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끄난 루암삽의 친구이자 동지인 시라윗 세리티왓이 5월22일 오전 타이 방콕 탐마삿대학 인근에서 열린 쁘라윳 짠오차 총리 쿠데타 4주년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우리는 총선거를 원한다.”
차노끄난 루암삽의 친구이자 동지인 시라윗 세리티왓(27)이 외치자 집회에 참가한 300여 명의 군중도 그를 따라 외쳤다.
지난 5월22일, 타이 방콕의 탐마삿대학교. 차노끄난은 떠났지만 그녀가 동지들과 함께 조직하고 참가했던 민주화 집회는 올해도 어김없이 열렸다. 이날은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시위대가 요구한 사항은 크게 올해 안 총선거 실시, 총선 전 군부독재 퇴진, 민중에게 권력 이양 등 세 가지였다.
“우리는 총선거를 원한다”타이 방콕 탐마삿대학 인근에서 열린 쁘라윳 총리 쿠데타 4주년 집회에서 경찰과 시민이 충돌했다.
하루 전인 5월21일 오후부터 탐마삿대학 교정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학교로 들어가는 모든 교문을 경찰이 봉쇄하고 드나드는 차량의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타이의 정치인·시민단체와 학생운동가 등으로 구성된 ‘총선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날 저녁 7시부터 탐마삿대학 축구장에서 집회를 시작해 밤샘농성을 하고, 이튿날 오전 10시 정부청사로 행진할 예정이었다.
경찰은 이를 집요하게 방해했다. 검문검색으로 집회 참가자로 파악되면 학교에 못 들어가게 막았다. 치앙마이, 람푼 등 타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학교로 발을 들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집회 시작 예정 시각이던 저녁 7시까지 총선을 원하는 사람들은 집회 진행 여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탐마삿대학교는 타이 민주주의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1976년 10월6일 새벽, 경찰과 군인은 학생들이 왕실을 모독했다는 핑계로 학교의 모든 출구를 봉쇄하고 총기를 난사하며 진입해 학살을 자행했다. 46명이 죽고 167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3천 명의 학생이 체포됐다. 비공식적으로는 사망자가 100명을 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군경은 투항 의사를 보인 학생들에게도 총을 쏘았다. 일부 경찰은 여학생들을 성폭행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학살은 정오께 폭우가 쏟아지면서 중단됐다. 한 활동가는 “탐마삿대학교에서 큰 집회가 열리는 것은 1976년 군경의 학살 사건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타이의 집회시위법은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다. 하지만 우리가 탐마삿대학교에서 허락 없이 집회를 하면 감시는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막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21일 저녁 8시,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총선을 원하는 사람들은 간이천막을 치고 밤샘농성에 들어갔다. 수백 명의 참가자 중 대학생은 20명 남짓이었다. 차노끄난이 졸업한 쭐랄롱꼰왕립대학 학생회 소속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대학교 기말고사 기간이어서 생각보다 학생이 많이 모이지 않아 아쉽다. 차노끄난 선배가 한국에 정치 망명을 선택하는 것은 타이에 정의가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우리는 선배가 타이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타이 대사관 쪽이 기사를 읽고 취재원이 누군지 파악할 수도 있다고 하자 익명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왕실모독죄로 기소된 차노끄난이 이미 타이를 떠났지만 신분을 밝히고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보였다.
농성 참가자 중 개인 자격으로 온 일반 시민이 많았다. 대부분 고령층이었다. 공무원으로 은퇴한 뒤 고무농장을 하고 있다고 밝힌 주따마스(62)는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 군부독재 아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타이 경제 상태가 역사상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군부독재가 물러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누따야(59)는 “총선거를 약속한 지 4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안 한다. 나는 민주주의와 좀더 나은 경제를 원하지만 현재의 군부독재로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저소득층에 가던 복지수당도 계속 줄어들고, 이 돈이 자본가에 집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탐마삿대학교에 등장한 ‘차벽’2017년 광주 인권상 수상자인 짜뚜빳 분빳따라락사의 아버지인 위분 분빳따라락사.
농성 현장에서는 지난해 5·18 광주인권상 수상자이자, 차노끄난과 같은 혐의로 지난해 기소돼 실형을 살고 있는 짜뚜빳 분빳따라락사의 아버지 위분 분빳따라락사를 만날 수 있었다. 위분은 타이의 빈민을 위해 무료 변호를 하는 등 타이의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권변호사다. 기자가 위분 변호사에게 “차노끄난이 혼자 떠나와서 미안하다”고 했다고 전하자 그는 “차노끄난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아들은 차노끄난의 소식을 듣고 밝게 웃으면서 ‘감옥에서 나가면 그녀를 만나러 광주로 가겠다’고 말했다. 짜뚜빳은 정의를 원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기 때문에 그곳을 집처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위분 변호사는 지난해 5월 광주에 올 수 없는 아들을 대신해 5·18 광주인권상을 대신 받으러 왔고 강의까지 했다. 그는 “한국 국민이 촛불로 정권을 바꾸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한국도 안주하지 말고 정부를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독재는 반복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러분은 집회시위법을 위반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나온 경찰의 지시를 따라주십시오.”
22일 오전 11시, 방콕 경찰이 확성기를 입에 대고 시위대의 해산을 요구했다. 타이에서는 5명 넘는 사람이 정치적 견해를 표시하는 집회를 열면 집시법 위반이다. 이날은 시위대 300명을 막기 위해 타이 경찰 3200명이 탐마삿대학 인근 도로를 봉쇄하고 ‘차벽’을 쌓았다. 일부 시위대는 흥분해 경찰과 몸싸움도 했다. 결국 시위대의 정부청사 행진 계획은 무산됐다. 흩어진 일부 시위대가 청사 근처까지 갔으나 역시 경찰에 저지당했다.
차노끄난 친구 8명 체포 5명 기소이날 군경은 차노끄난의 친구인 시라윗 등 8명을 체포했고 5명을 기소했다. 수감됐다 23일 풀려난 시라윗은 “현 정부가 선거를 할 때까지 집회를 계속하겠다. 타이는 한국의 민주주의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타이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한국이 관심과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
방콕(타이)=글·사진 이재호 기자 ph@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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