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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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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이 도시를 죽인다

숙박촌으로 변한 유럽의 도시들…

관광의 권리와 주민의 정주권 충돌로 안티투어리즘 확산
등록 2018-07-10 16:56 수정 2020-05-03 04:28
2017년 10월 이탈리아 베네치아 항구에 도시의 스카이라인보다 더 높고 우람한 크루즈 선박이 정박했다. 신주희 이매진피스 공동책임자 제공

2017년 10월 이탈리아 베네치아 항구에 도시의 스카이라인보다 더 높고 우람한 크루즈 선박이 정박했다. 신주희 이매진피스 공동책임자 제공

지난해 7월, 시민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도심에 복면 시위대가 등장했다.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앞에 세워둔 관광버스를 공격해 타이어에 구멍을 냈다. 앞 유리창엔 스프레이로 서늘한 메시지를 남겼다. “관광이 이웃을 죽인다!” 인구 160만 명의 바르셀로나에 2017년에만 관광객 3천만 명이 왔다.

며칠 뒤 스페인의 유명한 휴양지인 마요르카섬에서도 격렬한 안티투어리즘(반관광) 시위가 벌어졌다. 마요르카섬은 제주도가 개발 모델로 삼는 곳이다. 시위대는 5성급 호텔의 유리창을 깨는가 하면, 유명 레스토랑을 급습해 손님들에게 색종이와 전단을 뿌리며 외쳤다. “마요르카를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비참한 삶으로 몰아가는 대량관광에 반대한다.”

저가항공과 공유숙박의 역습
2017년 9월 스페인의 마요르카섬 곳곳에서 ‘관광이 도시를 죽인다’는 스티커(위쪽)와 “도시는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관광객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스티커가 보였다. 신주희 이매진피스 공동책임자 제공

2017년 9월 스페인의 마요르카섬 곳곳에서 ‘관광이 도시를 죽인다’는 스티커(위쪽)와 “도시는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관광객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스티커가 보였다. 신주희 이매진피스 공동책임자 제공

격렬한 시위가 지나간 2017년 9월 마요르카를 방문했다. ‘관광이 도시를 죽인다’(Tourism Kills the City)라고 쓰인 스티커가 거리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마요르카대학에서 관광 문제를 연구하는 이반을 만나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유럽 도시에서 테러가 빈발하면서 마요르카가 안전한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숙박업의 급속한 확산이 주거지를 관광지로 만들었고 소음과 쓰레기, 오르는 집값 등이 사람들의 인내심에 불을 질렀다. 관광의 권리와 주민의 정주권이 정면 충돌했다. 관광은 지역주민에게 수입을 안겨주고 일자리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더는 살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관광이 도시를 죽인다’는 관광 때문에 쫓겨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이 살아갈 권리를 지키려는 자발적 운동이다.” 이반도 ‘관광이 도시를 죽인다’ 운동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저가항공과 공유숙박 플랫폼(에어비앤비 등)의 등장과 맞물려 지난 10년 사이 관광산업은 폭발적 성장을 했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2017년 세계 관광 인구는 13억 명을 넘어섰다. 1950년의 40배가 넘는다. 특히 도시 관광의 성장세가 놀랍다. 세계관광모니터(WTM)는 2014년 도시를 찾은 관광객이 2009년보다 82% 급증했다고 보고했다. 도시 여행자들은 이전의 전형적인 관광객과는 다른 여행 방식을 추구한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에어비앤비의 홍보 문구처럼,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길 원한다. 문제는 그 새로운 일상을 위해 도착한 여행지가 무인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도시, 누군가의 마을, 누군가의 골목, 누군가의 삶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이다.

관광객은 그저 숫자가 아니다. 거대하고 무서운 속도로 몰려오는 관광객들은 집과 마을과 삶을 뿌리째 흔들어놓는다. 여러 유럽 도시에서 집을 잃은 ‘관광난민’을 양산하고, 일본 교토에서 거리를 더럽히는 ‘관광오염’ 시비를 부르고, 남유럽의 도시에서 격한 안티투어리즘 시위를 촉발한다. 이 문제를 관통하는 공통의 키워드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관광)이다. 2012년 관광으로 고통받는 유럽의 도시문제를 진단하면서 해럴드 굿윈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처음 쓰기 시작한 오버투어리즘이란 단어는 불과 수년 사이 전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보통명사가 됐다. 오버투어리즘은 “관광객이 도시를 점령하고 도시민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으로도 정의된다.

바르셀로나, 호텔 신축 금지

오버투어리즘의 진통을 겪는 유럽 도시 중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가 먼저 해법 찾기에 나섰다. 2014년 선거에서 “민주주의 회복으로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된 지금의 아다 콜라우 시장은 2014년 취임 즉시 호텔 신축 허가를 전면 중단하는 조처를 내렸다. 관광지가 되면서 원주민이 밀려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Touristify와 Gentrification의 합성어)의 주범으로 에어비앤비를 지목하고 강력한 단속에 나섰다. 1년에 90일 이상 방을 빌려주지 못하는 공유숙박이 이를 어기고 불법 광고할 경우 3만유로의 높은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하루 30만 명이 찾는 유럽 최대 재래시장인 보케리아 시장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간대에 단체관광객의 입장을 제한했다.

주민, 공무원, 여행사, 정치권, 학계, 시민단체 대표 등 60명으로 구성된 바르셀로나 관광위원회도 발족했다. 위원회는 주민이 행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관광정책을 논의한다. 아구스티 콜럼 위원장은 2017년 5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오버투어리즘 관련 국제포럼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관광을 통제하지 못할 때 도시는 관광에 통제당하고 만다. 지금까지의 관광정책은 땅과 건물을 가진 사람이나 관광산업 투자자들의 이익을 대변했고, 그로 인해 시민들의 정주권이 희생됐다. 이런 관광 개발 패러다임은 한계에 부닥쳤다. 한 도시의 관광정책은 투자자의 돈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바르셀로나는 거대 관광자본이 아니라 시민의 편에 서기를 선택했다.”

베네치아 “관광객 싫다” 해상 시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도 오버투어리즘의 고통을 겪는 대표적인 도시다. 1953년 17만5천 명에서 5만4천 명으로 극심한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저녁이면 사람이 사라지는 공동화현상이 도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채소가게, 문구점, 유치원 등이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게로 변해 시민들의 삶이 뿌리째 뽑혀나가고 있다. 참다 못한 주민들이 거대한 크루즈가 입항하는 바닷길로 나가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펼침막을 들고 시위도 펼쳤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와 달리 베네치아의 관광정책은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지속가능한 관광 콘퍼런스’에서 만난 베네치아 관광청의 사무국장은 “(베네치아가 겪는 오버투어리즘 상황에 대해)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극렬 시민들의 반응일 뿐”이라고 가볍게 치부했다.

이에 맞서 베네치아의 시민사회는 2017년 이후 관광개발로 주거를 잃은 ‘관광난민’들을 위한 국제시민법정을 열고 있다. 국제시민법정에 들어서면 피고석에 ‘관광개발’이라 쓰인 팻말이 놓여 있다. 베네치아 주거권연합의 줄리아노 대표는 관광난민을 위한 국제시민법정을 베네치아에서 연 이유를 설명했다.

“베네치아 정부는 여전히 관광진흥책에 머물러 있다. 우리 삶을 중심에 두고 관광 문제의 해결책을 함께 찾아가지 않으면, 결국 관광을 위해 삶과 도시를 포기하게 된다. 우리의 소중한 고향이고 삶의 터전인 베네치아를 관광에 잃고 싶지 않다. 관광이 삶의 일부가 돼야지, 삶이 관광의 일부가 돼서는 안 된다.”

멈춰 서서 지도를 펼 때

오버투어리즘이 삶을 침범할 때,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지 아직 누구도 어떤 도시도 해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조금씩 이정표는 그려가는 듯하다.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만난 후안 카를로스 관광청 사무국장과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주민의 고통은) 그리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다. 독일 사람, 유럽 사람들이 여름 휴양지로 쓰기 위해 이 지역의 오래된 집과 아파트를 사들인다. 이제는 에어비앤비 사업을 하려고 집을 여러 채 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곳은 마을이 아니라 숙박촌이 돼가고 있다. 부자 나라 사람들이 여기서 집과 땅을 사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지속할 수 없다는 것도 마요르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래서 우린 멈추기로 결정했다. 마요르카는 1년간 모든 신규 호텔 허가를 중단하고 에어비앤비도 90일 이상 숙소를 빌려주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한다. 길을 찾아야 하니까. 어디로 갈지 모른다면, 멈춰 서서 지도를 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매진피스’는 2016년 독일 베를린부터 201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까지 과잉관광의 현장을 직접 살펴보고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을 했다. 길게 이어진 여정에서 “답이 없다면 질문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카를로스 사무국장의 간명한 답이 소중한 마침표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대안이 뭔가? 대안도 없이 시위하고 소리만 치면 어쩌자는 건가?” 소중한 것들이 망가지고 있다고, 이대로 가면 관광자본이 우리 마을을 삼켜버릴지 모른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종종 한국 정부 관계자나 기자들은 힐난하듯 되묻는다. 이럴 때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 사람이라면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질문의 시간이 없으면 대안의 시간도 오지 않지요.”

임영신 이매진피스 공동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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