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8월16일치 1면에는 미국 언론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사 가운데 하나가 실렸다. 기사 제목은 ‘컬럼비아대학에 언론대학원 설립’이었다. 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뒤흔드는 폭로 보도 등으로 이름을 남긴 옛 신문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흥미 위주의 선정적인 옐로저널리즘이 극성을 부렸다. 권력을 고발하는 보도에 앞장섰음에도 역시 선정보도의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시민들이 언론에 냉소를 보내고 신뢰의 위기를 맞자, 당시 의 경영자이자 언론인인 조지프 퓰리처는 저널리즘 발전에 기여할 방안을 찾는다.
“변호사는 잘못된 법적인 충고 몇 마디로 사람의 운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의사는 자신의 의견을 통해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모든 가능성을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국가는 대개 8년 내지 10년에 걸친 힘든 준비 기간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정보 제공자이자 여론의 해석자이자 어느 정도는 여론을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하는 기자들은 지금까지 그 민감하고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특별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퓰리처가 1면 기사에서 밝힌 컬럼비아대학 저널리즘 스쿨 설립 이유다.
당시 언론인들은 “기자는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고, 저널리즘을 교육 문제로 접근하는 견해를 조롱했다. 하지만 퓰리처는 “우리 공화국에서 어떤 사람이 단순히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리로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바보’라는 자리뿐”이라고 반박하며 사회적 공신력이 있는 교육기관 설립을 구상하고 실현했다. 이후 컬럼비아대학 저널리즘 스쿨은 비슷한 시기 탄생한 미주리대 저널리즘 스쿨 등과 함께 미국의 유력 언론을 이끄는 언론인들을 배출했다. 저널리즘 스쿨 모델 또한 미 전역으로 확산됐다.
이런 저널리즘 스쿨은 재학 중 저널리즘 윤리와 관련법 등 이론과 실무를 훈련시키는 걸 목표로 했다. 학생들은 재학 중에 스쿨 내부 언론이나 학교 밖 언론에서 교육받았다. 몇몇 스쿨은 재학 중 인턴십을 졸업 요건으로 두고 학생들의 커리어를 관리한다. 언론 기업만 학생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학생도 인권침해의 우려 없이 여유롭게 뉴스룸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미국에서 저널리스트 채용은 한국 같은 집단 신입 공채시험 대신, 구직자가 자신의 교육 배경과 실무 경험을 토대로 개별 구직에 나서 회사와 직접 협상하는 형식이다. 미디어 시장이 넓어서, 다양한 매체 간 수평 또는 수직 경력 이동도 활성화돼 있다.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에서도 최근 30년 사이 대학이나 대학원 등에서 정규 저널리즘 전공과정을 거치는 게 저널리스트가 되는 쉬운 길이란 인식이 확산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2년 발표한 ‘해외 저널리즘 스쿨 운영 현황 연구’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영국에선 저널리즘을 포함해 미디어와 관련 있는 대학 교육과정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3천 명에서 4만여 명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중산층의 언론, 노동계급 쉽게 ‘악마화’
과거 영국 언론계는 언론인교육협회나 지역 언론에서 도제식 수업만 받은 고졸 출신 기자들이 대졸자들과 비슷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5년 기준으로 현업에 종사하는 기자의 95%가 대졸자이며 그 가운데 61%가 저널리즘 전공자이고, 43%는 저널리즘 석사과정 졸업생이다.
저널리즘 교육의 제도화를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 하층계급의 현실을 파헤친 책 (2011)의 저자 오언 존스는 영국 언론이 중산층 범죄와 노동계급 범죄를 차별적으로 취급하면서 노동계급을 쉽게 ‘악마화’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노동계급 출신들이 신문사나 방송사에 자리잡기가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제 영국에서 기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학위를 따야 하는데 그 수업료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만난 제러미 디어 기자협회 회장은 “그것은 곧 부모들의 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하며, 결국 언론사로 유입되는 사람들의 성향이 극적으로 변화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 양성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흐름은 이미 전세계적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대륙 유럽 국가에선 전통적으로 “저널리스트는 모두에게 열린 직업”이고, “저널리즘은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지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란 인식이 강했다. 그랬던 두 나라도 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는 1980년 이후 저널리스트 직업 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기자 지망생들에게 저널리즘 스쿨 이수가 필수 과정으로 변모했다고 분석했다. 언론사, 언론단체, 공공기관 등의 후원을 받아 공익기관으로 운영되는 독일의 저널리즘 스쿨 4곳은 학비가 전액 무료고 생활비도 일부 지급된다.
한국의 정규 저널리즘 교육 수준은 낮다. 2014년 기준 언론 관련 학사 과정을 갖춘 대학이 110여 곳, 미디어 관련 전문 대학원이 24곳 있지만, 대부분 광고·홍보·커뮤니케이션 등을 겸하고 있어 저널리즘 교육에만 집중하는 과정은 희귀하다. 여러 교과 가운데 하나로 개설된 저널리즘 전공 과정 역시 이론과 실무에 걸쳐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지적은 언론학계 내부에서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최소한 이 정도 교육은 받아야…”대학원 가운데 예비 저널리스트를 주 대상으로 실무와 이론을 교육하며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곳은 2008년 설립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뿐이다. 성신여대는 2010년 학내 부속기관으로 방송영상저널리즘스쿨(SSJS)을 설립해 1년짜리 실무·이론 수업을 정규 학점(6학점)으로 인정해준다. 이 밖에 2010년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대학원이 설립돼 현직 기자·PD를 대상으로 정보·환경·바이오·나노·융합기술 등 특정 전문 분야 교육을 제공한다.
학위 과정은 아니지만 이화여대는 2007년 프런티어저널리즘스쿨(FJS)을 만들고 2013년 SBS문화재단과 공동운영 협약을 체결해 첫 산학협동 모델을 만들었다. 이들 저널리즘 스쿨은 모두 전·현직 언론인이 적극 결합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저널리즘 스쿨이 기자가 되는 유일한 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금보다는 좀더 공식화되어야 한다. 예컨대 저널리스트를 희망하는 사람이 전통 언론으로 가려면 최소한 세명대 수준의 교육은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은 현실과 동떨어진 대학의 언론학 교과 과정을 불신하고, 대학은 언론학 전공자를 우선 채용하지 않는 언론사를 불신한다. 두 평행선을 이어줄 매개는 저널리즘스쿨이 아닐까.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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