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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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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상, 가족 미만’ 과 집을 공유하다

‘가족 아닌 타인과 주거 공유하는’ 셰어하우스에 살아보니
크고 작은 불편함 있지만 ‘꿈의 집’에서 사람 온기 느끼는 매력 있어
등록 2014-03-13 15:20 수정 2020-05-03 04:27
지난 2월27일 ‘보더리스하우스’ 강남 1호점에 셰어하우스 입주자들이 모였다. 스페인·일본에서 온 외국인과 한국인 10여 명이 어울려 음식을 나눠먹으며 밤늦도록 영어와 일어, 한국어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난 2월27일 ‘보더리스하우스’ 강남 1호점에 셰어하우스 입주자들이 모였다. 스페인·일본에서 온 외국인과 한국인 10여 명이 어울려 음식을 나눠먹으며 밤늦도록 영어와 일어, 한국어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
<font color="#C21A1A">생판 모르는 남이랑 한 지붕 아래 처음 함께 산 것은 1997년 8월이었다. 캐나다 전원주택의 방을 하나 빌려 집주인과 공유했다. 이방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주거 형태였다. 좋은 집에 살면서 월세는 적고 현지인과도 자연스레 교류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전세가 없는, 월세만 있는 나라에서는 아주 익숙한 풍경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셰어하우스’(Share House)가 주목받고 있다. 싱글들이 가족이 아닌 타인과 어울려 언젠가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꿈의 집에 사는 방식이다. 거실·부엌·화장실 등을 몇몇이 공유하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꿈의 집을 임대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 요인도 이런 흐름을 부추긴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전세 대신 월세가 빠르게 확대되는 현상이 몰고 온 변화다.
‘월세 시대’를 맞아 시장은 이처럼 발 빠르게 변화하는데 정부는 뒷북만 친다. 월세 임대 소득에 세금을 새로 물리겠다는 2·26 전·월세 대책이 거센 역풍을 맞고 일주일 만에 번복된 게 대표적이다. 은 월세 시대의 ‘잇 아이템’(It Item)으로 떠오른 셰어하우스를 직접 체험하며 장단점을 따져봤다. 집주인을 위한 땜질 처방으로 변질된 정부의 전·월세 대책도 점검했다. _편집자</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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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맞닿은 벽을 타고 굵고 낮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가 간간이 섞이는 걸 보니 재미난 이야기꽃이 펼쳐졌나보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던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더라.’ 귀가 쫑긋한 채 선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카톡”이라는 소리에 다시 깼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내 휴대전화로 손을 뻗었는데 컴컴하다. 다시 “카톡” 하고 울렸다. 내 휴대전화가 아니다. 맞은편 침대에 누워 있는 룸메이트의 것이다. 그의 “카톡” 소리를 멈출 방법이 나에겐 없다. 그가 깨어나 메시지를 확인할 때까지 30분간 뒤척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인실 60만원, 2인실 40만~50만원</font></font>

지난 2월22일부터 3월1일까지 ‘보더리스하우스’ 강남 1호점에서 살았다. 한국의 셰어하우스(Share House)를 체험하기 위해서다. 셰어하우스는 ‘가족이 아닌 타인과 주거를 공유하는 것’을 뜻한다. ‘혼자 살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고, 더불어 살아도 독립적이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해 최근 싱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초창기라 대부분 임대 전문회사가 집주인에게 집을 빌려 다시 싱글들에게 임대한다. 보더리스하우스도 그렇다. 일본에서 시작됐는데 이름 그대로 여러 나라 사람들이 방을 나눠쓰는 공동주택을 말한다. 2013년 1월 한국지점을 처음 열었고, 15호점까지 빠르게 세를 불렸다. 재일동포인 이성일 대표는 “올해 30호점을 돌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더리스하우스는 외국인과 한국인의 입주자 비율을 정해놓고 운영한다. 지점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외국인이 한두 명씩 있고, 일본 등 아시아인도 절반 정도 된다. 나머지는 한국인이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1년 미만의 단기 거주자다. 한국 사람들은 언어를 익히려고 찾는다. 보더리스하우스의 입주 조건은 20~35살 싱글로 제한돼 있다. 나이 제한을 두는 이유에 대해 이성일 대표는 “문화 교류를 지향하는데 나이 차이가 많으면 제약이 많아서”라고 설명했다. 월세는 1인실이 60만원, 2인실이 40만~50만원 정도. 임대료가 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교통이 편리하고 관리가 잘된 ‘고급형 셰어하우스’인데다 전기요금·난방비 등도 추가로 부담하지 않는다.

강남 1호점에는 스페인·이탈리아·일본 남자 셋과 러시아·한국 여자 넷이 산다. 외국인은 교환학생이고, 한국인은 강남 지역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나 방학을 서울에서 보내는 대학생이었다. 상가주택 4층에 자리한 셰어하우스에는 방 4개가 배치됐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남녀용이 따로 있었다. 아침에 발을 동동 구르거나 밤에 씻느라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거실은 충분히 넓었다. 5인용 소파를 놓고도 휑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20명이 큰 원을 그리며 바닥에 앉아도 너끈했다. 부엌도 좋았다. 주방용품과 그릇 등이 골고루 갖춰져 뚝딱 음식을 챙겨먹을 수 있었다. 이불과 옷가지 몇 개만 챙겨서 이사한 나도 그 부엌에서 야참을 해먹었다. 셰어하우스를 처음 체험한 대학생 황혜원(23)씨의 소감이다. “공용시설도 입주자별로 촘촘히 나눠놓은 게 인상적이다. 신발장, 냉장고, 부엌 찬장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개인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놓았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는 입주자 이름이 붙은 바구니가 놓여 있다. ‘냉장고 속 분실 사건’을 예방하려는 조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가족이 아닌 남자와 사는 불편함 </font></font>

문제는 개인방이었다. 2인1실인데 기대한 것보다 많이 좁았다. 침대 2개와 책상 2개, 작은 옷장이 들어가니까 꽉 찼다. 특히 수납 공간이 적어 짐을 늘어놓으면 순식간에 창고로 변했다.

특히 밤에 괴로웠다. 기사 마감일을 하루 앞둔 2월26일, 읽어야 할 자료가 수북했다. 야근을 마치고 밤 12시쯤 귀가했는데 새벽까지 일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미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운 룸메이트에게 눈치가 보였다. 책상 위 스탠드를 침대 머리맡에 켜놓고 조용히 일했다. 하지만 작은 방을 훤히 비추는 불빛 때문에 룸메이트가 잠들지 못했다. 선잠에 빠졌다가도 금세 깨어났다. 저쪽 침대에서 들리는 숨소리만으로도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읽을 자료를 싸들고 거실로 나왔다. 보일러 온도를 낮춰놓아 썰렁했다.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아 체온을 지켰다. 차가워지는 손끝에는 입김을 불었다. 새벽 3시쯤 일이 끝났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가면 룸메이트가 또 깰 것만 같았다. 아침 6시까지 소파에 누워 나는 새우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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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아닌 남자와 사는 것도 불편했다. 잘 때는 방문을 반드시 잠그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졌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캐나다(1997~2001년)와 벨기에(2010년)에서 셰어하우스를 경험할 때도 그랬다. 당시에는 1인1실인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 방 앞을 오가는 인기척만 나도 소스라쳐서 깨어났다. 잠잘 때 업어가도 모르도록 깊은 잠을 자는 것은 실현할 수 없는 꿈이 돼버렸다.

크고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셰어 라이프를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같은 가격으로 좋은 집에 살 수 있어서다. 일반적으로 집을 임대할 때는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야근이 많아서 회사와 가까운 곳을 선택하면 집은 좁아진다. 주말에 넓고 환한 거실에서 편히 쉬고 싶다면 통근 시간이 꽤 길어진다. 셰어 라이프를 선택하면 이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월세 60만원만 내고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15억원짜리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 언젠가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꿈의 집으로 원한다면 다음달에 이사갈 수 있다는 얘기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장점 </font></font>

우주가 지향하는 셰어하우스가 그렇다. 소셜벤처기업 ‘피제이티 옥’(PJT OK)이 만드는 우주는 각 지점마다 주제가 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1호점은 ‘창업가를 꿈꾸는 집’이다. 중구 2호점은 ‘미술가를 꿈꾸는 집’, 돈의동 3호점은 ‘사회 초년생,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집’, 옥인동 4호점은 ‘슬로 라이프를 꿈꾸는 집’이다. 창조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홍대 5호점,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은 미아동 6호점,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농동 7호점에 모인다. 마포구 8호점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집’이라는 테마로 거실 한쪽 벽을 모두 책꽂이로 채웠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9호점에는 거실에 계단식 소파와 빔을 설치했다. 지난 2월 문을 연 10호점과 11호점은 커피와 디저트를 좋아하는 집으로, 카페하우스 형태로 지었다. 김정헌(31) 대표는 “우주 11개 지점의 입주자는 70명인데 현재 만실이다. 입주 대기자도 넘쳐 5 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인다”고 했다. 올해 목표는 30호점을 열어 입주자를 200명까지 늘리는 것이다. 임대료는 지역별로, 주거 형태별로 차이가 나는데 최저 35만원에서 최고 65만원까지 받는다.

셰어하우스를 선택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셰어하우스는 30대가 주로 선택한다. 혼자 살 만큼 살아본 싱글들이 ‘친구 이상, 가족 미만’의 관계를 찾아나선 것이다. 녹초가 돼서 퇴근한 나를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기쁨, 함께 먹고 마신 다음날 아침 잠이 덜 깬 눈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행복, 사람의 온기를 일상 곳곳에서 느끼는 삶, 이것이 셰어 라이프의 매력이다.

셰어하우스에 사는 일본인 노리코 아다치(30)가 말한다. “3년간 서울에 머물며 한국어를 배우고 직장도 잡았지만 혼자 사는 게 너무 외로웠다. 작은 원룸에 살 때는 답답하고 집주인과의 소통도 힘들었다. 셰어하우스에서 한국을, 서울을 다시 경험하는 느낌이다.” 이성일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류를 타고 외국인 교환학생이 쏟아지는데 대부분 고시원에 머문다. 하숙집은 거의 없어졌고 대학 기숙사는 자리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어울리려고 찾아왔는데 고립감만 느끼고 돌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외국인과 어울리며 한국인 ‘하우스메이트’도 특별한 경험을 쌓는다. 한국교원대 4학년인 천승호(27)씨는 지난 6월부터 셰어하우스에 산다. 교환학생으로 건국대를 다니면서 보더리스하우스 장한평점으로 이사했다. “핀란드, 미국, 네덜란드, 홍콩, 일본 등에서 온 친구들과 서울을 누볐다. 덕수궁과 경복궁을 다니고 북촌 한옥마을을 걸으며 나도 많이 배웠다. 세계 어딜 가도 만날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도 신기하다.”

하지만 새로운 주거 형태이다보니 허점도 있다. 특히 전문 임대사업자 없이 집주인이나 세입자와 개별 계약을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이 공동 거주하면서 세입자와는 구두로 계약을 맺는다. 임대차 관계가 모호하니까 전입 신고가 어렵거나, 월세 세액공제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미정(32·가명)씨는 셰어하우스라면 신물이 난다고 했다. 서울 구로동의 30평대 아파트에 집주인과 함께 살았는데 눈칫밥을 먹었다. 전기와 물을 사용할 때도 집주인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아, 부엌에서 음식을 해먹을 때조차 불편했다. 정식 계약서가 없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월세를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새로운 셰어하우스를 찾아나섰다. 마침 강남 빌라가 아주 싸게 나왔다. 김씨는 집을 둘러보고는 바로 계약했다. 보증금(500만원)을 보낸 뒤 이삿날이 다가왔는데 하우스메이트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다.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비슷한 수법으로 10여 명의 보증금을 빼돌린 뒤였다. 김씨는 이렇게 조언했다. “사회 초년생이 부동산중개소도 거치지 않고 셰어하우스를 직접 계약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주먹구구식 계약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세입자다. 스스로 임차인 보호 장치를 갖춘 곳인지 점검해야 한다.”

글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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