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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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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수문을 열자, 민주주의를 흐르게 하자

4대강 사업 뒤 남은 것은 썩다 못해 곰팡이가 핀 강과 나라님들의 말을 믿었던 주민들의 절망 섞인 탄식… 이제라도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에게 책임을 묻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해야
등록 2015-09-08 20:45 수정 2020-05-03 04:28

“‘녹조라떼’를 국회로 보내버립시다.”
몇 해 전 여름 경북 고령에서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짙은 녹조로 덮인 낙동강을 두고 국회가 현 상태를 알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500㎖ 페트병 300개에다 녹조를 하나하나 담아 국회의원 모두에게 전달하자는 제안이다. 그가 이렇게 격앙된 것은 4대강 사업으로 농사(수박농사)를 망친 피해 당사자이자, 자신이 태어나 입때껏 봐왔던 강과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 같으면 녹조가 생겨도 금방 사라졌다”면서 “4대강 사업 이후부터는 더 오래가고 더 진해졌다”고 말했다. 경남 함안보 부근에서는 녹조가 썩어 하얀 곰팡이까지 피어오른 장면도 확인됐다. 강 주변에서는 참을 수 없는 악취가 풍겼다. “이걸 누가 강이라고 하겠나”라는 탄식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4대강 사업은 충남 공주시의 역사가 담긴 금강 곰나루 모래톱마저 없애버렸다. 공사 시작 전인 2008년 4월 공주 시민들이 모래톱에 모여 행사를 열고 있다(위). 2012년 6월 준설과 공주보 건설로 모래톱이 대부분 사라진 모습. 대전충남녹색연합 제공

4대강 사업은 충남 공주시의 역사가 담긴 금강 곰나루 모래톱마저 없애버렸다. 공사 시작 전인 2008년 4월 공주 시민들이 모래톱에 모여 행사를 열고 있다(위). 2012년 6월 준설과 공주보 건설로 모래톱이 대부분 사라진 모습. 대전충남녹색연합 제공

생태계 재앙을 일으키고 있는 4대강 보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번성하는 녹조에는 독성물질을 함유한 남조류가 대량 포함돼 있다. 강을 원수로 사용하는 수돗물 안전에 빨간불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3년 4대강 사업의 한쪽을 담당한 한국수자원공사(수공)가 금강의 4대강 사업 구간에 대한 수질을 조사한 결과, 1년 중 다섯 달 동안 암모니아성 질소가 기준치를 넘어 발암물질 및 청색증 발생 우려가 있어 상수원수로는 사용이 곤란하다는 자료를 발표하기도 했다. 더욱이 이전에 볼 수 없던 큰빗이끼벌레라는 태형동물이 강에서 번창하고 있다. 큰빗이끼벌레는 1990년대까지 주로 댐 상류 또는 하굿둑 부근에서 발견됐는데, 4대강 사업 이후 강 본류에서 대량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반도와 역사를 같이한 우리 강의 상태가 매우 심각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i>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영산강의 경우 2011년 외래종 비중은 9.7%였으나, ‘보’라 불리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강을 가로막은 이후인 2012년에는 22%로 급증했다. 고인 물을 좋아하는 어종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으로, 외래종 급증에 따른 토종 어류의 절멸도 우려되는 상황이다.</i>

2011년 10월 공영방송 KBS가 생중계한 ‘4대강 새 물결 맞이 행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4대강은 생태계를 더 보강하고 환경을 살리는 그러한 강으로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앞서 자전거 타기 행사에서는 “4대강에 천지개벽이 일어났다”며 4대강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음을 선언했다. MB의 말이 사실이려면 ‘녹조라떼’는 물론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 떼죽음 사건은 벌어져선 안 됐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이후 물고기 떼죽음 등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했고, 그나마 남아 있는 어종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영산강의 경우 2011년 외래종 비중은 9.7%였으나, ‘보’라 불리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강을 가로막은 이후인 2012년에는 22%로 급증했다. 고인 물을 좋아하는 어종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으로, 외래종 급증에 따른 토종 어류의 절멸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4대강 사업으로 생물들의 서식처인 습지가 감소했고, 그에 따라 철새가 급감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4대강 사업이 MB의 말과 달리 생태계 재앙을 일으켰다는 것을 말해준다.

4대강 사업의 목적 중에는 가뭄 및 홍수 예방도 있었다. MB 정부는 4대강에서 4억2천만㎥를 준설하고, 16개의 보를 세우고 농업용 저수지 증고 및 신규 댐을 통해 13억t의 물을 확보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매년 3월22일 물의 날 즈음해서는 정치인·관료·전문가를 통해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라는 논리를 내세웠고, MB 본인도 올해 초 이라는 자서전에서 물그릇을 키워 가뭄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우리나라 치수 분야의 최고 상위 계획인 ‘2011년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서는 4대강 사업으로 확보된 13억t의 물을 단지 ‘비상용’으로 규정했다. 즉, 당장 쓸 곳이 없다는 것이다.

호언장담한 4대강 사업 효과, 모두 ‘뻥’

가뭄은 주로 4대강 본류와 떨어진 중산간 지대와 도서지역에서 발생한다. 이는 4대강 본류의 물을 공급하고 싶어도 공급할 시설이 없고, 시설을 만들어봤자 너무 멀어 경제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정부 부처 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내용이 확인됐다. 지난 6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작성한 ‘하천수 활용 농촌용수 공급사업 마스터플랜(안)’이 언론에 공개됐다. 내용을 살펴보면 4대강 본류의 물을 가뭄 지역에 공급하기 위해 1조원 이상이 투입돼야 하는데, 그 효과는 전체 농지의 2.9%에 불과했다.

홍수도 마찬가지다. 4대강 사업으로 홍수 방어 효과가 입증됐다는 것이 4대강 찬동 전문가와 일부 언론의 주장이지만, 증명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MB 정권은 4대강 사업을 통해 근원적인 홍수 방어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홍수는 주로 지류·지천에서 발생하는데, 본류의 물그릇을 키우면 지류·지천에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4대강 사업 이후에도 지류·지천에서 홍수 피해는 계속됐다. 다시 말해 근원적 홍수 방어가 안 됐다는 것이다. 또한 극심한 준설로 본류와 지류·지천이 만나는 지점에서는 역행침식이 벌어졌고, 본류 제방이 파여나가는 현상도 확인되고 있다. 4대강 공사 중에는 본류의 왜관철교와 지류의 교량 등이 무너지는 일도 벌어졌다. 이 때문에 토목공학 전문가들은 4대강 사업으로 본류의 안전성이 더욱 취약해졌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i>4대강 사업의 가장 큰 책임은 MB에게 있다. 또한 4대강 사업 강행을 위해 진실을 왜곡한 이들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실패가 뻔히 예견됐음에도 사익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면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여 우리 강을 심각하게 파괴했기 때문이다.</i>

MB 정부는 4대강 사업의 효과로 34만 개의 일자리 창출과 40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야당 등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일자리는 고작 2천~4천 개라는 분석이다. 일자리 창출이 허구인 상황에서 생산 유발 효과도 단순 계산에 따른 허황된 선전에 불과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4대강 사업의 비용편익(B/C)은 0.2 수준, 즉 100원을 투자하면 20원 이상 나오지 않는 사업이라 평가했다. 22조원이라는 천문학적 혈세가 낭비됐다는 말이다. 거기다 4대강 사업 유지·관리 비용과 수공이 부담한 8조원에 대한 이자비용 등 매년 수천억원의 국민 혈세가 현재진행형으로 낭비되고 있다.

최근 수공의 한 고위직 인사가 사석에서 필자에게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이런 상황이면 그냥 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MB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데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으로서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당시 수공의 4대강 사업 참여는 관련 법령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무시됐다. 결과적으로 국민 세금을 낭비케 했는데, 그에 따라 시민단체에서는 ‘수공 해체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은 민주주의를 후퇴시켜

수공 고위직 인사의 말을 요즘 유행하는 ‘번역기’로 돌리면, ‘수공은 위에서 시켜서 한 죄밖에 없는데 왜 수공 갖고 뭐라 하냐’는 것이 아마도 솔직한 속내일 것이다. 실제 환경운동연합 등에서 2014년 ‘4대강 찬동 인사 인명사전’을 작성할 때 수공 노조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시켜서 한 것뿐이므로 찬동 인사 명단에서 수공 관계자를 모두 뺄 것과 그러지 않으면 쳐들어가겠다는 식의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서 말이다. 역사의 데자뷔랄까? 일신의 영화를 위해 일제강점기 때 적극적으로 일제에 부역했던 이들도 이런 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핑계를 대지 않았을까 싶다.

4대강 사업의 가장 큰 책임은 MB에게 있다. 또한 4대강 사업 강행을 위해 진실을 왜곡한 이들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실패가 뻔히 예견됐음에도 사익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면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여 우리 강을 심각하게 파괴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점이다.

MB가 당선된 뒤 구성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는 ‘한반도 대운하 태스크포스팀’이 포함됐는데, 이 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환경영향평가의 무력화였다. 최소 사계절 평가를 원칙으로 해야 하는 환경영향평가를 단 6개월 내에 모든 절차를 끝내도록 관련 기관을 압박했다는 증언이 있다.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민간 진영 및 전문가 참여는 철저히 배제하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만 채워나갔다. 그런 과정을 통해 실제 4대강 사업의 사전환경성검토, 환경영향평가는 6개월여 만에 끝냈고, 문화재 지표조사, 중앙하천심의위원회 심의도 요식행위로 끝내버렸다. 또한 500억원이 넘는 사업에 대해 실시하는 국가재정법상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피하기 위해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을 개정해 4대강 사업의 90%를 예외 사업으로 만들어버리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더욱이 4대강 사업을 위해 사정기관을 동원해 공안 정국을 만들면서 국민 절대다수의 반대 여론을 억압했다. MB가 4대강 사업에 집착할 때, 이를 뒷받침한 기관 중 하나가 지난 대선 과정에 불법으로 개입한 국가정보원이다. 부산 지역에서 4대강 반대 운동을 벌였던 한 단체의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 직원에게 직접 들었다”면서 “간첩 대신 4대강 반대 운동 감시가 국정원의 주요 기조였다”고 말했다.

2013년 야당이 공개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지시 문건을 보면 4대강 반대 운동 등을 ‘종북세력’ ‘내부의 적’으로 표현하는 등 국정원은 4대강 반대 운동 진영을 감시했고, 4대강 사업 추진을 위해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벌였다.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경찰 모두 4대강 사업을 위해 정권의 ‘주구’를 자처했다. 여기에는 관료 집단, 지식인 집단,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공론장은 왜곡됐고, 사회정의는 상실됐다. 또한 우리 사회의 이성과 상식이 마비됐다. 가톨릭관동대 박창근 교수는 “22조원을 들여 우리 사회가 확인한 것은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상식”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22조원 들여 확인한 것은 ‘고인 물은 썩는다’”

4대강 사업은 민주주의를 후퇴시켜야만 할 수 있었던 사업이다. 따라서 4대강을 제대로 흐르게 하는 것이 곧 상처 입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된다. 불법과 비리의 복마전이며, 국민의 혈세를 낭비케 했다는 점에서 4대강 사업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국정조사·청문회 등은 여전히 필요하다. 책임을 져야 할 인사들에게 역사적·법적 책임을 묻는 것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또한 강이 원래대로 흐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수문을 열고 흐르게 하자. 그것이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혈세 낭비를 방지하기 위한 시작일 것이다.

이철재 에코큐레이터·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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