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요, 미라가 돼서… 절 잡아먹으려고… 막 쫓아왔어요.”
지난 6월2일 새벽, 제 방에서 자다 말고 나와 안방으로 들어온 작은딸이 아내의 품을 파고들며 그렇게 말했다.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결국 딸은 우리 부부 사이에 누워 한참을 뒤척인 뒤에야 겨우 다시 잠들었다. 공포는 그렇게 여덟 살배기 딸아이의 마음에도 똬리를 틀었다. 아이의 등을 다독이며 메르스라는 괴물이 내 가족에게까지 흉물스러운 그림자를 드리웠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부지불식간에 깊숙이….
“메르스가… 절 잡아먹으려고…”
바로 그 전날인 1일 저녁, 작은처제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내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처제의 첫마디는 “언니, 괜찮아?”였다. 처제는 메르스 최초 확진자가 거쳐가서 휴원하게 된 병원이 처제의 집 근처이며, 조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도 휴원하게 되어 당분간 시골에 내려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처제는 불안하고 무서워 못 살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서 찾은 정보를 조합해본 뒤에야 최초 감염자가 충남 아산과 경기 평택 등지의 병원을 전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산과 평택은 노부모의 시골집에서 차로 불과 10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지척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전혀 그런 정보를 모르고 있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배어나오고 눈앞이 아찔했다. 시골집의 지척에서 그런 사달이 났다는 사실보다 상황이 그 지경에 이르도록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더 섬뜩했다.
시골집에 전화를 걸어 여쭈니, 노부모 역시 메르스와 관련된 인근 지역의 정보를 전혀 모르고 계셨다. 병원 방문은 물론, 외출도 되도록 삼가시라는 신신당부를 드렸지만 기분은 못내 찝찝했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TV에서 메르스 의심 환자 중 처음으로 사망자가 나왔다는 속보가 흘러나왔다.
불안했다. 당장 이틀 뒤면 초등 4학년생인 큰딸이 2박3일 일정으로 학교 수련활동을 떠날 계제였다. 한편으로는 부아가 치밀었다. 보건의료 당국은 이 심각한 상황에 대체 왜 메르스 환자와 관련된 병원과 지역 정보를 쉬쉬하고 있단 말인가.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소설가 H. P. 러브크래프트는 그렇게 공포를 정의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저서 에서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 공포를 규정한다. “공포가 가장 무서울 때는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이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유동하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해할 때다. …공포란 곧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위협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것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공포소설을 쓸 때 가장 효과적인 기술은 바로 서스펜스 유발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데에서 오는 불안감과 긴박감을 뜻하는 서스펜스는 독자를 소설로 끌어들이고 책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허구적 울타리 안에서나 뛰놀아야 할 서스펜스가 현실에서 펼쳐지는 순간부터 놈은 일상의 안위를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
불확실·알 수 없음, 그 강력한 공포확진 환자와 격리 대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마당에 관계 당국이 결정적인 정보를 차단하고 안이하기 짝이 없는 대처로 일을 키우면서, 먼 나라의 호흡기증후군에 불과했던 메르스는 이 땅에서 ‘유동하는 공포’로 탈바꿈했고 누구도 예상치 못할 서스펜스로 거듭났다.
괴담은 불안과 공포, 불신이 팽배할 때 곧잘 생겨난다. 관계 당국이 정확한 정보를 알리지 않고 쉬쉬하니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질 수밖에 없고, 제대로 대처하지도 않으면서 믿고 따르라 하니 불신할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도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나 괴담 유포자는 엄중 처벌하겠다며 으름장 놓는 행태를 지켜보노라면, 고야의 연작판화집 (Los caprichos)에 실린 제43번 에칭 가 절로 떠오를 지경이다. 괴물을 눈뜨게 한 장본인은 누구인가.
“난 그저 내가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쓴다. 내가 어렸을 때 내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곤 했다. ‘네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을 생각해봐. 그리고 그걸 소리 내어 말하면 그건 실현되지 않을 거야.’ 그것이 내 경력의 토대가 되었다.”
공포의 제왕으로 통하는 작가 스티븐 킹은 2011년 과의 인터뷰에서 공포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그렇게 털어놓았다. 나의 동기 역시 그와 비슷했다. 하지만 이제 그 동기가 무색해졌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것들이 내가 미처 소설로 쓰기도 전에 현실로 쏟아져나오고 있으니까.
공포물이라면 진저리를 치며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하는 이들 틈바구니에서 공포소설을 쓰며 사는 동안 수차례 고비를 겪었다. 개중에 굵직한 고비는 세 번이었다. 첫 고비는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한 김선일 피살 사건을 목격했던 2004년이었고 두 번째는 세월호 참사를 지켜본 지난해였다. 세 번째 고비는 바로 지금 겪는 중이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공포소설이라는 장르를 질색하고 외면했는지 이제야 비로소 알 법도 하다. 단단한 안전장치가 내 몸을 든든히 받쳐주어 불안감이 해소되었을 때에야 위험한 놀이기구도 오롯이 즐길 줄 알게 마련이다. 그 어떤 공포소설보다 더 무섭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이 땅의 많은 이들에게 현실보다 훨씬 덜 무서운 한낱 공포소설 따위가 과연 무슨 효용가치가 있을까.
“저런 소설 너무 싫어요. 행여 우리 아이가 읽을까 겁나는 책이네요. 내 아이한테는 조곤조곤 예쁜 얘기만 들려주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밝은 데로만 다니게 하고 싶거든요.”
내 데뷔작 출간 당시 소설을 읽은 한 기자가 블로그에 쓴 서평에 네티즌이 단 댓글이었다. 그 마음 십분 이해한다. 나 또한 두 아이의 아빠이며, 내 아이들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라며, 아이들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공포소설 못 읽겠는 공포스러운 현실불과 1년 전, 수백 명이 탄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그때 세월호의 상황실은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안전봉을 잡고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만 앵무새처럼 연발했다. 아이들은 무섭다고, 살고 싶다고 외치면서도 고분고분 안내에 따랐다. 그사이 선장은 배를 버리고 달아났고 해경은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컨트롤타워는 아예 없었고 구조작업에 투입된 언딘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결국 아이들은 뒤집힌 배와 함께 차디찬 4월의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요 며칠 속수무책으로 불어나는 메르스 확진 환자와 격리 대상자, 사망자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1년 전의 참혹하고 암담한 나날들이 거의 엇비슷하게 오버랩된다.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재난과 맞닥뜨린 이 땅의 모습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문열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에서 어른이 되어 담임선생을 문상 갔던 한병태는 새벽녘에 상가(喪家)를 나서며 5학년2반 급장이었던 엄석대를 떠올린다. “내가 사는 오늘도 여전히 그때의 5학년2반 같고, 그렇다면 그는 어디선가 또 다른 급장의 모습으로 5학년2반을 주무르고 있을 게다. 오늘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그의 그늘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솔직히 확신할 수 없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하며, 그 때문에 국민의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보장이 불가능할 때, 또는 보장을 확언할 수 없을 때, 국가는 사회 안보 대신 개인 안보로, ‘공포에 대한 보호’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에서 그렇게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나 관계 당국은 여전히 개인 안보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국가 안보에만 급급한 기색이다. 상황은 악화 일로로 치닫고 외신은 연일 비난 여론을 쏟아낸다. 그럼에도 당국은 메르스 관련 병원 정보 비공개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사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메르스로 인한 두 번째 사망자가 나온 직후인 6월2일 오전, 큰딸의 학교와 해당 교육청에 문의를 해보았다. 혹시 메르스 사태로 수련활동을 연기할 계획은 없는지 물었더니, 학교는 연기 계획이 없단다. 교육청도 수련활동은 학교장 재량이라 가타부타 관여할 수가 없단다. 2일 오후가 되어서야 수련활동 참여를 원치 않는 학부모는 담임에게 연락 달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결국 상의 끝에 큰딸을 학교 수련활동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하고 담임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모르잖아. 세월호 사고 이후로 내 새끼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
아내의 말에 백번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냥 서글펐다.
바로 보아야 끝나는 공포“다가오는 공포, 우리의 힘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공포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 그 시작은 그것을 바로 보는 것이다. 그 뿌리를 캐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 잘라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의 말미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비교적 단순 명쾌한 치료법을 제시한다.
수련활동을 불과 하루 앞둔 2일 저녁에야 큰딸아이의 학교에서 문자메시지 한 통이 날아왔다.
“인근 학교 메르스 의심 환자 발생으로 본교 수련활동은 잠정 연기합니다.”
두 딸에게 마스크를 씌워 등·하교시키며 둘러보니, 어제오늘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손소독제와 구강청결제를 주문하던 중, 메르스 의심 환자로 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다 숨진 80대 남성이 최종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TV 뉴스가 흘러나온다. 어느새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메르스를 이제부터라도 두 눈 부릅떠 바로 보고, 그 뿌리를 찾아 잘라버릴 수 있을까. 부디 그렇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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