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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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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실망해 정치인 되려고요

후원회장 조국과의 대담… “쌍용차 사태 겪으며 정치인의 ‘약속’이란 말만 들어도

천불이 나, 국가폭력 경험하고 공동체 확인한 곳에서 살맛 나는 도시 만들려”
등록 2014-07-16 14:45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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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6일 내로라하는 진보 진영 인사들이 경기 평택을 국회의원에 출마한 김득중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하러 주말도 반납한 채 평택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작가 공지영, 만화가 최규석, 배우 김의성, 영화감독 김조광수, 프로레슬러 김남훈 등은 트위터를 통해 지지를 선언했다. 마치 자석처럼, 모든 진보 진영 인사들의 눈과 마음이 김득중을 향한다. 후원회장을 맡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왜일까? 지난 7월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조국 교수와 김득중 후보가 만났다. 대담 내용은 7월15일 (www.hanitv.com)를 통해서도 공개된다. _편집자


사회- 조국 교수는 대선 이후 정치를 멀리했는데, 왜 후원회장을 맡았는지 궁금하다.

조국-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로 인한 삶의 파탄은 평택에 있는 어떤 공장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다. 하지만 기존 정치권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 새누리당이 노동 억압 정당이라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노동 배제 정당이다. 누군가 (쌍용차 해고자들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잘 아는 사람들이 나서서 문제를 직접 푸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4녀5남 막내, 45년 평택 토박이

사회- 오늘은 조국 교수가 후원회장이 아닌 유권자 입장에서 후보께 질문해달라.

조국- 김득중 후보는 평택 토박이라고 알고 있다.

김득중- 평택에서 태어나 45년 동안 살고 있다. 5남4녀의 막내다. 평택에서 학교를 다닌 뒤 1993년 쌍용자동차에 입사했다. 무쏘 신화가 있을 때라, 쌍용차에 1993년 입사 사번이 많다.

조국- 입사할 때 꿈은 뭐였나.

김득중- 평택에선 쌍용차가 안정된 직장이다. 평생 직장이라 생각하고 정년퇴직 때까지의 인생 설계를 했었다. 직장과 동료에 대한 애착도 컸고.

조국- 그런데 왜 2009년 파업에 참가하고, 그것도 노동조합 조직쟁의실장으로 앞장서게 됐나.

김득중- 2009년 이전에도 한두 차례 구조조정이 있었다. 고용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했다가 기술을 유출하고 먹튀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한상균 지부장(파업 당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을 도와 노조 선거를 했고, 2646명 인력 감축안에 맞서 파업에 들어갔다.

조국- 지난 2월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조용히 직장으로 돌아가면 되지 왜 선거에 출마하나.

김득중- 5년 넘게 진실을 밝히고 공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공장으로 돌아가려는 해고자가 186명이다. 생계의 어려움 탓에 전국으로 흩어져 살던 해고자들이 판결 뒤 공장 앞에 모였다. 법이 늦게나마 우리의 손을 들어줘서 고맙지만, 노사가 대화로 풀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는 전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서 상고했다. 우린 하루하루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삶을 사는데, 대법원 판결까지 버티라고 한다. ‘빨리 문제를 풀자’며 여야에 읍소하고 다녔다. 그러나 정치권은 결정적인 순간엔 우리를 밀어내더라.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직접 해결하자, 이런 마음이다.

조국- 정치인의 약속이란 말만 들어도 ‘천불이 난다’는 인터뷰를 보고 찡했다.

김득중- 대한문 앞에서 2년 동안 단식·노숙 농성을 할 때 내가 대외협력 담당이라 국회의원들을 만나 읍소도 하고 설득도 하고 그랬다. 청문회·국정감사도 이뤄졌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당시 박근혜 후보를 비롯해 여야 모두 국정조사를 약속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이야기가 싹 사라졌다. 정치인들은 적당히 상황을 모면하며 둘러대기만 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예비후보를 포함해 450여 명에게 ‘당선되면 쌍용차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겠다’는 결의문을 받아냈다. 총선이 끝나면 국정조사 등 문제가 풀리겠구나, 한가닥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여야 6인 협의체’ 이야기가 나오다가 흐지부지되면서 쌍용차 문제는 그냥 덮였다.

조국- 많은 시민들에게 노동자 김득중의 국회의원 출마가 갑작스러울 수 있는데, 이런 과정이 있었다면 이해가 된다. 이번 재보선에서 경쟁할 정장선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어땠나.

김득중- 2009년 파업 때 정장선 후보가 평택 지역구 의원이었다. 파업에 앞서 노조는 상하이차가 먹튀하더라도 퇴직금을 담보로 1천억원의 신차 개발 자금을 지원해주면 독자 생존할 수 있다고 절박하게 요구했다. 그런데 정 후보가 당시 한상균 지부장과 면담할 때 ‘대통합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양보를 요구했다. 우린 정 후보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양보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에 분노했다. 그 뒤 쌍용차 문제에서 정 후보가 중심에 있었던 적이 없다.

조국- 내가 법을 전공하긴 했지만, 정치인이나 정당의 역할은 법보다 앞장서나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그런데 많은 정치인들이 계속 쌍용차 문제를 회피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반면 당선 가능하려면 정 후보와 단일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많다.

김득중- (새정치민주연합 쪽과) 단일화 논의는 전혀 없다. 나는 완주할 생각이다. 지난 5년 동안 쌍용차 해고자들이 당당하게 버텨올 수 있었던 건, 함께해준 분들과의 ‘연대의 힘’이다. 나는 그 연대만 고민한다. 정책 연대나 야권 연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시인 심보선, 심리기획자 이명수,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김득중 후보, 작가 정혜윤, 화백 박재동, 마인드프리즘 대표 정혜신, 시인 송경동,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왼쪽부터 차례로)이 7월6일 김득중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파 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득중 후보 선거본부 제공

시인 심보선, 심리기획자 이명수,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김득중 후보, 작가 정혜윤, 화백 박재동, 마인드프리즘 대표 정혜신, 시인 송경동,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왼쪽부터 차례로)이 7월6일 김득중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파 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득중 후보 선거본부 제공

조국- 현재 해고된 노동자나 가족들은 어떤 상황인가. 김 후보의 퇴직금도 회사가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가압류를 걸어놓은 걸로 아는데.

김득중- 지난 5년 동안 동료와 가족 25명이 숨졌다. 한 달에 한 번씩 상복을 입을 정도였다. 평택 지역에서 쌍용차 출신이라는 건 낙인이다. 비정규직 취업도 안 됐다고 한다. 그래서 막일을 하거나, 먼 지방으로 간 사람이 많다. 경제적인 패배감이나 자괴감뿐만 아니라, 가정불화가 생겨서 이혼한 사람도 많다. 파업 때 겪었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마음의 상처도 너무나 크다. 지난해 3월 다행히 무급휴직자 등 480여 명이 복직했지만, 회사는 나머지 해고자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지난해 흑자를 낸 회사가 10월께 라인을 재편성하고 생산 인원을 조정한다고 해서 새로운 국면이 열리지 않을까 한다.

조국- 정의당, 통합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모두 김득중 후보를 밀어주기로 했다. 그 의미는 뭘까.

김득중- 처음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졌을 때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라고 말하면서 신바람나게 뛰어다녔던 기억이 있다. 분당 사태가 있었고, 그때 탈당했다. 그 뒤로도 진보정당들 사이에 갈등하고 분열하는 양상이 계속됐다.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 현장 노동자들의 실망이 컸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평택은 에바다재단 민주화투쟁, 대추리 미군기지 투쟁 등 그동안 함께 싸워온 남다른 경험이 있다. 지역 시민단체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농성단’을 꾸리고 2년째 평택역 앞 천막농성을 이어온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에도 평택 지역 시민사회단체 20여 곳이 힘을 모으고 있다.

도의원 4명 모두 새누리 당선된 곳

조국- 안타깝게도 지지 선언, 지지 방문을 하는 분들 대부분이 유권자가 아니다. 평택의 반응은 어떤가.

김득중- 6·4 지방선거에서 평택시장을 비롯해 도의원 4명 모두 새누리당 출신이 당선됐다. 대공장 노동자들은 정치를 외면하고, 농촌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은 특정 정당에만 표를 몰아준다. 인지도가 낮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보면, 그동안 노동자를 이야기하는 후보가 없었는데 이번엔 우리 얘길 해보자, 이런 바람 같은 게 있다.

조국- 선거 슬로건이 ‘함께 살자’인데.

김득중- 2009년 파업 때 외쳤던 구호가 ‘해고는 살인이다, 함께 살자’였다. 그런데 지금 평택이 2009년 쌍용차 같더라. 개발과 성장의 이면에서 노동자·서민의 삶이 계속 깨져나가고 있다. 이번엔 장밋빛 개발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정치, 살맛 나는 도시를 만들자는 거다.

조국- 미군기지가 확장되고, 삼성·LG가 들어온다고 해서 땅값·집값이 올랐으면 하는 유권자의 욕망을 자극해 표를 가져가려는 정치인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김득중- 평택 고덕 국제신도시에 들어올 삼성전자가 3만 개, LG전자가 5만7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면서 정부나 지자체의 각종 지원을 받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누구도 이 얘긴 하지 않는다. 미군기지 확장으로 인한 안전이나 범죄 문제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묻고 싶다. 평택항이 국제항으로 개발된다고 해서 수십km 떨어진 곳에 사는 평택 시민의 삶이 윤택해지는지 말이다.

조국- 대안은 뭔가.

김득중-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정부의 규제 완화나 민영화에 대한 비판이 많다. 정리해고 철폐를 비롯해 노동자 안전을 우선시하는 ‘기업살인법’, 기술 유출이나 회계 조작 기업을 처벌하는 법 도입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평택에 농촌 지역이 많다보니 ‘쌀 관세화·개방 저지’ 공약도 내놨고, 교육 평준화가 안 된 평택을 혁신교육지구로 확대·강화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손배·가압류 문제도 해결하겠다. 쌍용차노조에 47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걸려 있는데, 연이자만 9억8천만원이다. 시간당 10만원의 이자가 나가는 셈인데, 평생 벌어도 이자도 못 갚을 액수다.

평택, ‘평등할 평’에 ‘연못 택’

조국- 김득중의 선거 출마가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에 던지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뭘까.

김득중- 쌍용차에서 세월호로 이어지는, 목숨을 뺏는 정치를, 죽음을 끝내겠다. 더 이상 기대지 않겠다. 직접 우리가 나서서 하겠다. 살리는 정치, 노동자가 중심에 서는 정치를 평택에서 시작하겠다. 이런 얘길 하고 싶다.

조국- 김득중에게 평택은 무엇인가.

김득중- 사람을 만나 공동체를 확인했던 곳, 2009년 살 떨리는 국가폭력을 경험했던 곳, 그래서 더더욱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절박하게,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곳. 기업의 탐욕 이면에, 사실은 노동자들의 삶이 있다는 걸 일깨워준 곳.

조국- 후원회장으로서 한마디 보태겠다. 평택(平澤)이란 한자를 보니까, ‘평등할 평’에 ‘연못 택’을 쓰더라. 이름 그대로 평등이 실현되는 연못, 거기서 각각의 사람이 따듯하게 살아갈 연못이 되려면 일하는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세상의 출발점이 뭘까? 일하는 사람을 대표해왔고, 본인 스스로 일하는 사람인 김득중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것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평택 유권자 여러분, 김득중 후보 잘 부탁한다.

사회·정리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녹취 서지원 인턴기자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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