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A48B00">“나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과 다르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과 구별되지 않는 어떤 공명의 체험 속에서 우리는 어렵사리 하나의 사회를 기획하고 계약하고 꿈꾸고 체험한다. 사회란, 모두가 같은 마음이 되는 덧없는 순간의 불안정한 제도화이다. 유사한 언어와 기억, 고통의 감각과 행복의 소망을 공유하는 집합체의 ‘마음’을 하나의 살아 있는 구조로 인정하고 그 모양새와 쓰임을 논구하는 작업은 허망한 번뇌가 아니다.” 김홍중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에서 사회란 마음이 공명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마음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불편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행로를 사유하는 데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고 마음 분석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2014년에서 2015년으로 넘어가는 연말연시가 ‘눈물 바람’이 됐다. 평소 극장에 잘 가지 않는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자식과 함께 혹은 부부끼리, 혹은 홀로 극장을 찾아 영화 을 보고 눈물지었다. ‘고생한 우리’가 떠올라 옷자락을 적셨다. 30∼40대는 텔레비전 앞에서 1990년대 춤과 노래를 함께 추고 부르며 ‘폭풍 눈물’을 흘렸다. 예능 프로그램 (이하 ‘토토가’) 편에 등장한 S.E.S, 터보, 지누션 등 성장기를 함께 보낸 가수들이 다시 무대에 선 모습에 뭉클했다는 게 눈물의 이유였다.
대중의 욕망이 날것 그대로 투사되는 대중문화를 통해 본 한국 사회의 ‘마음’들은 공통점을 지녔다. 모두 과거를 소환해내 과거와 교류하고 있었다. 이 현상의 당사자 가운데는 우리가 ‘논외시’하는 20대도 꽤 있었다. 20대 역시 과 ‘토토가’에 응답하며 그들 나름의 ‘추억’을 불러내고 있었다.
과거를 회고하고 끊임없이 소환하는 2015년의 마음들을 들여다봤다. 과 ‘토토가’라는 ‘과거’의 콘텐츠들로 자본이 흘러다니는 경제적 배경도 짚었다. 추억은 돈을 타고 흐른다. 아니, 추억 자체가 또 하나의 자본이 되어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지배하려 든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간주되는) 산업화 세대, 정치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민주화 세대, 문화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여겨지는) X세대라는 훈장이 없는 이들은 그렇다면 무엇을 추억하나. ‘취향의 비국민’과 ‘취향의 패배자(수용자)’를 만들어낸 추억 전쟁이 시작된 것인가. _편집자</font>
1월8일 밤 9시30분. 서울 홍익대 입구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50여 명의 관객이 쏟아져나왔다. 영화 을 보고 나온 관객이었다. 극장의 위치와 시간 탓이기도 하지만, 관객은 대부분 20대였다. 빨간 리본 머리띠에 짧은 모직 치마를 입은 여성과 가죽 재킷과 검정 뿔테 안경을 세련되게 매치한 남성 커플, 군대에서 휴가 나온 남자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왔다는 커플을 비롯해 일 마치고 영화 보러 온 20대 직장인 여성 등 관객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에 딱 들어맞지 않는 관객층이었다. “덕수를 보니 아버지 생각이 나서 많이 울었어요.”(22·여·대학생)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실상 같은 걸 알게 돼서 괜찮았어요.”(22·남·군인) “친구가 페이스북에 부산 국제시장에 가서 ‘꽃분이네’ 가게 앞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길래 ‘이게 뭐지’ 했는데 그게 이거더라고요. 오락영화로 재밌었어요.”(23·여·직장인)
<font size="3"><font color="#A48B00">노년층에겐 유례없는 ‘즐길거리’로</font></font>극장 앞에서 만난 20대 관객은 을 학습과 유희의 어디쯤에서 읽고 있었다. 1월8일 관객이 855만 명을 넘었다. 의 관객 증가 속도는 보다 느린 편이지만 CJ라는 대형 배급사를 끼고 있어 스크린 점유율 등을 고려할 때 1월 셋쨋주 후반께엔 무난하게 1천만 영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2004년 이후 관객이 1천만 명 이상 든 영화는 (2005), (2006), (2009), (2012), (2013), (2014) 등 10편이다. 1천만 영화의 익숙한 조건 가운데 하나는 영화를 보지 않는 세대를 극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가 자녀 손을 잡고 온 부모 덕을 봤다면, 은 부모 손을 끌고 오는 자식 덕을 보며 관객 수를 늘려가는 중이다.
홍대 입구 같은 ‘특수 지역’이 아닌 극장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의 관객은 예상대로 노년층이었다. 1월6일 오전 경기도 용인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70대 초·중반의 할머니·할아버지 관객 70~80명 정도가 좌석을 채웠다. 딸과 함께 온 노부부, 단체관람 온 노년층도 많았다. 서울 신도림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저녁 6시35분에 시작한 영화에서도 관객 대부분이 노년층과 중·장년층이었다.
은 노년층에게 유례없는 ‘즐길거리’를 안겨줬다. 그 ‘즐김’의 방식은 그때 그 시절을 기억서랍에서 꺼내는 것이다. 1월6일 신도림에서 을 본 권오한(80)씨는 10년 만에 영화를 보러 혼자 극장에 왔다. 계원들과 함께 영화를 본 아내가 늘어놓는 감동에 동화됐다. 권씨는 지도를 제작·판매하는 작은 사무실을 운영하는 ‘현역’이다. 평소에 여가시간은 “그냥 TV 틀어놓고 ” 지낸다. TV조선·채널A 등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을 하루 종일 틀어놓고 사무실에서는 , 집에서는 를 하루에 한두 시간씩 정독한다. 권씨는 의 만듦새에 대해 “너무 즉흥적이고 심도 깊은 감정이 제대로 설명되지는 않았다. 짜임새나 연결이 마구잡이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말로만 들었던 흥남 철수를 직접 보니 신기했다”고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그는 15살이었고, 충청도에 살았다. 중학교 교련 시간에 장교가 한국전쟁에 참전할 사람은 장교로 임명해주겠다고 해서 고민하다가 안 갔던 기억, 아는 사람이 영화 주인공 덕수처럼 파독 광부로 간 기억 등을 꺼냈다.
<font size="3"><font color="#A48B00">‘시대 걱정’과 ‘젊은이 걱정’</font></font>신문을 꼬박꼬박 보진 않지만, 가끔 를 읽는다는 임찬윤(66·택시운전)씨 역시 영화를 본 뒤 젊은 사람들이 모르는 과거를 되새길 수 있어서 눈물이 났다. “이산가족찾기를 할 때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누이동생을 텔레비전에서 만나는 장면, 집에서 가족들이 눈물지으며 둘러앉아 보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더라고.” 임씨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나는 6·25 때 덕수가 업고 있던 아우보다 더 어렸어요. 2살이었지.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나를 업고 광진교를 걸어서 피란을 갔대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다리 위로 물이 흘러넘쳐서 사람들이 떠내려가는데 어머니는 나를 업고 그 다리를 건너셨어. 말로만 들었는데, 동생을 업고 배에 기어오르는 덕수를 보니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이 많이 나데.”
<font color="#A48B00">“평범해지고 별다른 꿈이 없어지는 나에게 지쳐 있는데 ‘토토가’에서 김정남과 슈의 열정을 보니 처음 대학에 갔던 1999년, 그 시절의 내가 환기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바람이 지나가듯 예전의 공기가 나를 지나가는 느낌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30대 직장인</font>
남진·이만기·앙드레김의 나열과 가수 현인의 같은 노래들 역시 추억을 자극한다. 드라마광이어서 등 드라마를 다 꿰고 있는 조혜자(66·가명)씨는 “이건 우리만의 얘기잖아. 이만기 나오면 반갑고. 오랜만에 듣는 노래도 좋고. 하나하나 내 얘기고 옛날에 우리가 겪었던 이야긴데 그걸 너무 참신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조씨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 부모님이 덕수 어머니야. 전쟁 끝나고 구멍가게를 시작해서 슈퍼 정도로까지 키웠지. 그리고 나는 덕수 여동생인 거야. 우리가 8남매인데 내가 막내여서 언니·오빠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 그런 형제애도 느끼고. 그런데 나는 언니·오빠한테 도움받은 걸 잊고 너무 나만 생각하고 살았구나, 그런 회한의 눈물도 났어.”
기억의 종착점은 ‘시대 걱정’과 ‘젊은이 걱정’이었다. 권씨는 “이 영화를 젊은 사람들이 봐야 한다”고 했다. “요즘 양극화가 너무 심해. 경제가 균형 있어야 하는데 못사는 사람하고 잘사는 사람 차이가 너무 많이 나. 이거는 못사는 사람이 분발해야 해. 옛날처럼 고생도 하고. 경제활동에 참여도 좀 하고. 젊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감동받고 노력해서 잘살아보자 다짐하고 열심히 살아서 가정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고 그래야지.” 임찬윤씨는 영화를 통해 젊은이들이 나이 든 세대를 인정해주길 바랐다. “덕수가 손주한테 노래를 가르쳐준 건 나쁜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건데, 자식들이 아부지를 다 열외시키는 걸 보면서 서글펐지. 우리 집에서도 아들이 마누라하고만 이야기해. 나랑은 잘 안 하고. 나도 서글프지. 젊은 사람들이 자기만 최고인 줄 아는데, 우리가 옛날에 다 고생해서 우리나라를 일으켰잖아. 나도 아이들한테 살갑지 못하게 한 게 있지만, 어떨 땐 야근하고 잠도 못 자고 그랬으니까.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고생한 거 알아주면 덜 서운하겠지.”
<font size="3"><font color="#A48B00">“그 시절의 내가 환기되는 느낌”</font></font>6070세대에게 이 있다면, 30대에게는 (이하 ‘토토가’)가 있다. 최미지(35·가명)씨는 ‘토토가’를 보며 20분은 울었다. 펑펑 울었다. “엄정화의 무대를 보고는 ‘참 프로페셔널하구나’ ‘멋있다’고 생각했지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회자로 나온 이본이 오프닝 하면서 객석을 꽉 채운 관객을 보면서 울컥할 때 나도 같이 울컥하는 게 있었다. 터보의 김정남이나 S.E.S의 슈가 다시 무대에 서고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뭉클해서 울고. 이미 그 사람들의 시대는 지나갔고 잊혀진 사람들이다. 다시는 활동할 것 같지 않았던,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열정적이고 진지한 무대를 보니 감격스러웠다.”
35살인 최씨는 요즘 ‘조로’한 느낌이다. 2004년 졸업하자마자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올해로 직장생활 11년차에 접어들었다. 최근 결혼도 했다. 그런데 이번 과장 진급에 실패했다. “딱 지난해였던 것 같아요. 10년차 때, 후배들이 나를 치고 올라갈 수도 있겠구나라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회사생활도 관성적으로 하면서 자기반복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평범해지고 별다른 꿈이 없어지는 나에게 지쳐 있는데 ‘토토가’에서 김정남과 슈의 열정을 보니 처음 대학에 갔던 1999년, 그 시절의 내가 환기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바람이 지나가듯 예전의 공기가 나를 지나가는 느낌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프리랜서 방송작가인 박지희(37·가명)씨는 “나의 90년대를 가장 핫하다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보고 있자니 약간 문화적 우월감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팬이었다. 원타임, 지누션 등 YG 계열의 힙합 뮤지션도 좋아했다. 다른 가수들은 무시하기도 했다. 그 시대는 대중음악인에 대한 팬덤이 처음 형성된 때이기도 하다. “제가 좋아했던 가수가 아닌데 ‘토토가’ 무대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1990년대 음악의 힘이 아닐까, 선택지가 다양한 음악들이 있었고 음반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토토가’를 보면서 내가 이걸 즐길 수 있는 30대여서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즐길 문화가 많아 보이지 않는 20대에 대한 연민도 들었어요.”
<font size="3"><font color="#A48B00">“지금보다 온정적이었을 것 같다”</font></font>특정 세대의 ‘보편적 추억’을 자본 삼아 만들어진 문화상품인 ‘토토가’와 에 대해, 타깃 계층이 아닌 세대는 불편함을 나타내거나 아예 무시했다. ‘토토가’를 즐겁게 본 30대 10명 가운데 을 봤다는 사람은 4명이었다. 을 본 30대 4명은 모두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지 않은 6명은 에 대해 불편함을 넘어선 불쾌함을 토로했다. 박지희씨는 “‘우리가 대신 고생해서 차라리 다행이다’라는 카피를 보자마자 영화를 볼 생각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금 대학생인 사촌동생들을 보면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한다. 그런데도 취업은 안 된다. 애국심만 강조하는 전체주의적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노인 세대를 인정하면 지금의 경제침체와 불황이 해결되는가. ‘너희들이 열심히 하지 않고, 고생을 모르고, 윗세대를 인정하지 않아서’라는 논리의 근원을 찾을 수가 없다.” 최미지씨도 “나는 부모님이 밤낮없이 고생한 거 알고 인정하고 감사해한다. 그런데 지금 더 중요한 건 노인 세대의 당시 경험이 성공의 경험이 아니라 정치적 희생의 경험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인정해야 더 이상 국가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짓밟지 않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을 본 6070세대 6명 가운데 ‘토토가’를 즐겁게 봤다는 이는 1명밖에 없었다. 나머지 5명은 “그게 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font color="#A48B00">우리는 왜 가난한 것일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2년 발행한 ‘공정성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가난 발생의 원인에 대해 ‘사회구조 탓’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0대에선 64.8%에 이른 반면 60대 이상은 39.3%에 불과했다. 20대의 현실 직시는 60대보다 정확하다.</font>
이례적 현상은 ‘추억의 직접 당사자’, 즉 타깃층이 아닌 20대 역시 과 ‘토토가’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이다. 이 을 본 20대 1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6명이 영화를 통해 “어머니·아버지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가족의 소중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4명은 “감동적인데 불편하다” “한국 아저씨 세대의 불쌍한 운명이 떠올랐다” “너무 지루했다”고 답했다. 1960~80년대를 ‘산업화 시대’로만 호명하며 기억의 단면을 오려내 ‘고생 성공담’으로 엮어낸 이 영화를 본 20대의 상당수에게도 큰 불편 없이 가닿았다는 말이다.
“요새 취직도 안 되고 힘들었는데 영화를 본 뒤 다들 힘들게 사는구나, 예전엔 더 힘들게 살았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나아졌다. 나는 아직 취업준비생이지만 그래도 스타벅스 커피도 마시는데 우리 엄마는 돈이 있어도 스타벅스는 못 간다. 우리도 힘들지만 옛날 사람들의 힘듦은 우리보다 더 어려운 종류의 눈앞에 닥친 어려움이었던 것 같아서 영화를 보면서 엄마 세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는 김성경(26·가명)씨의 말이다. 김씨는 지난해 4곳에 자기소개서를 냈는데 다 떨어졌다. 각자 다른 일을 하는데 왜 모든 대학생이 똑같은 스펙을 쌓고 있는지, 왜 천편일률적인 면접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취업을 하려면 별수 없다. 김씨가 추구하는 가치는 재미와 의미와 자유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에 자유를 쓸 생각은 없다. 이걸 적으면 회사가 자신을 뽑지 않을 것 같아서다. 김씨는 부조리한 일들에 목소리를 잘 내는 편이지만, 자신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아무 데도 소속되지 않고 을의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회사에 고용당하면, 특히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면 고용 보장이라는 안전망도 없기 때문에 굽신거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세상을 알아갈수록 깨닫는 중이다. 김씨는 부모님, 할머니와 함께 을 봤다. “지금 나를 부양해주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나에겐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미래는 내가 스스로 땅 파서 물 떠먹는 삶의 반복인데, 얼마나 자립적으로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김씨는 영화를 통해 할머니 세대와 부모 세대를 이해하는 데 감상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이직을 준비하는 이송현(26·가명)씨는 을 보면서 주인공 70대 노인 덕수에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아닌 자신을 투사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덕수의 남동생이 서울대에 합격했는데 등록금 걱정을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덕수가 술 취해서 동생에게 ‘니는 공부나 열심히 해’ 하며 들어가 혼자 술 마시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자기가 선장이 되고 싶어서 해양대에 붙었는데도 가족에게 말 못하고 일하러 가는 장면도요. 저도 장녀거든요. 집안이 넉넉지 않아서 보탬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 죄스럽기도 하고 격하게 공감이 됐어요.” 이씨는 다니던 디자인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컴퓨터 디자이너는 급여가 130만원 수준인데,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해서 여유가 없다. 컴퓨터 디자인도 적성에 맞지 않아 더 큰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지난해 9월 구직을 시작해 원서를 넣을 수 있는 곳은 모두 넣었는데 연락 온 곳은 아직 없다. “취업난·경제난으로 약간 우울증까지 겪고 있어요.”
이송현씨처럼 을 본 20대는 3040세대보다 주인공 덕수의 고생담에 공감하는 폭이 컸다. 이들이 덕수의 고생담에 공감하는 폭은 오히려 6070세대와 비슷했다. 20대가 당면한 구직과 취업 준비의 고통이 1960~80년대 ‘산업화 역군’ 세대가 겪은 배고픔과 가난의 고통보다 덜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font size="3"><font color="#A48B00">세대를 관통하는 ‘자기계발 논리’</font></font>우리는 왜 가난한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세대별로 다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2년 발행한 ‘공정성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가난 발생의 원인에 대해 ‘사회구조 탓’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0대에선 64.8%에 이른 반면 60대 이상은 39.3%에 불과했다. 20대의 현실 직시는 60대보다 정확하다. 그들의 고통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다만 20대가 그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찾는 방법은 6070세대와 다르지 않다. “열심히 하면 될 거다. 덕수처럼 더 힘든 사회에서도 저렇게 살아남았는데.” 이 대답은 80살의 권오현씨가 “젊은이들이 영화를 보고 분발해야 한다”고 뱉어낸 말과 다르지 않다.
추억을 밑천 삼은 영화 은 그렇게 세대를 관통해 ‘자기계발 논리’를 강화한다. 자기계발에 지친 그들은 ‘토토가’를 보며 위안한다. 30대는 고등학교 시절을, 20대는 초등학교 때 첫사랑과 처음 좋아한 대중가수를 회상한다. 모두가 ‘추억과의 놀이’에 빠진 찰나, 사회 역시 뒷걸음질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수성가가 불가능한데 자수성가를 부르짖는 산업화 시대의 공기 속으로.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강예슬 인턴기자 milkleft@naver.com·천다민 인턴기자 noir-nd@naver.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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