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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기본합의서부터 국회 동의 거치자”

한국전쟁 종식을 위한 법·제도적 이행 방안은…

국제법 권위자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명예교수 인터뷰
등록 2018-06-19 16:49 수정 2020-05-03 04:28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전쟁을 끝내기는 쉽지 않다. 65년 세월 요지부동인 정전체제와 결별하려면 숱한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더구나 한반도 냉전체제는 남과 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로 가는 큰길을 열기 위해선 어떤 법·제도적 이행 방안이 필요할까? 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법적 기반 연구에 천착해온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에게 물었다. 인터뷰는 6월14일 오후 서울 이문동 이 교수의 개인 연구실에서 1시간 남짓 진행됐다.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렸다. 이전과 전혀 다른 상황을 맞고 있는데.

지난해와 견줘 올해의 변화는 눈부시다. 4·27 판문점선언에도 나와 있지만, 전쟁의 종결과 새로운 평화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이전엔 남한 혼자만 뛰었다면, 판문점선언은 남북이 똑같이 주도했다. 남쪽이 평창겨울올림픽으로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자, 북도 기다렸다는 듯 주도적으로 동참했다. 민족문제를 남북이 함께 자주적으로 주도하다보니 힘이 붙게 됐다. 남과 북이 당사자로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접근법이 전혀 다르다.

국제법적으로 전쟁을 끝내는 방법6·12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전쟁에 대해 “진작 끝났어야 했다. 곧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법적으로 전쟁을 끝내는 방식이 뭔가.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한 1919년 6월 베르사유조약 이후 국제법적으로 전쟁을 끝내려면 교전상태를 정상상태, 평화상태로 바꿔야 한다. 적대관계 종식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게 불가침선언이다. 이어 전쟁이 끝났음을 종전선언으로 확인하고, 종전선언을 포함해 교전 당사자 간 외교관계 수립과 전쟁 중 발생했던 문제의 전후 처리까지 매듭지어야 국제법적으로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난다.

한국전쟁 종식 과정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다. 분단국가란 특수성 때문에 이런 조약의 형태를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한국전쟁에선 전승국도, 패전국도 없다. 유엔군의 성격도 평화유지군으로 봐야 할지, 다국적군으로 봐야 할지 애매하다. 따라서 한반도에 전통적인 국제법적 조약의 의미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 법적 측면과 군사적 측면, 국제정치적 측면을 두루 살펴야 한다. 이를테면 군사분계선을 확정해 영토 문제를 확정지을 수 있을까?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삼을 수 있을까? 안팎의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비무장지대는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대단히 복잡한 문제다. 판문점선언을 보면, 남북관계 발전과 군사적 신뢰 구축, 평화체제 구축 이 세 가지가 순서대로 나온다. 대단히 잘 짜였다. 분단국가에선 특히 군사적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 남북 장성급회담을 빠르게 연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평화는 종이 쪽지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 공동성명으로 적대관계 청산이 가시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판문점선언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강조했는데, 이는 우리끼리 적대관계를 청산하자는 얘기다. 군사적 신뢰 구축은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 중요하다. 평화체제 문제에 비핵화도 포함됐고, 구체적인 내용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다루기로 했다. 북-미 정상회담에선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 종식이 제일 먼저 등장했다.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은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를 끝내자는 뜻이다. 교전 당사자 모두가 적대관계 종식 의지를 이미 밝힌 게다.

종전 절차 잘 담아낸 판문점선언
1991년 12월13일 남북관계의 경전이라 할 남북기본합의서에 최종 합의한 뒤, 북쪽 연형묵 정무원 총리(앞줄 왼쪽)와 남쪽 정원식 국무총리가 손을 맞잡아 올리며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1991년 12월13일 남북관계의 경전이라 할 남북기본합의서에 최종 합의한 뒤, 북쪽 연형묵 정무원 총리(앞줄 왼쪽)와 남쪽 정원식 국무총리가 손을 맞잡아 올리며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평화체제는 어떤 방식으로 구축될 수 있나.

1991년 12월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 제5조에는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고 돼 있다. 일종의 ‘현상유지적 평화체제’ 접근법이라고 본다. 정전체제를 유지·준수하자는 게 아니라, 평화체제로 바꾸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5조를 일종의 ‘모법’으로 보고, 공고한 평화상태로 가기 위한 ‘하위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법적으로 전쟁을 종결하는 ‘평화문서’와 비무장지대 관리 등 군사적 문제까지 포함하는 ‘평화보장문서’가 마련돼야 한다. 전쟁이 끝난 뒤 남북 평화를 관리하는 역할을 할 국제정치적 기구도 필요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평화체제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전쟁이 끝나면 군사분계선은 일종의 ‘불가침 경계선’으로 대체해야 한다. 군사정전위원회는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로 바뀌어야 한다. 여기에 정전체제를 유지해온 중립국감시위원회도 성격이 바뀌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한반도 평화관리 국제위원회’ 신설을 제안해왔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이를 집행·관리·감독하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관리할 국제조약까지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는 동북아 다자안보 체제의 출발이 될 수 있다.

평화체제 뒷받침할 ‘하위법’ 필요평화관리위원회는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

참여국이 적을수록 좋다. 평화를 보장하는 문제와 자주성이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과 미국·중국이 참여하는 ‘2+2’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남북, 북-미가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불가침을 선언하고, 이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을 포괄해 ‘평화레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시상태가 아닌 평화상태로 확약하는 법적 측면과 비무장지대 무장해제 등 군사적 측면, 평화를 관리할 국제정치적 측면을 아우르는 셈이다.

유엔사령부와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

대단히 민감한 문제다. 주한미군의 대북 억지 기능이 사라지면, 당장 나라 안팎에서 철수 문제가 거론될 게다. 유엔사령부 해체 문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과 관련해 복잡하다. 유엔 안보리는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생 직후 관련 결의 3개를 통과시켰다. 첫 번째 결의는 북한군 후퇴를 촉구하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 결의는 남한을 원조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나라가 원조에 참여했고, 16개국이 군대를 파견했다. 이들 군대의 지휘권 문제가 생기자 이를 미국이 지명하는 사령관에게 맡긴다는 내용이 세 번째 결의였다. 이에 따라 일본 도쿄에 있던 극동군사령관(맥아더)이 유엔군 지휘를 맡고, 유엔사령부도 도쿄에 설치됐다.

전쟁이 끝난 1954년 유엔사가 한국으로 이전했지만, 일본 오키나와에 후방 지원부대 성격인 유엔사 지부가 여전히 있다. 유엔사 위상 문제는 일본과도 관련됐다는 얘기다. 유엔사 이전 즈음에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면서 주한미군이 주둔하게 됐다. 이어 한-미 연합사령부가 만들어졌다. 한 사람이 모자를 3개나 쓰게 된 게다. 군의 작전통제권 문제도 얽혀 있다. 한국전쟁 때 이승만 정부가 작전통제권을 넘겨준 것이 유엔사령관인지, 미군 사령관인지 애매하다. 주한미군 주둔은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것이어서, 정전체제가 끝나더라도 자동적으로 철수하는 것이 아니란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을 맞아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는데.

평화협정은 전후 처리 문제까지 다 들어가야 한다. 짧은 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종전선언은 부지런히 움직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 태평양전쟁을 공식 마감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피해국인 한국과 대만, 그리고 전승국인 소련이 빠졌다. 소련이 빠진 것은 사할린 영유권 문제 때문이었다. 강화조약 체결 뒤에도 소련과 일본 사이엔 전시상태가 유지됐다는 뜻이다. 결국 1956년 두 나라가 평화공동선언으로 전쟁이 끝났음을 공식 선언했다. 이 방식을 차용해 한국전쟁 종식을 알리는 정치적 선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향후 체결될 평화협정에 전쟁이 끝났다는 점을 명문화할 필요는 있다.

국내법적 제도화 절실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에 조언할 것이 있다면.

판문점선언으로 남북 정상이 전쟁을 종결하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기로 했다. 두 정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행과 실천을 강조했다. 그만큼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다. 절차와 접근 방법은 물론 내용도 옳다. 판문점선언이 철저히 이행되려면 무엇보다 국내법적 제도화가 절실하다. 조약 체결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의 서명만으로도 국제법적 효력이 발휘된다. 그 내용을 국내에 적용하려면 국무회의 심의를 받아 관보에 게재하면 된다. 일종의 ‘대통령령’에 해당한다.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 폐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남북 간 합의사항이 국내법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비준 동의 절차를 거치는 게 필요하다. 비준 동의 절차를 거치면 법률이 된다. 법률은 쉽게 바꿀 수 없다. 더구나 기존 법령과 충돌하면 신법이 우선한다. 과거의 낡은 법률을 사실상 폐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판문점선언에서 남북은 과거의 합의사항을 모두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정부에 남북기본합의서 국회 비준 동의 절차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북한은 이미 남북기본합의서 비준 동의 절차를 마쳤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관련 영상] 한반도 냉전해체 프로젝트 ‘이구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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