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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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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들어서면 삶이 나아지는가

높아지는 제주 제2공항 반대 목소리…

“공항 건설보다 관광 수용력을 먼저 따져보는 게 중요”
등록 2018-07-10 16:59 수정 2020-05-03 04:28
지난 6월18일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현대 선임기자

지난 6월18일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이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현대 선임기자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우리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제주의 ‘미래가치’인 청정 환경을 지켜낼 때입니다.”

6월20일 아침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아이들이 등교하는 신산초등학교 길목엔 제2공항 반대 주민들이 내건 노란 펼침막이 나부낀다. 신산초등학교는 제주 제2공항 예정 부지의 활주로 남쪽 끝 1㎞ 지점에 있다. 제2공항이 건설되면 귀를 찢는 비행기 굉음이 교실 유리창을 흔들 것이다.

2015년 11월10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성산읍을 제주 제2공항 터로 선정하던 날 담화문을 발표했다. “제2공항 건설은 제주 역사상 최대 규모 사업입니다. …제주를 ‘미래’로 이끌 제2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제주 경제성장의 결정적 계기가 될 뿐 아니라 후손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공항 유치는 ‘지역의 미래’를 여는 보증수표로 인식됐다. 동남권 신공항을 유치하기 위해 대구·경북(TK) 세력과 부산·경남(PK) 세력이 전면전을 벌인 것이 최근의 생생한 사례다. 황금알 낳는 국책사업을 우리 지역으로 거저 가져오는 것이라 여겼고, 유력한 정치인이라면 공항 하나쯤 끌어올 능력이 있어야 ‘가오’(얼굴)가 섰다. 하지만 공항이 들어선다고 나와 이웃의 삶이 나아졌던가? 그런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신산초등학교 아이들과 제주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6월19일 강원보 제2공항반대대책위원장을 신산초등학교 앞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강원보 제2공항반대대책위원장을 6월19일 신산초등학교 앞 자신의 집에서 만났다. 강 위원장은 제2공항 반대 소신을 분명하게 밝혔다(왼쪽). 박승화 기자

강원보 제2공항반대대책위원장을 6월19일 신산초등학교 앞 자신의 집에서 만났다. 강 위원장은 제2공항 반대 소신을 분명하게 밝혔다(왼쪽). 박승화 기자

지역마다 주민들이 서로 공항을 유치하려고 하지 않나. 강력한 주민반대모임을 꾸린다는 게 이례적이다.

제주 관광객이 한 해 1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홍보하는 시대를 살았다. 2016년엔 1500만 명째 제주를 찾는 관광객한테 상을 주면서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그래서 어찌 됐나. 우리가 잘살게 됐나. 더 많은 관광객이 더 많은 돈과 행복을 가져오던가. 도민들이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제주 관광의 수용력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겪으면서 도민들 생각이 바뀌었다.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생겼다. 제주가 얼마나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을까? 이젠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하지 않겠나. 이미 관광객 1500만 명을 감당하지 못해 하수를 바다로 내뿜고, 못 태운 쓰레기를 수십억원 들여 육지로 내보낸다. 제2공항이 들어서면 하와이의 3배 가까운 2500만 명의 관광객이 제주로 쏟아져 들어온다. 제주의 자연과 환경이 2500만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겠나. 우리는 그런 준비가 돼 있나.

누가 봐도 제주공항은 포화 상태다. 제2공항을 짓지 않는다면, 대안은 뭔가.

그것까지 내가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젠 양적 팽창 일변도의 관광정책은 아니라고 본다. 그동안 한 번도 제주도의 환경수용력을 진지하게 검토해본 적이 없다. 지금 속도로 관광객이 늘어나면, 머잖아 제주의 자원과 환경이 황폐화할 수 있다. 후손을 위해서도 관광객을 위해서도, 오래오래 오고 싶은 제주를 지켜야 하지 않겠나. 제2공항 건설을 밀어붙이기 전에, 이런 질문을 먼저 던지고 머리를 맞대자는 말이다.

제주는 관광이 주력 산업이다. 관광으로 먹고살아야 하지 않나.

지난해 말 제주관광협회에서 처음 실시한 ‘제주관광 수용력’ 조사가 큰 의미가 있다. 보수적으로 판단할 때, 1990만 명보다 관광객이 더 많이 들어오면 오히려 경제적 손실이 커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들어올 때 도민들이 확실한 ‘공부’를 했다. 중국 업체와 면세점만 돈 벌고, 도민이 운영하는 식당과 숙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경험을 공유한 도민들이 이제 지혜로운 판단을 한다.

강 위원장은 6월18일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토교통부에서 하기로 한 제2공항 입지 선정 타당성 재조사와 별개로 제주도 차원의 독자적인 연구조사를 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제주도의 환경수용력이 관광객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제주도민의 의견을 묻는 공론화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2공항 추진을 둘러싼 제주도의 민심 변화는 여론조사에서도 감지된다. 2015년 12월, 성산읍을 제2공항 부지로 선정한다고 발표한 직후 실시한 KBS 여론조사에서는 71.1%의 압도적인 도민이 ‘성산읍 제2공항 건설’을 지지했다. 2017년 9월 제주도 여론조사에서는 63.7%로 그 수치가 떨어졌고, 올해 2월 제주CBS·제주MBC· 공동조사에서는 53.2%로, 두 달 뒤인 4월 제2공항반대범도민행동·제주대 공동조사에서는 다시 42.7%로 뚝뚝 떨어졌다. 주민들의 제2공항 지지 여론이 눈에 띄게 낮아진 것이다. 다만 올해 4월 조사에서도 “공항 확충이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16.2%에 그치고 있다. 나머지 34.5%는 “신공항 건설이 아닌 다른 방안으로 공항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응답이었다.

제주 성산읍 신산리의 한 오름에서 내려다본 제2공항 편입 예정 터. 제2공항 건설이 확정되면, 비닐하우스 뒤쪽에 좌우로 길게 활주로가 들어선다 박승화 기자

제주 성산읍 신산리의 한 오름에서 내려다본 제2공항 편입 예정 터. 제2공항 건설이 확정되면, 비닐하우스 뒤쪽에 좌우로 길게 활주로가 들어선다 박승화 기자

성산읍 공항 터로 수용되거나 소음 피해를 입을 4천여 주민들 사이에도 미묘한 온도 차이가 감지된다. 강 위원장이 이끄는 반대대책위에는 공항 부지 편입으로 인한 4개 피해 지역 중 신산리·수산1리·난산리 3곳이 포함됐다. 이곳은 공항 개항 뒤 직접 소음 피해를 보는 지역이어서 ‘강력 반대’라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항으로 수용될 예정인 터의 70%가 편입된 온평리 주민들은 별도의 반대모임을 꾸리고 있다. 이곳 터의 70%를 외지인이 갖고 있어, 이번 기회에 수용가격을 높게 받자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성산읍의 나머지 마을과 성산읍 가까운 지역에서는 제2공항을 적극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다. 제2공항으로 인한 땅값 상승의 최대 수혜 지역이기 때문이다.

구좌읍 세화리의 한 주민은 “내가 아는 성산읍 주민들 다수가 제2공항을 강하게 지지하고, 신산리 주민들은 결사반대한다. 주민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이 커져 제2의 ‘강정 사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박찬식 충북대 사회학과 외래교수(‘육지사는 제주사름’ 대표)는 “제2공항 추진 과정에서 주민 참여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미국연방항공청(FAA)의 공항건설계획 지침서에도 지역주민 등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최우선 고려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해, 강원보 위원장은 “주민들은 2015년 11월10일 입지 선정 발표를 듣기 전까지 우리 마을이 제2공항 부지로 선정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 못했다”면서 “깜짝쇼를 벌인 데 주민들이 더 분노했다”고 했다.

강 위원장의 반대대책위 쪽은 기존 타당성 조사에서 제2공항 신설안에 147쪽을 할애한 데 비해, 기존 제주공항 확충안에는 단 2쪽을 쓴 점도 강하게 비판한다. 제2공항 추진을 전제로 일을 밀어붙였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비후보지인 정석비행장의 안개 일수를 과장하고, 모난굴·수산동굴·서궁굴·멱사니굴 등 제2공항 부지 근처 동굴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등, 기존 타당성 조사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주민들의 반대와 타당성 조사 부실 의혹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제주 제2공항 입지 선정 타당성 재조사’를 시작하기로 하고, 6월29일 용역업체로 (주)포스코건설 컨소시엄을 최종 선정했다. 성산읍 반대대책위가 참여하는 검토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 추천 전문가들을 포함한 자문회의를 주기적으로 연다는 방침을 밝혔다.

강영진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갈등해결학)는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제2공항 추진보다 제주도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 방문객 수가 얼마인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합의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제주도·의회와 비정부기구(NGO), 학계, 관광업계, 일반 도민이 참여하는 ‘제주도의 미래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도민회의’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제주=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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