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 첩첩산중에도 ‘세월호’가 있었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떠난 20대 아들은 고통으로 양손을 꼭 쥔 채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6월21일 저녁 고성 22사단 일반전초(GOP)에서 5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쳤다. 한 병사가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했다. 병사들은 실탄은 받았으되 방탄복은 받지 못했다. 맨몸으로 총탄을 맞았다. 응급구조헬기(119)를 타고 후송되는 데도 4시간이나 걸렸다. 가까운 곳에 있는 군 헬기는 뜨지 못했다. 고성 GOP의 총기사고는 군이라는 국가 시스템이 국민을 징집해놓고도 생명을 존중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다시 보여줬다.
야간 근무, 오전 짧은 잠, 오후 보수 작업군 생활을 휴전선 GOP에서 하는 것은 고되다. 훈련소에 입소한 병사들은 대부분 전방 부대에 배치되지 않길 바란다. 힘들기 때문이다.
GOP에 투입된 병사들이 근무하는 곳은 남방한계선이다. 북한과 마주하는 휴전선을 경계로 비무장지대가 있고, 2km 뒤에 남방한계선이 있다. 남방한계선 약 250km의 철책을 따라 11개 보병사단이 투입돼 있다. 각 사단별로 지역을 나눠 맡는다. 22사단은 태백산맥과 함께 동해안 해안 경계까지 맡고 있어 각 사단 가운데 가장 긴 97km를 지킨다. 사단 예하 3개 연대 가운데 2개 연대가 철책 근무에 투입된다. 연대에 소속된 3개 대대 가운데 1개 대대씩 교대로 GOP에 올라간다. 대대는 또 소초별로 1개 소대씩 나뉜다. 부대마다 다르지만 한 번 들어가면 6~12개월씩 GOP에 머무른다.
GOP에 들어가면 밤낮 구분이 없어진다. 24시간 철책을 지키기 위해 병사들은 전반야·후반야·주간근무 등으로 조를 나눠 근무한다. 총을 쏜 임아무개 병장은 주간근무조였다. 주간근무조는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근무한다. 야간에 근무를 섰다고 해서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전에 짧게 잠을 잔 뒤 오후에 일어나 진지 보수 등 작업을 해야 한다. 군 밖에선 야간노동을 줄이거나 야간노동 뒤 충분한 휴식을 권장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지만 군대는 예외다. 휴전 뒤 근무 형태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수만 명의 병사들은 이런 생활을 반복해왔다.
GOP에선 개인 생활도 없다. 강원도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는 GOP에선 민가가 보이지 않는다. 산만 보일 뿐이다. 소초 주변은 지뢰밭 구역으로 멀리 나갈 수도 없다. 철책과 생활관만 왔다갔다 하는 삶을 반복할 뿐이다. 소초원 간에 문제가 생겨도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퇴근이 없는 삶은 모든 이들을 스트레스 받게 한다.
실제 ‘특수환경(GOP, GP)에서 근무하는 육군 병사의 군 생활 스트레스와 건강증진행위’ 논문을 보면, GOP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가장 큰 스트레스로 ‘개인 시간이 보장되지 않아서’를 꼽았다. 두 번째는 ‘업무가 지루하고 변화가 없어서’였고, 다음은 ‘여가 생활 부족’이 많았다. 이진이 국군간호사관학교 간호학 강사와 박연환 서울대 성인간호학 조교수가 2011년 2곳의 GOP 사단 병사 4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런 환경인데도 군에서 가장 위험도가 높다고 본 임 병장(관심사병 A급)은 GOP에 투입됐다. 투입 전 그는 중대장과 면담을 통해 B급으로 낮춰진 상태였다. 이를 두고 6월2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긴급현안질의에서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2사단 ‘노크 귀순’ 뒤 GOP 경계 병력을 120%로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B등급 병사까지 경계 임무에 투입된 것 아니냐”고 따져물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임 병장까지 투입된)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기 힘들다”고 답했다. 책상에서 정책을 짜는 군 관료들은 병사들의 피로도는 생각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두 달간 외출·외박 제한더구나 최근 GOP 상황은 병사들을 스트레스로 폭발하기 직전까지 몰아갔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군은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참사 뒤 최근까지 군인들의 외출·외박을 제한해왔다. 자중하라는 지시였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편집장은 “두 달간 군에서 불만이 빗발친 것으로 안다. 전쟁 중에도 휴가는 갈 수 있는 법이다. 기본권이다. (이것도 안 지켜지니) 병사와 초급 간부에 대한 통제가 안에서 얼마나 심했겠나”라고 말했다.
‘특수환경(GOP, GP)에서 근무하는 육군 병사의 군 생활 스트레스와 건강증진행위’ 논문은 이 점도 짚고 있었다. 설문조사 결과 “특수환경 병사들은 업무가 지루하고 변화가 없어 개인 시간을 통해 환기와 자극을 원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병사들이 여가, 휴식, 휴가 등에 예민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논문 저자인 이진이 강사는 “업무의 변화 없음, 지루함은 우울의 정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울은 부적응 문제, 자살사고를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 되기에 이와 같은 호소를 주의 깊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난 GOP 소초는 여기에 더해 뒤숭숭한 상황이었다. 두 달 전 소초를 책임지던 소초장이 보직 해임됐다. 허위 보고와 장비 분실 등이 문제가 됐다. 소초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안정되지 않았다. 임 병장은 사건이 터진 날도 같은 계급의 병장과 함께 근무했다. 일반적으로 군부대에서는 같은 계급끼리 2인1조 근무를 서지 않는다. 병장과 일병 또는 상병과 이병을 묶어서 위계질서를 만든다. 임 병장이 부대 안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을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관진 장관은 국회에서 “전역을 앞둔 병장이 사고를 낸 것에 대해 부대 내 집단 따돌림이 있었는지, 문제가 과연 그것뿐인지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십 년간 변치 않은 한국 군대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부적응 병사를 계속 만들어냈다. 사회에 있었으면 멀쩡했을 사람도 군대 내에선 관심병사가 될 수 있다. 계급 질서가 확실하고 언어폭력 등에 잘 적응한 사람만이 ‘멀쩡한 병사’ 대접을 받았다. 병영환경이나 문화가 바뀌지 않고서는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05년 경기도 연천 전초(GP) 총기 난사 사고 때도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국방부는 대책을 내놓았다.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인성검사를 강화하고, GOP과학화경계시스템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났어도 GOP과학화경계시스템 도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대신 군 장성들의 관심은 미국산 첨단무기 등에 쏠렸다.
이번 사고를 통해 한국군은 첨단무기를 사는 데 수조원을 쓰면서, 장병들을 보호하는 방탄복을 사는 데는 인색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1시간 넘게 의료 지원 못 받아6월21일 저녁, 총을 맞은 병사들은 방탄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수류탄과 총알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없었다. 군인 출신인 백군기 의원은 “GOP 근무 병사들이 방탄복을 입고 있었으면 희생자가 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이라크에 간 미군들을 보면 전부 방탄복을 입고 있는데, 우리 군에는 인간 생명 중시가 보이지 않는다”며 군을 질타했다.
국방부는 현재 육군 GOP 부대의 방탄복 보급률이 30% 수준이라고 밝혔다. 김관진 장관은 “DMZ 작전부대만 방탄복을 착용하고 있다”고 했다. 신형 방탄복 가격은 103만원 수준이다. 103억원 정도면 모든 GOP 근무 장병에게 방탄복을 입힐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한 대당 1천억원이 넘는 F15K 전투기나 40억원 수준의 K9 자주포를 사는 데는 예산을 아끼지 않으면서, 일반 장병의 안전장비를 사는 데는 소홀했다.
방탄복뿐만 아니라 인명을 구하는 군 의료 시스템도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임 병장이 6월21일 저녁 8시15분부터 10여 분간 총기를 난사하고 떠난 뒤 현장에 의무부사관이 접근한 것은 밤 9시36분이었다. 숨진 병사들은 1시간 넘게 의료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사이 합동참모본부는 밤 9시6분에 사망자가 2명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그 뒤 사망자 인원 보고는 계속 바뀐다. 권오한 합참 작전부장(소장)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밤 10시경에 사망자가 추가로 더 발생해 4명이다 보고를 받았다. 10시18분경에 사망자가 1명이 추가돼서 5명이다 이렇게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합참 보고 때 사망자 수가 이렇게 바뀌는 것으로 나오자,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병사들이 그동안 살아 있었거나 이들을 제때 못 찾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부검에 참여했던 유가족들은 응급조처가 안 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숨진 이아무개 상병의 유가족인 노봉국(전 미군 군의관)씨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총상을 당해 즉사했다고 했는데, 확인해보니 심장이 아니라 날갯죽지에서 쇄골 쪽으로 관통상을 입었다. 총상을 당해 사망할 때까지 어떠한 응급처치도 없었다. 의학 상식이 있는 전문가가 동맥만 잡아줬더라도 분명히 생존했을 것이다. 설사 의학적 상식이 없더라도 지혈이라도 해서 시간을 벌었더라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족 입장에서 너무 안타깝고, 재발 방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이런 미개한 상황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우리 군이 보유한 헬기가 태백산맥을 넘을 수 없어서 119 헬기를 받다보니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그럼 뒤에 사망한 세 분 정도는 후송 헬기를 기다리다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 않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국방 예산 늘어도 의무사업 예산 그대로숨진 이들뿐만 아니라 부상자에게도 구조의 손길은 늦었다. 이들은 군사지역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군 헬기가 아닌 119 헬기를 타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황일웅 육군본부 의무실장(준장)은 국회에서 “태백산맥의 기상이 악화돼 군 헬기가 못 넘어간 것은 사실이다. 자동조종항법장치가 없어서 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신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119 소방헬기가 출동해 부상자를 후송했다. 지난 3월 육군이 강원도 춘천에 배치했다고 보도자료를 낸 ‘응급의무후송헬기’(UH-60)는 써보지 못했다. 60만 대군을 운용하는 한국군에 응급의무후송헬기는 3대뿐이다.
부상병은 4시간이나 걸려서야 119 헬기를 타고 강릉아산병원으로 후송됐다. 주변에 있는 군 병원인 국군강릉병원 대신 민간 병원을 찾았다. 육군 의무실장은 이에 대해 “최초 현장 의료진 판단에 출혈이 심해서 국군강릉병원에서 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군에서 발생한 총상인데도 민간 병원으로 후송해야 안심이 되는 게 현재의 군 의료 시스템이었다.
부족한 군 의료 시스템은 국방 예산에서 드러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1년 낸 ‘병력 운영 및 전력유지 사업 평가’를 보면 군 의무사업 예산은 해마다 들쭉날쭉 변동된다. 2008년 1517억원, 2009년 1653억원, 2010년 1594억원, 2011년 1648억원이다. 국방 예산은 매년 늘어나는데 의무사업 예산은 늘지 않았다. 2011년 1648억원은 당시 국방 예산 31조4천억원의 0.5% 수준이다. 징병제로 들어오는 병사의 생명이 무기를 사들이는 값보다 못한 셈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 인권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서 “격오지의 사단급 의무대의 시설이 매우 열악하다. 또 군의 응급진료 체계가 더 발전되어야 하나 군 병원의 경우 정상적인 진료체계가 열악하므로 응급진료 체계는 더 열악한 실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국방부는 GOP 총기 사고 뒤인 6월26일, 2015년 국방 예산 요구안을 기획재정부에 보냈다. 전체 예산 규모는 38조원으로, 방위력 개선비(11조7498억원)를 올해보다 11.8% 늘려 잡았다. 군인들의 병영환경과 관련 있는 전력유지비(11조684억원)는 2014년보다 6.9% 늘리는 데 그쳤다. 윤영모 국방부 예산편성담당관은 “전체 GOP 부대에 신형 방탄복을 지급할 수 있는 91억원을 반영했고, 의무 예산도 국군수도병원을 종합병원급으로 확대하는 안을 짰다”고 설명했다.
군장성 출신 장관, 병영문화 변화 실패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혜택은 이미 숨진 병사에겐 돌아가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됐다가 무산된 군인복무기본법도 ‘외양간’이다. 군인복무기본법은 군 장병의 휴가권·의료권·종교생활권을 보장하고, 정당한 명령은 보장하되 병이 병에게 어떤 지시나 간섭을 못하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군대에 부적응한 장병에게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법안이다. 국방부는 정부가 바뀐 뒤 이 법안을 추진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GOP 총기사고는 법안 대신 군장성 출신 장관이 지침 등을 통해 병영문화를 바꾸는 것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임태훈 소장은 “군의 문민통제가 정말 중요하다. 국방부 장관부터 문민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군에선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 장병 목숨을 살리는 데 실패한 군도 용서받지 못할 때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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