 은 ‘화륜거(火輪車·기차)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아오르더라’라고 기차를 묘사하였다. 동아시아에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화륜거의 등장이 멀지 않았음을 기대해본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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