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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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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억짜리 아파트 50만원에 살다

상경한 <한겨레21> 교육연수생의 ‘현대판 고시원’ 셰어하우스 6주 체류기…

낯선 사람 7명과 불편한 동거, 물건 공유하지 않고 대화는 ‘카톡방’에서
등록 2017-09-19 16:50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8ABD">소설가 박민규가 월간 에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게재한 것은 2004년 6월이었다. 박민규가 추억하는 시대는 1991년이다. 그는 소설에서 “1991년은 일용적 노무자들이나 유흥업소 종업원들이 갓 고시원을 숙소로 쓰기 시작한 무렵이자, 그런 고시원에서 아직도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이 남아 있던 마지막 시기였다”고 말했다. 1cm 베니어합판을 사이에 두고 칸칸마다 빼곡히 남자나 여자가 들어찬 이 공간을 박민규는 ‘세포막’ 같다고 평했다.
고시원은 이후 마땅한 거처를 찾기 힘든 가난한 청년들과 도시 빈민의 저렴한 주거지이자, 이따금 터지는 화재 사고로 크고 작은 인명 피해를 일으키는 안전 사각지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국민안전처 자료를 보면, 2006년만 해도 4211곳이던 전국 고시원 수는 2013년 1만1232곳으로 급증했다. 이후 증가세는 한풀 꺾여 2017년 현재 고시원 수는 1만1800곳이다.
고시원을 벗어난 청년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들이 모여든 곳은 래미안, 푸르지오, 자이 등 세련된 아파트 이름이 붙은 도심 셰어하우스였다. 그 공간에서 6주를 보낸 교육연수생의 체험담을 싣는다. 청년 주거를 둘러싼 여러 고민도 함께 담았다. _편집자</font>
평일 오후 ‘셰어하우스’의 현관 모습. 외출한 이들이 귀가한 저녁이면 현관은 신발로 더욱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다.

평일 오후 ‘셰어하우스’의 현관 모습. 외출한 이들이 귀가한 저녁이면 현관은 신발로 더욱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다.

나는 대구에 사는 취업준비생이다. 취업에는 인턴이 필수고 그러려면 서울로 가야 했다. 교육연수생에 지원했고 서류·면접을 거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마지막 질문은 “어디서 지낼 건가요”였고 난 생각 없이 “친구 집”이라고 답했다. 그걸 왜 물었을까. 사실 친척도 친구도 없었다. 나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단기계약이 가능한 집을 찾았다. 보증금은 50만원을 넘으면 안 됐다. 회사와 가깝고(서울 도심이어야 했다), 여성 전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셰어하우스’였다(제1002호 특집 <font color="#C21A1A">‘친구 이상, 가족 미만과 집을 공유하다’ </font>참조). 공동생활이라면 자신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7월23일: 입주</font></font>

신발이 현관에 가득했다. 미리 집 보러 서울에 올라갈 재정적 여유가 없었다. 관리인은 “11명 정원인데 지금 7명밖에 살지 않는다. 대부분 직장인이라 낮에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가장 먼저 긴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따라 들어가니 널찍한 부엌과 거실이 펼쳐졌다. 거실 옆에 자리한 안방은 4인실이다. 2층 침대 2개와 욕실이 있다. 현관 바로 앞 작은 방 2개는 2인실이다. 2인실에는 침대 2개가 있다. 현관 오른쪽 끝에 위치한 방은 3인실로, 싱글 침대와 2층 침대가 하나씩 있다. 2인실이 4인실보다 비싸고 2층 침대의 1층이 2층보다 비싸다. 조금 욕심내서 2인실을 골랐다. 문틈으로 엿본 4인실엔 옷과 수건이 옷걸이에 걸려 2층 침대 나무 기둥 사이마다 매달려 있고, 발 디딜 틈 없는 바닥과 옷 무더기가 놓인 침대가 보였다. ‘2인실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늦었지만 룸메이트가 들어오지 않았다. 룸메이트의 책상에는 경제학 책 두 권이 놓여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7월25일: 룸메이트는 보험관리사</font></font>

이틀 동안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룸메이트가 환영까진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통성명 정도는 할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참다 못해 룸메이트 민주(23·가명)씨에게 말을 걸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민주씨는 보험관리사다. 책상에 놓인 전공책 때문에 대학생인 줄 알았다고 하자 민주씨가 말했다. “CM이에요, 언니. 자산관리사라고 불러요. 아직 졸업을 안 해서 토요일에는 학교 가야 해요.” 올해 초 취직한 민주씨는 “빨리 정규직이 되고 싶다”고 했다. 교육 업무를 하는 CM으로 보험사에 취직했지만 인턴 기간에는 보험상품을 팔아야 한다. 이 집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뭐하는지 물었다. 모르는 듯했다.

“8명이나 살던데.”

“그렇게나요?

민주씨는 3개월 살았지만 친한 사람은 없다. 그는 이곳에 “머문다”고 했다. 그러니 3개월을 함께 산 옆방 언니와 서먹해도 괜찮다. 필요한 것은 (전망 좋은) 서울 신축 아파트 구석의 내 공간일 뿐. 민주씨는 가방을 뒤져 담배를 꺼내 들었다. 민주씨는 이후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7월26일: 모든 대화는 카톡방에서</font></font>

출퇴근을 시작했다. 공용공간인 거실과 부엌은 회사보다 불편했다. 문소리가 날 때마다 몸이 긴장했다. 이 집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다 돼가는데, 여전히 민주씨를 제외하고 누가 사는지 몰랐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한나절을 부엌 테이블에 앉아 있기로 했다. 하지만 잠깐의 목례만 허용할 뿐 이들에게 말을 붙이긴 어려웠다. 공동생활인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입주 이틀 만에 초대된 카톡방은 두 개. 하나는 관리인이 포함된 방, 또 하나는 입주자만 모인 방이었다. 입주 때 2만원을 냈다. 쌀, 세제, 수세미, 물티슈, 변기압축기(뚫어뻥), 휴지, 쓰레기봉투 등을 함께 쓰기 때문이다.

사실 대화가 없는 건 아니다. 대화는 거실이 아닌 카톡방에서 이뤄졌다. 카톡방에서 오가는 대화는 ‘빨래 다 돌아갔으니 빼주세요’ ‘거실에 물건 치워주세요’ 등 누군가를 향한 지적부터 ‘A팀 분리수거 완료했습니다^^’ 등 공동생활에 필요한 공지까지 내용을 불문한다. 마치 대학에서 조별 과제를 하기 싫은 조원들이 카톡을 늦게 확인하듯 대답은 주로 하는 사람만 했다. 관리인은 일주일에 한두 번 부정기적으로 카톡방을 통해 방문예정일을 공지한다. 공지한 날짜와 시간에는 입주 희망자들이 관리인과 함께 집을 둘러보기 위해 방문한다. 그들이 나가면 집은 다시 고요해진다.

관리인과 손님이 방문할 때 문을 열어주는 것은 주로 낮 시간에 집에 머무는 현지(가명)씨다. 그는 미대 대학원생이다. 집에서는 레이스가 달린 투피스 잠옷을 입고, 샌들 구두를 신고 생활한다. 계약직 대학 교직원을 그만두고 미술대학원에 진학했다. 현지씨는 “결혼을 예정해두고 집을 구하기 애매해서 잠깐 들어온 게 이렇게 길어졌다. 3개월씩 계약을 연장하며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나이가 있으니 다시 원룸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대학원은 이제 1학기를 마쳤다. 현지씨는 지난해 4월 처음 입주한 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 집에서 벌써 1년 넘게 머물고 있다. 카톡방에 공지와 규칙을 올리는 것도, 신입을 초대하는 것도 현지씨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8월2일: 욕실을 둘러싼 눈치게임</font></font>[%%IMAGE3%%]

샤워하고 나왔는데 낯선 이가 나를 불렀다. 열흘이 지났지만 이름을 알지 못했다. “머리 감고 나면 수챗구멍의 머리카락은 그때그때 빼셔야 해요.” 잔뜩 짜증 난 얼굴이었다. 몰랐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니 알 길이 없었다. 카톡방 공지에 없는 규칙이었다. 생각해보면, 샤워 뒤 머리카락을 치우는 건 상식일 수도 있겠다. 셰어하우스이니 모두가 분담해야 하는 공동 작업은 필수였다. 분리배출,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욕실 청소, 거실 청소 등 여러 집안일을 담당하는 순서를 정했다.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려면 자기 순번을 잊지 않아야 한다.

욕실에서 머리카락을 빼다 올려보니 욕실용품이 눈에 들어온다. 5명의 것이다. 1번 방의 3명은 안방 욕실을 쓴다. 각자의 용품은 입주 순서대로 욕조와 가까운 선반에 위치한다. 물론 물건은 공유하지 않는다. 치약도 비누도 개인 용품이다. 자신의 욕실용품을 방에 보관하는 사람도 있다. 매번 욕실에 자신의 수건을 가지고 들어간다. 출근을 위해 아침 8∼9시에 씻는 사람이 총 3명이었다. 앞서 들어간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초조해졌다.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문을 두드려 재촉하는 일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욕실 사용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4번 방 사람이 30분 먼저 씻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생활에 꼭 필요한 소소한 규칙은 매번 새로 생기고 조율됐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8월6일: 누군가 있었다</font></font>

주말에는 유독 집에 사람이 없다. 각자의 실내용 슬리퍼가 현관에 놓이는 일이 많았다. 주인의 부재를 뜻했다. 거실에서 책을 읽었다. 2시간 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거실로 노트북을 가져나와 드라마를 재생했다. 이어폰을 꼽고 이불을 덮어쓴 채 킥킥대지 않아도 됐다. 외부 스피커를 켜고 크게 웃었다. 전화 통화도 하고 스트레칭도 했다. 발가락도 긁었다. 드라마 한 편을 다 보고 이어서 영화를 보려는 찰나, 4인실에서 ‘사람’이 나와 냉장고 문을 세게 닫았다. 얼른 짐을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8월16일: 포기할 수 없는 것과 놓아야 하는 것</font></font>

이제 겨우 패턴을 파악했다. 사람들의 퇴근 시간은 대부분 저녁 7∼10시였다. 물론 시간은 더 빨라지기도, 늦어지기도 한다. 자정 넘어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저녁 8시쯤 퇴근하고 부엌에 들어서자 어두운 조명 아래 누군가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1번 방 선주(가명)씨였다. 24살. 대화를 하면서도 태블릿PC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광주에서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초 서울시 공무원이 됐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러니 실수할 일도 없다. 1번 방 욕실 사용 때문에 충돌이 가끔 있지만 “지금 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8월18일: 유령이 산다</font></font>

동네 빵집과 약국, 큰 마트의 위치를 파악했다. 물어볼 사람이 마땅치 않아 동네를 한 바퀴 산책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뒤이어 탄 여자가 이미 내가 누른 층 버튼을 확인한 뒤 다시 휴대전화로 눈길을 돌렸다. 여자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 비밀번호를 눌렀다. 내가 살며시 뒤에 서자 여자가 짧게 목례를 했다. 4주 만에 처음 얼굴을 본 하나(가명)라는 이름의 3번 방 동거인이었다. 하나씨는 2인실 방을 혼자 쓴다.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아 교류가 없(는 것으로 안)다.

냉장고 칸을 보면 생활 패턴을 알 수 있다. 하나씨 칸에는 유명 커피 브랜드의 샌드위치, 고급 초콜릿, 저지방 두유, 바나나, 편의점 빵이 있다. 요리는 하지 않는다. 음식을 해먹는 현지씨의 칸에는 채소와 과일, 김치통 등이 있다. 이 집에 제일 오래 산 현지씨도 하나씨를 잘 모른다. 현지씨는 “(하나씨의) 얼굴을 떠올리려 해도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마주친 적이 없는 건 아닌데 서로 신경을 안 써서 그런가보다”라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8월20일: 아로니아 한 알</font></font>

일요일 오후, 늦잠 자고 일어나 부엌에 가보니 1번 방 아영(가명)씨가 유리병에 아로니아와 설탕을 넣고 청을 담그고 있었다. 옆에 앉아 슬쩍 쳐다보니 “아파트 단지 안에 장이 섰길래 아로니아를 사봤다”며 한 알을 입에 넣어주었다. 블루베리처럼 생긴 게 아주 썼다. 내가 인상을 찌뿌리자 아영씨는 막 웃었다. 눈이 쭉 찢어져 인상이 세 보였는데 털털한 성격이었다. 알고 보니 다섯 자매 중 넷째였다. 아영씨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아 셰어하우스를 선택했다. 그는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함께 입주한 사람들과 마음이 잘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 사람이 너무 많다”고 투덜댔다.

“처음 3명이 살 때만 해도 서로 규칙을 잘 지키고 밤마다 남자친구 얘기도 했다. 나가서 따로 스리룸을 구해볼까 생각도 했다. 점차 여러 사람을 거치며 고시원과 다를 바 없는 집이 됐다. 고시원은 1인실이기라도 하지, 여기는 좁은 방에 사람들을 몰아넣는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지금도 만원인데 업체는 사람을 더 받으려 한다. 며칠 내로 3번 방에 사람이 한 명 더 들어온다고 한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8월23일: 공동주거의 흔한 문제들</font></font>[%%IMAGE4%%]

퇴근 뒤 밀린 빨래를 하려고 세탁실에 갔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퇴근한 탓에 이미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문 앞에 세탁바구니를 놨다. 평일 저녁 8∼10시에는 세탁기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조금만 기회를 놓치면 내 순서는 지나간다. 빨래 너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베란다의 좁은 건조대에 작은 틈새도 없이 빽빽하게 빨래가 널려 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살짝 밀고 내 구역을 만드는 게 관건이다.

새벽 3시30분. “욕실에 담배 냄새가 가득한데 설마 누가 담배를 피운 건 아니겠죠?” 카톡 알림이 떴다. 우리 방 민주씨는 이 집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운다. 밤에도 1층으로 내려간다. 절대 집에선 피우지 않지만 옷에 밴 담배 냄새 때문에 자주 경고를 받는다. 이런 저격성 카톡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엔 거실의 담배 냄새를 위층 소행으로 여긴 이가 경비실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평소 교류하지 않으니 오해가 쌓인다. 한번 쌓인 오해로 틀어진 관계는 이 집에선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해소할 필요도 없다.

카톡창에서 경고가 반복되면 퇴장이다. 여름이 오기 전에 다른 셰어하우스에서 퇴출된 사람이 이 집에 들어왔다. 현지씨는 “관리인이 사람을 잘 보지 않고 들인다. 다른 곳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어딜 가든 문제를 만든다. 그때 들어온 사람은 이 집에서도 다른 방에 들어가거나 남의 물건을 만지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이 집에서도 쫓겨났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람이 잘못 들어오면 집안 분위기는 더 안 좋아진다. 현지씨는 “유독 이 업체가 다른 셰어하우스 업체보다 단기로 사람을 받고 검증 없이 사람을 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날이 서 있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9월1일: 작별</font></font>

셰어하우스 생활 40일째. 오전에 조용히 방을 뺐다. 짐을 싸고 있으니 아영씨가 다가왔다. 건넨 것은 아로니아청이다. 끝맛이 썼다. 아무도 나와보지 않았다. 내가 빠진 방에는 곧바로 27살 중국인 유학생이 입주한다.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계속 그곳에 머물 것이다. 아파트 뒤로 또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다. 높이 올라간 아파트 어딘가는 작게 쪼개져 또 누군가를 채울 것이다.

내가 짐을 빼자 같은 방 민주씨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는 “방을 빼고 싶다”며 “계약금은 어떻게 했고, 얼마나 손해 봤느냐”고 물었다. 이곳은 끊임없이 타협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이 집에 머무는 이들은 포기할 수 없는 무엇 때문에 다른 무엇을 포기한다. 쾌적한 환경과 넓은 거실을 위해서는 온전한 개인 공간을, 안전을 위해서는 편한 휴식을 포기한다. 누군가는 소속의 불안정성 때문에 짧은 계약 기간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들은 자신의 조건을 위해 원래대로라면 한 가족을 위해 지어진 아파트에서 낯선 이들과 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 아파트는 시대에 맞게 거듭난 현대판 고시원이자 각자의 욕망이 복잡하게 뒤엉킨 공간이다. 우린 이곳에 머문다는 이유로 ‘서울시 ○○구’로 시작하는 그럴싸한 대기업 건설사의 대단지 아파트를 잠시나마 주소지로 사용할 수 있다. 난 자랑스러운 서울 낙원구 행복동 래미지오의 주민. 정말 그런가? 우린 일단 그렇다고 믿고 머무는 것이다.

<font color="#008ABD">글·사진 </font>김보현 교육연수생

<font color="#A6CA37">서울에서 머문 잠깐의 주거공간</font>


아파트 집주인은?


교육연수생이 된 뒤 서울에 6주간 머물겠다고 결심했을 때 “서울로 유학 간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난 후배가 생각났다. 후배도 서울에 연고가 없었다. 전화로 안부를 묻자 그는 “다시 내려왔다”고 답했다. 후배는 서울에서 6개월을 버텼다.
후배와의 통화에서 ‘셰어하우스’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서울 대학로 근처에서 두 달 정도 비는 원룸을 찾고 있던 내게 한 줄기 빛 같은 얘기였다. 바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뜨는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업체가 보유한 셰어하우스는 30채가 넘지만 6개월 미만은 애초 계약이 불가능했다. 다른 업체에 전화해보니 “3개월 미만은 계약이 안 되는데 해주겠다”고 답했다. 곧바로 계약금을 보냈다.
두 업체는 성격이 다르다. 첫 번째 업체는 자신의 집을 셰어하우스로 리모델링해(혹은 셰어하우스 용도로 집을 지어) 운영하려는 건물주와 입주자를 연결해준다. 업체는 홍보와 관리만을 담당했다. 반면 내가 거주한 두 번째 업체는 직접 아파트 몇 채를 운영한다. 여성 전용, 남성 전용으로 구분한다. 나와 같은 집에 머물며 친해진 현지씨는 “아파트 분양 때부터 세놓을 생각으로 투자자 여럿이 모인 걸로 안다”고 말해줬다.
서울로 올라와 내가 머물 공간의 주소지를 찾아갔다. 예상보다 더 큰 대단지 아파트였다. 마중 나온 관리인은 집주인 대신 계약서를 썼다. 6주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임대소득 신고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서울에 잠깐의 주거공간이 필요한 경우 셰어하우스는 1순위 선택지가 된다. 거주 6주 동안 매주 네댓 명이 집을 보러 왔다. 비용이 저렴하지는 않다. 주거 대책으로 공동주거의 가능성을 내세운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속 교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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