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벌어진 한 달여 동안 정부의 대응을 “허둥지둥”이란 말로 요약했다. 아까운 생명을 하나둘 앗아간 감염병 앞에서 정부의 태도는 “수동, 소극, 축소 지향, 사후 대책”의 수준이었다고 했다. “울타리(방역망)를 크게 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정부가 정반대로 갔다는 것이다.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회 메르스 대책 특별위원회 야당 간사다. 메르스에 당한 ‘무방비 습격’은 당연했다는 게 예방의학 전공 의사 출신인 그의 진단이다. 지난 6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지난 3년간 사전 대비가 전혀 없었으니 갑자기 당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아주 잘못했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생한 메르스를 그해 신종 감염병으로 지정하고 각국에 주의를 당부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3년간 메르스란 병명을 법정감염병으로 명확히 지정하지 않았다. 그는 감염병에 대처할 공공병원이 적었던 것도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보았다.
매년 중동에서 한국 오는 사람 2만6천명
이런 사태가 불거진 출발의 시점을 2012년으로 보는 건가.그렇다. 3년간 메르스에 대한 연구를 전혀 안 했다. 정부가 그 흔한 연구보고서 하나 내지 않았다. (메르스 발생국에) 조사 출장도 보내지 않았다. 메르스 치료 경험이 있는 중동, 유럽의 학자를 불러 세미나 한 번 열지 않았으니 정부가 뭔 할 말이 있겠는가.
정부는 메르스를 법정감염병 목록에 올리지 않았으나,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 예방법)의 시행규칙에서 정한 ‘4군 감염병’ 가운데 하나인 ‘신종감염병증후군’에 메르스가 포괄적으로 속해 있다고 얘기한다.말도 안 되는 소리다. 메르스 발병 뒤 3년이 지났다. 메르스를 (법정감염병 가운데 하나로) 보충할 생각을 하지 않고 3년을 보냈다. 메르스가 발생한 중동이 우리와 교류가 없는 곳인가? 중동 국적으로 한국에 오는 사람도 연간 2만6천 명 정도다. 그래서 지난 6월17일 감염병 예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내로 유입될 수 있는 신종전염병을 ‘관리대상 해외 신종감염병’으로 별도 지정해 미리 연구하고 준비·교육·훈련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이다.
대통령이 최근 메르스 환자가 많이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의 원장을 불러 꾸짖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방문해 메르스를 ‘중동식 독감’이라고 표현한 걸 두고 안일한 인식이란 비판도 있다. 어떻게 보나.쇼를 할 게 아니라 실질적 조처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 단계에서) 상향 조정하지 않고 있다. 이건 대통령이 결단할 일이다. 지금 보건 공무원, 의료진은 지쳐 있다. 경보 등급을 올려야 새 인력을 더 투입할 수 있다. 전염병 싸움에서 새 병력을 보충해주고 지친 병력을 빼줘야 한다. 꼭 을 읽어야만 이런 걸 할 수 있는가?
국회 메르스 대책 특위의 목표는 무엇인가.먼저 대응 실패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메르스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도록 한 결정은 누가 했을까? 질병관리본부 자문위원(감염 관련 교수·의사 등)들이 공개하지 말라고 했을 리 없다. 그러지 않았다는 나름의 증거도 갖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사스, 신종플루, 가축전염병 땐 정보를 숨긴 적이 없다. 복지부에도 예방의학을 공부한 전문가들이 있는데 숨기면 피해가 커진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숨기려고 했다. 그럼 어디일까? 그걸 규명해야 한다. 또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시·도별 ‘400병상 규모급’ 공공병원 지어야
민간병원이 메르스 전파의 진원지가 되고 대응을 잘 못하면서 공공병원 확대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된다.메르스 최전선에 배치된 부대는 병원이다. 의료진은 그 전선의 싸움꾼들이다. 그런데 메르스 환자가 한 명 오면 지금 그 병원이 망하게 생겼다. 정부는 (병원 휴진 등에 대해) 손실 보전도 약속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민간병원이 메르스에 대해 열심히 진료할 수 있을까? 병원을 통째로 비워야 할 곳은 삼성서울병원이지만 민간병원은 (수익을 내야 해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최소한 전국 (17개) 시·도별로 ‘400병상 규모급’의 감염병 전문성을 갖춘 공공병원을 지어야 한다. 지난 6월17일 낸 감염병 예방법 개정안에 이런 내용(공공병원 확대)을 담았다. 한꺼번에 다 세울 순 없으니 우선 몇 개씩 세워나가는 거다. 이런 공공병원들만이 감염병 전문 인력과 감염병 시설(음압병상·진단장비 등)을 갖출 수 있을 뿐 아니라, 감염병 대비 훈련까지 평소에 할 수 있다.
(김 의원은) 공공병원 확대를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공공병원 병상 수가 꼴찌다. 왜 그럴까.OECD 국가들의 공공병원 평균 비율은 40~70%다. (9%대에 불과한) 한국은 공공병원을 무시한다. 의료는 민간병원이 담당하고 공공의료는 보조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박정희 시대부터 의료에 대한 지배담론이었다.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 중에 좋아진 곳이 생겼는데도, 시민들은 ‘공공병원은 실력이 없다, 가난한 사람만 간다, 관료적인 느낌이 든다’고 인식하고 있다. 정치권도 공공병원 확대를 거론하는 것을 꺼려왔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도 그간 주저해왔던 게 사실이다.
왜 주저했을까.공공성 확장을 얘기하면 한국 사회에선 사회주의 주장으로 낙인찍히기 딱 알맞지 않나. 그리고 (야당 의원들조차) 공공병원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공의료 공급을 전체의 30%까지 늘리겠다는 대선 공약을 제시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4조5천억원을 공공의료에 투자하는 정책을 2005년에 발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을 지냈는데, 당시 공공의료 확대 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뭔가.그 공약은 내가 참여해 만든 거였다. 공공병원을 30%까지 늘리는 것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공공병원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지 않은 채 공약을 내건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 느꼈다.
공공병원 30%, 여론 형성 안됐는데…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어떠한가.두 정부는 공공의료를 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반대인 의료영리화로 갔다. 기획재정부도 공공의료에 돈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 민간병원이 있는데 정부가 왜 그걸 하냐는 거다.
메르스 사태 악화의 한 축인 공공의료 부실에 정치권의 책임은 없을까.의원들도 (2013년) 홍준표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쇄하면서 공공병원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전엔 공공병원에 대한 국회 논의가 거의 없었다. 메르스 사태 때문에 공공병원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국민·정치권·언론, 심지어 민간병원 의사들 사이에서 상당히 조성되고 있어서, 이번엔 나도 (공공병원 확대) 시도를 다시 하려고 한다.
최근 새누리당 소속의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야 의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공공의료기관의 확보와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내용이다. 민간병원 원장 출신인 정 의장도 메르스 사태를 겪은 지금이 공공병원 확대를 위한 적기이면서 ‘시급한 시점’이라고 본 것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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