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자명한 사실 하나. 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그만큼 높아졌다. 특정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그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면서 관객의 열광과 팬덤이 마치 신드롬처럼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 특별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은 한국 영화가 다시 부흥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더 나아가 일제강점기를 다루면서도 흥행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영화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은 우연히 흥행에 성공한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실패의 구렁에서 과감히 벗어났다는 것을 증명한, 너무도 예외적인 영화다. 이 때문에 의 흥행과 그것을 둘러싼 열광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암살>은 친일파 청산을 이루지 못한 한국사회의 오래된 과제를 오락영화의 틀에 담아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쇼박스 제공
잠깐 한국영화사를 살펴보자. 1990년대 중반 이후 능력 있고 예민한 대중적 촉수를 지닌 감독들과 여러 영화인들이 충무로로 몰려들면서 한국 영화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매체가 되었다. 해외에 수출되고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꿈만 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만드는 족족 흥행에 실패했다.
<ymca> (이하 ) . 만들어진 수도 많지 않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물론 이나 을 두고 흥행에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투자된 제작비에 비해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충무로에서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둘러싼 저주를 논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순제작비만 180억원이 투입된 대작 은 이 ‘저주’를 깨버렸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 이 명확한 대립의 시대에 좌우 합작의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충무로에서 거의 유일하게 흥행 실패작이 없는 감독, 최동훈은 대중의 감성을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다. 그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가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단순한 이치.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 배경, 이제까지 감독이 작업해온 영화적 세계관, 대중영화의 매끄러운 완성도, 이 삼박자가 자연스럽게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만 실패하지 않는다.
가령 만드는 영화마다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던 강제규는 에서 자신의 영화 세계, 즉 스펙터클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주인공의 정체성 혼란이 끝날 때 죽음의 신파적 눈물을 흘리게 만든 영화를 만들었지만, 피식민지인이 식민지인을 위해 죽을 때 그 눈물은 관객의 동화를 이끌어내지 못해 참패하고 말았다. 김지운은 멋들어진 영상을 스크린의 적재적소에 배치하면서 결국에는 허무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에서 그렸지만, 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해야 하는지 답을 내놓지 못했다. 1930년대의 근대 문물에 독립운동이나 민족정신을 결합한 등은 작품적 완성도가 높지 않았고 이야기도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최동훈은 다른 소재가 아니라 그가 이제까지 해왔던 케이퍼 무비(Caper Movie·범죄의 계획과 실행을 보여주는 영화)의 특징인 거대한 음모나 사기 행각처럼, 경성의 친일 요인을 암살하는 내용을 영화로 만들었다. 친일파를 암살하려는 이들, 다시 이들을 암살하려는 청부살인업자, 업자들을 사주한 밀정 등이 경성에 모이면서 이야기는 정신없이 흘러가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과 내면이 카메라에 포착된다.
서울 시내를 걷다가 허허벌판에서 죽다니
흥미롭게도 최동훈은 이런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대중영화의 친밀한 서사 구조를 차용했다. 가령 친일과 저항의 대립을 선과 악의 대결로 전환하고, 여주인공의 수행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담았으며, 하와이 피스톨이 적대자에서 동조자로 전환하게 만들었고, 이를 위해 적절한 복선과 반전을 마련해두었다. 그뿐인가. 이 모든 것을 가장 대중적이라는 ‘3막 구조’ 속에 담아 매끄러운 영화로 만들어놓았다.
그렇다고 영화가 단순하고 명쾌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지만, 꽤나 복잡하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도 녹아 있다. 살부(殺父) 모티프를 보자. 친일파 강인국을 암살하기 위해 경성에 온 안옥윤(전지현)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가 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도 어머니를 살해하고 언니를 죽인 패륜아적 아버지. 안옥윤은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아버지를 죽이지 못해 친구들이 상대 아버지를 죽여주기로 했음에도 결국 죽이지 못한 하와이 피스톨이 안옥윤과 함께한다. 과연 그는 안옥윤과 함께해서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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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서사에서 익숙히 본 이 모티프는 2000년대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아버지를 죽여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삶을 누릴 수 있을까, 라는 물음. 안타깝게도 친일파인 아버지를 안옥윤은 죽이지 못하는데, 바로 이것이 우리 모습이다. 아버지라는 타자가 지배하는 질서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그 질서에 갇혀 저항도 하지 못하면서 길들여져 있는 삶. 이렇게 보면 은 일제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 우리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대중의 욕망을 잘 읽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독립운동을 흥미진진한 서사로 풀어낸 것도 한몫했지만, 독립운동이라는 소재에서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최동훈은 알고 있는 것 같다. 가령 마지막 장면이 대표적이다. 반민특위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염석진(이정재)은 거리로 나온다. 그를 맞이하고 있는 경찰들을 물리치고 거리를 걷다가 미치코라고 착각한 안옥윤을 따라간 곳이 그의 최후 장소가 되었다. 염석진이 일제의 밀정으로 확인되면 암살하라는 김구의 명령을 실행했다가 오히려 염석진에게 죽임을 당했던, 아니 당했다고 생각했던 명우가 거기에 있는 것 아닌가. 명우는 오래된 그 명령을 수행한다.
이때 명우의 총에 맞은 염석진이 나무 울타리를 벗어나 허허벌판으로 쓰러지는 이 부분은 분명 이상하다. 편집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 시내를 걷다가 갑자기 허허벌판에서 죽다니. 그러나 그것은 감독의 의도였던 것 같다. 그 허허벌판에는 마치 빨랫줄에 걸린 것 같은 하얀 적삼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나는 이 순간 그 적삼들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은, 이름 없는 이들의 넋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죽어간 이들 앞에 일제의 밀정이자 독립운동의 반역자이며 여전히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는 친일파를 처단해, 죽어간 이들의 혼을 위로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시 말해, 이 장면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어간 이들의 넋 앞에 배신자를 처단해 그를 제물로 바치는 제의였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합법적으로 죄를 물을 수 없어 여전히 독립운동하듯이 암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만 처단해야만 하는 현실. 그 어이없는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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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간 이들을 잊지 말라
최동훈이 이 영화를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어쩌면 간단하다. 영감이 안옥윤과 헤어지면서 하는 말, “3천불, 우리 잊으면 안 돼”라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대사를 보라. 해방 뒤 약산 김원봉이 죽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고량주에 불을 붙여 그들을 추모할 때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을 위해 죽어간 이들을 잊지 말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친일파들을 처단했어야 했다는 것. 영화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그 단순한 이야기를 전쟁 같은 스펙터클, 첩보전의 긴장, 살부 이야기, 적당한 멜로 코드 등을 곁들여 하고 있다.
필연적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영화 은 판타지로 끝을 맺을 수밖에 없었을까? 질문을 바꾸어서 하자. 우리는 왜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했을까? 그 결과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채, 아니 그들이 주역이 되어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으니 거기에는 정통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판타지라는 형식으로라도 죄를 물은 최동훈과 달리, 이후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약산 김원봉은 악질 친일 경찰이었다가 반민특위를 해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노덕술에게 잡혀 고문을 당한 뒤 선택의 여지 없이 북한으로 넘어갔지만, 1958년 연안파 숙청 때 김일성에 의해 숙청당하고 말았다. 설에 의하면, 그는 감옥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고 한다. 남과 북 모두에게 버림받은 독립운동가의 최후. 누구보다 열심히,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그의 신세는 아직도 남과 북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다시 생각한다. 미치코 행세를 했던 안옥윤과 그 동지들은 혼란한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시기에 어떻게 살았을까? 임시정부를 이끌며 수시로 죽음의 길을 넘나들다가 귀국한 김구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찬밥 신세를 받다가 결국 암살됐을 때, 혹 그들은 김구 제거 세력과 강력하게 싸우다가 암살당하지 않았을까? 아니라면 한국전쟁 시기 북한이 서울을 지배했을 때 남한의 정통성을 비판하며 북쪽에 동조하다가 월북해 김원봉과 함께 숙청당하지나 않았을까? 아니라면 서울 수복 때 서울에 남았다가 북한 부역자나 빨갱이로 몰려 남한 군인들에게 살해당하지 않았을까? 최근 개봉했던 , 즉 빨갱이 무덤을 보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이 빨갱이로 몰려 죽었는지 알 수 있는데, 그 무덤을 발판으로 친일파는 건국 세력이 되지 않았던가!
독립운동가가 반면교사가 되다니
그 해방의 혼란을 최동훈은 영화에서 판타지로 다루면서, 어떻게 보면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회피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나는 이런 바람이 있다. 최동훈이 한국전쟁과 군부독재 시기의 독립운동가들과 친일파들의 삶을 영화로 다시 만들어주기를. 어떻게 친일파에서 건국의 주역이자 대한민국의 핵심 세력으로 거듭나는지, 반대로 독립운동가에서 빨갱이로 평가받아 신변의 위협 속에 살아야 했는지. 이 거꾸로 된 힘의 질서 속에서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자식은 고통의 세월을 견디며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
이것은 남한만의 사정이 아니다. 김일성의 항일 업적만이 유일한 공식 역사인 북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렇게 보면 남과 북에서 공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들의 처절한 운명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가? 만약 지금과 같은 평가가 지속된다면 누가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울 것인가? 부끄럽지만,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어버렸다. 통탄할 일이다.
강성률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y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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