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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 위에 군림하는 보훈처

국가유공자 비해당 결정 51%가 ‘입증 자료 없음’이라는 ‘직무유기’, 2012년에는 진보 성향 학자 무더기로 제외하며 ‘우향우 행보’
등록 2015-08-12 15:13 수정 2020-05-03 04:28

“국가보훈처는 그동안의 관리 부실을 인정하고 기존 국가유공자의 공훈에 대하여 철저한 전수 재조사를 실시하라!”
지난 6월24일 대전지방보훈청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시민공동조사단은 두 달 동안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내용은 ‘대전 김태원’의 후손이 ‘평북 김태원’의 공훈을 가로채 유족 보상금을 수십 년간 부당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2013년 10월 당시 전병헌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선거 개입 의혹 영상을 공개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2013년 10월 당시 전병헌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선거 개입 의혹 영상을 공개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공적 가로챈 후손은 전 광복회 지부장

진실은 이렇다. ‘평북 김태원’은 1902년 평북 의주군 출생으로 1919년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단에 가입했다. 이듬해 벽창의용단 소속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치다 1925년 일제에 체포됐다. 당시 그는 일제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해 일경 4명을 사살하고 일제기관이었던 보민회 회장을 죽이기도 했다. 1926년 김태원은 사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보훈처는 이런 공적을 근거로 김태원에게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반면에 같은 이름의 ‘대전 김태원’은 출생·사망 연도부터 다르다. 그는 1900년 대전 출신으로 1951년 숨졌다. 시민조사단은 “대전 김태원은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1921년 하반기 또는 1922년 상반기부터 1924년 말까지 운남육군강무학교에서 수학한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1922년에 벽창의용단으로 무장투쟁을 벌였다는 내용은 대전 김태원의 공적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보훈처의 엉터리 행정도 비난받았다. 보훈처는 2011년에 이미 ‘대전 김태원’의 가짜 독립운동 기록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공적을 가로챈 후손으로 지목된 사람이 김아무개 전 광복회 대전충남연합지부장이라는 점도 의혹을 더 키웠다. 보훈처는 시민단체와 언론의 지적이 잇따르자 지난 5월 보훈처 누리집의 ‘독립유공자(공훈록)’ 꼭지에서 대전 김태원의 공훈록이 검색되지 않도록 했다. 시민조사단은 지난 7월9일 독립운동 공적을 위조해 부당하게 유족 보상금을 받아온 혐의(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위반)로 김 전 지부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가유공자 심사에 대한 보훈처의 소극적·면피적 행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거부하는 것은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2006년 김동관(당시 48살)씨는 수원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다. 고려대 재학 중 입대한 김씨는 1980년 5월 광주에 제3공수특전여단 소속으로 투입됐다. 전령병이었던 그의 두 귀에 광주 상황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참상 앞에서 그는 주먹을 쥐었다. “시민을 학살해서는 안 된다”며 상관 지시를 거부하고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그 뒤 그는 부대에서 야만적 폭력에 처절하게 무너졌다.

1981년 제대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이후 20년 넘게 김씨는 정신병원 20여 곳을 떠돌며 ‘5·18 광주’의 기억과 폭력의 상처로 신음했다. 뒤늦게 대학 친구들이 나서 당시 부대의 전우들을 수소문해 증언을 얻었다.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학과 교수들에게 자문까지 받았다. 그러나 보훈처는 김씨의 신청을 간단히 거부했다. “군복무 중 발병했다는 자료가 없다.”

신청 거부 뒤 패소하면 마지못해 인정

결국 김씨와 친구들은 보훈처를 법정으로 불러내 대법원까지 3년간 소송을 벌였다. 2009년 대법원은 1·2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정통성 없는 공권력을 극복하기 위한 국민의 저항엔 시대적이고 객관적인 정당성이 내재돼 있었다. 김씨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에 동원됐고, 이런 자기모순이 초래한 극도의 갈등은 정신세계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진압군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첫 사례였다.


<i>“사실에 대한 엄중함이 중요한데도 지난해 6월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해 그의 조부가 독립운동가 문남규 선생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식으로 졸속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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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가 적극적인 자료 발굴과 판단을 하기는커녕, 부담스러운 사안에 대해서는 대부분 신청을 거부한 뒤 소송에서 패소하면 마지못해 인정하는 행태를 그대로 드러낸 사안이다. 2013년 국정감사 당시에도 이런 행태가 지적을 받았다. 2013년 기준 보훈처가 3년 동안 국가유공자 비해당 결정을 내린 건수는 2만6천 건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51%인 1만3300명이 입증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비해당 처분을 받았다.

특히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 참전의 경우 병적기록표나 병상 자료가 보관돼 있지 않은 까닭에 개인이 전적으로 공적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됐다. 하물며 구영필 사례처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기록을 후손에게 온전히 찾아내 입증하라는 것은 보훈처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구영필의 손녀 구미현(65)씨는 “보훈처가 후손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했다.

보훈처의 보수·우익 편향도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011년 2월 이명박 정부 때 보훈처장에 임명된 박승춘 처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유임돼 4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1년 8월 고 안현태씨가 국립묘지에 안장되도록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고 안현태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전두환(11기)·안현태(17기)·박승춘(27기) 세 사람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박 처장은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서 광복회 회원들에게 한 강연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을 추어올리고 대선에 개입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역시 취임 첫해 말부터 민주·진보 세력을 종북·좌파로 폄훼하고 박정희 정권을 찬양하는 동영상을 DVD로 1천 개 만들어 전국 학교·시민단체에 배포한 사실도 이듬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2012년에는 보훈처의 ‘우향우 행보’가 더욱 노골화했다. 국가유공자 서훈 결정을 하는 공적심사위원회에서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무더기로 제외됐다. 이만열 숙명여대 교수와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서굉일 한신대 명예교수,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등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참여한 학자들이 다수 포함됐다.

공비 토벌자를 지원한 ‘군사원호법’ 그대로

보훈처의 보수·우익 성향은 이승만 정권 시절 군사원호청, 박정희 정권 때의 원호처를 그대로 잇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시행된 군사원호법은 항일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그 후손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정부 수립 뒤 ‘공비’를 토벌하거나 군복무 중 순직한 이들의 유족 지원이 주된 목적이었다.

박정희 정권 들어 독립유공자 서훈과 포상이 본격 시행됐지만 이 또한 ‘반쪽짜리’에 그쳤다. 친일 행적자들이 공적 조서와 서훈 심의에 참여했으며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이들 가운데에도 친일 행적자가 적지 않았다. 또한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서훈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제일 큰 문제는 보훈처의 인식이다. 독립운동 자료를 발굴하는 것이 보훈처의 의무인데 여전히 소극적이다. 사실에 대한 엄중함이 중요한데도 지난해 6월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해 그의 조부가 독립운동가 문남규 선생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식으로 졸속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보훈처의 기본적인 좌표가 잘못된 것 아닌가, 냉전·반공의 색안경을 쓰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구영필의 후손은 올해 4번째 서훈 신청에서도 보훈처로부터 거부를 당했다. 서훈 신청이 거부된 이유에 대해 보훈처 공훈심사과 관계자는 8월6일 기자에게 말했다. “심사 결과가 내일(8월7일) 우편으로 통지된다. 그 전에는 말하기 곤란하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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