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가 이제 ‘지지 찬반’으로 갈린 이들 모두 공통적으로 여권 내부의 상황만큼은 심상치 않게 바라보았다. “개판”이란 격한 표현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두 돌인 지난해 12월19일 친박근혜계 중진 의원들만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가졌던 것, 청와대 행정관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국정 개입 의혹 문건 작성 등의 배후로 지목한 일, 김 대표와 대통령의 미묘한 힘의 구도 등 당·청 관계를 위험한 상태로 보고 있었다.
8명의 좌담회 참석자 중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유보했다고 밝힌 50대 남성은 “지난해 12월19일에 왜 친박끼리만 모여 자축연을 하는가? 그건 말이 안 된다. 당이 갈라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다른 참석자도 “박 대통령이 친박만 데리고 국정을 운영하려 한다면 (다음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가망이 없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내놓았다.
여전히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힌 다른 50대 남성은 “이런 모임이 밖으로 새나갈 것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김무성 대표를 향한) 일종의 경고다. ‘조심해라. 지금까지 했던 행동 반성하라’는 경고라고 본다”고 했다. 그는 “김무성 대표가 대권 욕심이 있다면 처신을 잘해야 한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려면 미우나 고우나 박 대통령을 업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지난해 대통령이 해외에 나갔을 때 개헌 이야기를 꺼낸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김 대표를 비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제일 치를 떠는 사람(박세일)을 김 대표가 여의도연구원장에 앉히려고 한 것도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은 2005년 행정기관의 세종시 이전을 두고 박근혜 당시 대표와 이견을 보여 탈당한 뒤 2012년 총선에서 ‘국민생각’을 창당해 새누리당과 맞선 전력으로 ‘친박’과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행정관이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의혹 문건을 작성한 배후로 김무성 대표를 언급한 것을 두고, 청와대의 기강 관리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 참석자는 “김무성 대표가 성질이 날 만도 하다. 일개 행정관이 여당의 수장을 그렇게 언급한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도 “박 대통령과 김 대표 사이에 엇박자가 나면 피해를 보는 쪽은 결국 박 대통령일 수 있다. 레임덕(권력 누수)이 더 앞당겨질 수 있다”고 했다. 당·청 관계가 더 틀어지는 시점과 맞물려 여권 내부의 차기 대선 예비후보로 언급되는 김 대표가 목소리를 높이면, 가뜩이나 지지율의 견고함이 흔들리는 박 대통령에게 좋을 게 없다는 얘기다.
여권 이탈자 흡수는 더욱 힘겨워단순하게 보자면,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새누리당의 상황을 위태롭게 바라보는 이들의 경우 지지 정당을 야권으로 바꿀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지만 그런 신호를 감지할 순 없었다. 좌담회 참석자 중 박 대통령 지지를 철회하고 ‘적극적 반대’로 돌아섰다고 밝힌 50대 남성조차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음 정권을 잡을 보장도 없고, (당이 쪼개져) 분당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당대표를 새롭게 뽑는) 2월8일 전당대회 이후 (계파 갈등이 더 심해져) 당이 깨질 수 있다”고 보는 목소리도 있었다. 최근 정동영 당 상임고문이 새정치연합을 탈당해 진보적 대중정당의 창당을 모색하는 이들과 신당을 추진하는 흐름도 이런 판단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의 지지율조차 5%를 제대로 넘지 못하는 등 진보 세력의 자생력이 많이 약화돼 있다는 점이다.
“새정치연합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서는 절대로 집권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언론에서 부각하는 새정치연합의 계파 대립에 대한 인식 탓인지 “새정치연합의 계파는 11개나 되지 않느냐”며 실체가 불분명한 수치를 언급하는 이도 있었다.
이들의 이런 반응은 1월16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전주보다 5%포인트 떨어진 35%를 기록했음에도 새정치연합의 정당 지지도가 1%포인트 떨어진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새정치연합이 고정적 지지층의 이탈도 막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권에 실망해 이탈한 사람들을 흡수하는 것은 더욱 힘겹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새정치연합의 지지도는 23%에 그쳤지만 새누리당은 43%에 달했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야권과 묶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과 여당에 실망한 사람들이 그래도) 완전한 정치적 반대자로 돌아서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저것(새정치연합)도 대안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좌담회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찍은 이들이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찬성하면서도 우리 사회에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8명 중에 3명이 진보정당을 포함한 다당제에 동의했고, 3명은 양당제 구도가 더 안정적이라고 보았으며, 2명은 답변을 유보했다.
박 대통령 지지를 유지하고 있는 50대 남성 참석자는 “종북 정당이 아니라면, 서민이나 근로자, 쌍용자동차 해고자, 아르바이트생, 비정규직, 이런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 나와야 한다고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으나 야권 지지로 이동하지 않은 40대 남성은 “(정치 이념의 지형이) 한쪽으로 쏠리면 안 되니까 다양한 목소리(정당)를 내는 다당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진보정당을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밝힌 40대 남성은 “지지하진 않더라도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진보정당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작 문제는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지지율조차 5%를 제대로 넘지 못하는 등 진보 세력의 자생력이 많이 약화돼 있다는 점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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